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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새로운 소송의 배후에 있는 F씨의 기이한 행동


새로운 소송의 배후에 있는 F씨의 기이한 행동


아래 내용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비교적 정확한 소식통으로부터 파악한 것을 정리한 글이다. 식구들이 침묵하고 방관할수록 아래와 같은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UCI 소송과는 별개로 트루월드 그룹을 상대로도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벌어진 온갖 소송의 배후에는 모두 한국 재단의 KJN이 있듯이 이번 소송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사람 같다. 그에겐 뜻이고 원리고 중요하지 않다. 참부모님의 위상이 추락하고 축복가정 공동체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수백억 헌금이 소송비용으로 낭비되어도 상관없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밑에 권력에 기생하며 시키는 대로 하는 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지도자를 꽃을 찾아 이쪽 저쪽을 옮겨 다니는 나비와 같다고 표현했다.

여기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 한 명이 있다. 그는 KJN의 지시를 받아 트루월드를 상대로 배후에서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자다. 지난 수 년간 그가 어떻게 처신해 왔는가를 살펴보자.

일본에서 영감상법의 총괄 책임자였던 F씨는 영감상법 재판에 휘말리자 해외로 도피하였고, 미국에서 트루월드 그룹의 사장이 되었다. 당시 트루월드 그룹 회장은 미국의 Y 대륙회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통일가에서 떠오르는 권력 실세 중 하나였다. Y회장은 F씨와 그 밑에 있는 일본 지도자들을 종종 참부모님 식탁에 앉혀 직접 보고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Y회장은 F씨에게 무리한 부탁을 해왔다. Y회장이 한국에 자신의 인척과 함께 세운 회사에 트루월드가 투자해달라는 것이었다. 무려 백 만불 상당의 큰 돈이었다. 그 회사는 이름만 놓고 볼 때는 트루월드 그룹의 계열사같이 보였으나 실제로는 개인회사였다. F 씨는 비즈니스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Y회장이 중심자이고 자신들을 아버님 식탁에도 종종 불러주는 등 잘 챙겨주므로 돈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지원해주고 없는 셈 치자고 부하들을 설득했다. 결국 그들은 돈을 송금했고, 얼마 후 막대한 손실을 낸 채 사업은 정리되었다. 이 때 Y회장은 회사가 살아날 가망이 없자 자신이 투자한 약 1억 원에 대해 이자까지 붙여 돌려달라고 했고, 이에 대해 함구해 줄 것을 F씨에게 신신당부했다는 말이 있다. 결국 Y회장은 투자한 돈을 고스란히 빼갔고, 회사는 빈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트루월드가 송금한 돈은 더 이상 돌려받을 길이 없게 되었다.
한편 F씨는 2004년 경에 트루월드 그룹의 주관을 받고 있던 미국 내 스시 레스토랑들이 트루월드 그룹 본사로 빌려 준 자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2001년 경 스시 레스토랑들이 참아버님의 해양섭리를 위한 보트 제조 프로젝트를 위해 헌금을 모았는데, 이 자금이 "대여금" 형태로 트루월드 그룹에 제공된 적이 있었다. 형식은 대여금이지만 헌금 목적으로 지원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갚을 의무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스시 레스토랑들도 참부모님의 지시를 받아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식구들이 해양섭리를 위해 세운 식당들이었다. 법적으로는 개인 소유로 되어 있으나 당시 트루월드 그룹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F 사장은 이 내막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여금을 갚을 계획이 없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이 대여금 항목을 정리하기 위해 스시 레스토랑의 소유권을 UCI나 교회에 헌납하려는 계획까지 검토되었고, 이후 2007년과 2008년에도 여러 가지 제안들이 거론되었다.
2006 HJN UCI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트루월드 그룹의 신앙적 중심자는 HJN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2009년 경부터 교회 내에서 HJN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F씨는 점차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였다. 새로운 꽃을 찾아 나서는 나비와 같았다. 일본에서 세력을 확장할 계획이었던 KJN이 이런 F씨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F 씨에게 일본 총책임 역할을 줄테니 HJN을 떠나 일본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이때부터 F 씨는 일본과 미국 양쪽으로 조심스럽게 왔다 갔다 하면서 어느 쪽이 자산에게 이로울 것인가를 계산하는 듯 했다.
HJN은 이런 F씨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0 6월 경 F 씨를 만났을 때 미국의 트루월드 사장이라면 미국에만 집중하지 일본에서의 일을 겸임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충고했다. 당시 미국은 2008년 경제위기 여파로 수산 비즈니스가 매우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어서 참부모님의 해양섭리 기반을 지키기 위해서는 트루월드 그룹의 모든 일본 지도자들이 합심해서 뛰어야 할 때였다. 그런데 HJN의 조언에 대해 F 씨는 일본에 집중하겠다고 대답했다. 결국 그는 7 2, 트루월드의 사장직에서 물러나 법적 권한이 없는 명예회장이 되었고, 새로운 사장이 임명되었다. F씨는 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트루월드는 그에게 계속 급여를 지급했다.

F씨는 사장직에서 물러나 트루월드 명예회장이 된 후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비즈니스의 책임자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KJN의 후광 하에 교회관련 비즈니스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작심한 듯 했다. 그런데 F 씨는 트루월드의 명예회장으로서 월급을 받고 있음에도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트루월드 지점장들과 몇 차례 미팅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열심히 일할 필요 없으며, 운영경비 정도나 벌면 되지, 아버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조직인 UCI를 위해 배당금까지 벌어줄 필요는 없다고 선동했다. 또한 대부분 선배가정들인 스시 레스토랑 주인들에게 지금까지 레스토랑 그룹을 주관해왔던 트루월드 그룹으로부터 결별하여 자기들 주관으로 들어오도록 작업했다. 이것은 배임죄에 해당될 수도 있는 행위였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그 다음해인 2011112일 트루월드는 F씨를 완전히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이 내용을 들은 KJN F씨에게 트루월드에서 해고되어 축하한다. 월급은 여기서 줄 것이니 소송을 시작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 24일부터 2 8일 사이에 F씨와 그를 따르는 몇 몇 간부들은 레스토랑의 주인들에게 대여금을 돌려받기 위한 서류에 사인을 하도록 요청하였고, 그 이후로 비밀리에 소송준비를 해왔다. 2011 2월 초에 트루월드 그룹이 레스토랑 주인들의 동의를 얻어 대여금 내용을 청산하려 했을 때, 이미 그들은 F씨의 승인 없이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루월드 그룹은 나중에 F씨가 트루월드 그룹을 치기 위해서 뒤에서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F씨는 그룹 본부의 허가 없이 비밀리에 트루월드의 모든 지점장들과 회계책임자들을 라스베가스에 소집해 참아버님의 훈독회에 참가하도록 계략을 꾸몄다. 이것은 유례가 없는 경우였다. 몇 명의 간부가 참부모님 주관의 훈독회에 참가하는 일은 있었지만 모든 지점장이나 회계책임자까지 한꺼번에 소집되어 참가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 트루월드 그룹의 최고 경영자와 사장단들에게 밝힌 의도는 매우 불순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참부모님께 트루월드 그룹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를 드린 상태에서 참부모님 앞에 최대한 많은 직원을 모으면, 참아버님께서 그들에게 기존의 트루월드를 그만 두던가 아니면 새로운 트루월드를 출발시키는데 가담하던가를 결정하도록 강하게 명령 내리실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226, 60명 정도의 트루월드 지점장과 회계책임자(대부분이 일본인)들이 라스베가스 훈독회에 참가했다. 그들은 2 24 F씨의 지시를 받은 당시 Y사장으로부터 라스베가스 참부모님 집회에 참석하라는 말을 갑자기 듣게 되었고, 참아버님의 중요한 지시가 있을 것으로 알고 대부분 2 25(금요일로 근무일이었음) 라스베가스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날 훈독회에서 참아버님께서는 몇 시간에 걸쳐 일본어로 말씀을 하셨지만 트루월드 회사에 대한 말씀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훈독회를 끝내려 하시자, 양창식 회장이 "아버님, 오늘 트루월드 그룹에서 간부들이 와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참아버님은 "오 그래. 후루타 트루월드에 대해 결의표명해 보지."라고 하셨다. 이때 F씨가 기립하여 오늘은 트루월드의 재출발의 날입니다. UCI가 공격해오고…”라고 말을 잇는 순간 참아버님께서는 곧바로 F씨의 말을 끊더니 선생님은 그런 보고 듣고 싶지 않지. 그런 것은 지금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뿐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K회장이 일어나 노래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훈독회는 끝났고, 참아버님은 F씨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셨다. 참가한 일본 식구들은 참아버님의 신앙지도 말씀만 듣고 바로 근무지로 돌아갔다.
 온갖 지도자들 틈바구니에서 눈치 하나로 처신해 온 F씨가 참아버님의 이름까지 팔아가며 이런 일을 독단적으로 벌였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후에서 그에게 지시한 사람은 따로 있으며, 참아버님 주위에서 이 거사를 묵인하고 협조해 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참아버님 이름으로 트루월드 간부와 직원들을 자신들 밑에 줄 세우고 트루월드를 강제 해체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F씨는 이미 예정된 계획 속에 있는 것처럼 KJN으로부터 수 억 엔을 받아 뉴욕과 라스베가스에 별도의 수산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몇 몇 트루월드 지점장들을 자기 쪽으로 빼돌려 트루월드와 맞대결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비즈니스는 잘 풀리지 않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도 트루월드 그룹에 속해 있는 일본활어(일본 국내에 생선을 공급하는 업체)의 경영권을 자신이 주관하는 일본 교회 소속의 비즈니스 그룹으로 넘기는 작업을 배후에서 주도했다. 일본활어는 트루월드 그룹 산하의 트루월드재팬(TWJ) 100% 지분을 갖고 있었는데 F씨의 동생이 이사로 있는 TWJ의 이사회가 지분을 증자한 뒤에 총 51% F씨 쪽으로 매각하여 경영권을 넘긴 것이다.

한편 트루월드는 라스베가스 사건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간부들과 주요 식구들은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점차 자세한 내막을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 상당수의 트루월드 직원들이 참부모님 훈독회에 참가한 것 때문에 해고되었다는 소문을 퍼트렸지만, 단 한 건도 그러한 사례는 없었다. 오히려 트루월드는 F씨와 대적하기 보다는 핵심 경영진을 새롭게 교체하고 본래의 기업활동에 매진한 결과 최근 불황 속에서도 연간 매출 6억불 이상의 실적을 달성하고 있다. 만약 2 26일 훈독회에서 큰 혼란이 발생했다면 어쩌면 트루월드는 경제불황의 파고를 뚫지 못하고 신용을 다 상실한 상태에서 좌초했을 지도 모른다.

F씨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자신의 비즈니스 기반을 보강하고 트루월드에 손상을 줄 마지막 방법에 손을 뻗친 것 같다. 그는 2011 8월에 레스토랑 주인들을 움직여 대여금 반환소송을 걸었다. 오래 전에 일본에서부터 "(하늘 앞에) 바친 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늘 지도해왔던 F씨가 고작 수 억 엔을 갈취하기 위해 하늘 앞에 기부한 헌금을 다시 돌려달라는 소송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수 없는 헌금을 해 온 일본 식구들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F씨는 대여금관련 소송은 자신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레스토랑 주인이었던 I씨와 고발인인 K씨라고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 일본 식구들에게 지시를 내린 자가 F씨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데도 그는 이렇게 비겁하게 뒤에 숨고 있는 것이다. 2011 2월만 해도 대범하게 앞장 섰던 그가 한 발 물러선 것은 자신의 든든한 방패막이인 KJN과 참어머님 사이에 틈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새롭게 자신의 중심자가 된 KJN이 힘이 약해지고 있고, KJN이 주도해 온 소송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계신 참어머님께서 KJN에게 사임을 요구하자 그의 행동에도 변화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F씨는 즉시 "어머님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어 나가자"고 눈치 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어쩌면 다시 한 번 나비가 되어 새로운 꽃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섭리를 망치는 일에 가담하여 후일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운명에 처한 일본 식구들과 레스토랑 관계자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그들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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