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3일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총재가 타계한 후 세간의 관심은 ‘향후 통일교를 누가 이끌 것인가’에 쏠렸다. 문 총재의 세 아들을 등장시켜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향후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갈등을 묘사하기도 했다. 막내 격인 7남 문형진씨가 공식 후계자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구도를 보면 세 아들보다 측근들의 약진이 돋보인다. 3남 문현진씨는 문 총재 타계 전부터 통일교측과 거리를 두고 민간 차원의 평화운동을 펴왔다. 지금 그가 맡고 있는 UCI 그룹 회장도 현재의 통일교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 4남 문국진씨는 얼마 전 통일재단 이사장직에서 해임된 채 지금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통일교 내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있는 이는 7남 문형진씨가 유일하다. 세계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월 미국총회장 자리는 내려놓아야 했다. 이런 가운데 아들들을 대신해 고 문선명 총재의 ‘가신 그룹’이 주요 자리를 채우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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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한학자 총재, 양창식 한국총회장, 박노희 통일재단 이사장 . ⓒ 뉴시스 |
양창식·박노희 등 측근들 중용
문 총재 타계 직후 통일교는 당초 부인 한학자씨가 총재를 맡고, 4남 문국진씨는 재정을 운영하는 재단과 그룹을, 7남 문형진씨는 종교 부문을 관장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한학자 총재를 중심으로 재정과 종교 부문을 두 아들이 따로 맡는 체제다. 문국진씨의 직책은 통일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 문형진씨는 세계회장 겸 미국총회장이었다.
2010년 문 총재는 ‘천주평화통일본부도 절대 유일의 본부다. 그 대신자, 상속자는 문형진이다. 그 외 사람은 이단자며 폭파자다’라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했다. 문국진씨도 역시 동생 문형진씨를 공식적인 후계자로 인정했다.
‘대신자 및 상속자’로 지목됐던 7남 문형진씨는 지난 2월14일 미국 통일교 이사회로부터 미국총회장 직위에 대한 해임 의결을 받았다. 문형진씨는 이사회가 자신을 해임한 것에 대한 심정과 입장을 담아 지난 2월 미국 교회 신도들에게 공개서한을 돌렸다. <시사저널>은 당시 문형진씨가 작성해 배포한, 영문으로 된 서한 전문을 입수했다. ‘Dear brothers and sisters(형제자매 분들께)’로 시작하는 이 서한에는 자신의 당황스런 감정을 담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My wife and I were a little surprised as this is the third time that we have been “let go of” since Father’s ascension with no prior guidance or explanation given for termination. It would be dishonest to say that it does not hurt (again) or baffle us but we have always had a positive outlook on life and that won’t change.(저와 제 아내는 해임 사유에 대한 어떤 설명과 안내도 없이 ‘해임 지시’를 받고 적지 않게 놀랐으며 이번 사임 요구는 참아버님(문선명 총재) 이후 세 번째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결정에 상처를 입지 않고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희는 항상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점에서는 변화가 없습니다.)’
이 서한에서 문형진씨는 ‘갑작스런 결정에 놀랐지만 이사회 투표를 통한 결정을 존중하며 세계회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현재 가족들까지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통일교의 한 인사는 “현재 (통일교의) 공문은 문형진 세계회장이 아닌 양창식 한국총회장 이름으로 나가고 있다. 사실 (문형진씨가) 아웃됐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통일교측의 이야기는 다르다. 통일교 관계자는 “한국측 공문은 한국총회장 이름으로 나가고, 세계회장 이름으로 나가야 하는 공문은 문형진 세계회장 이름으로 나가고 있다. 문 회장은 여전히 세계회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물러났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선명 총재 집사 출신 김효율씨 ‘실세’ 지목
통일교의 재정을 맡을 것으로 점쳐지던 4남 문국진씨는 현재 직함을 잃고 미국에 가 있는 상태다. 문국진씨는 동생 문형진씨가 미국총회장에서 해임된 지 약 한 달 만인 3월24일 통일재단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통일재단측은 당시 문국진씨의 사퇴에 대해 “소송 패소에 대한 책임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국진씨는 3남 문현진씨로부터 여의도 땅을 돌려받겠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통일재단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문국진씨는 용평리조트·세계일보 등이 속한 통일그룹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재정 권력을 모두 내려놓고 ‘백의종군’하게 된 것이다.
통일교 인사들에 따르면 문국진씨는 미국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회사 ‘KAHR’을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국진씨의 빈자리는 문선명 총재 부부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동생 박노희씨가 맡았다. 그는 서울대 공대를 나왔으며 영어에 능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 통일교 인사는 그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한학자 총재 체제에서 통일교 재단 운영에 대한 총책임을 아들이 아닌 측근 세력이 맡게 된 것이다.
지난 1월 한국총회장을 맡은 양창식씨 또한 문선명 총재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양씨를 재단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세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 1월 한학자 총재는 신년하례를 통해 “양창식씨를 협회장이 아닌 총회장으로 임명한다. 그러면 모든 기관·기업체도 주관할 수 있으며, 재단까지도 주관하게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양창식·박노희 씨 이외에 숨은 실세로 회자되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가정연합선교회재단(선교회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효율씨다. 미국 이름인 ‘피터 킴’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 문선명 총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을 당시 얻은 이름이다. 선교회재단은 헌금 등 통일교 자금이 들어오는 곳으로, 한 총재가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씨는 한 총재 바로 아래 직위인 부이사장 자리를 맡고 있다. 김씨는 40년 넘게 문선명 총재의 집사 및 비서로 일했다. 문 총재 일가와 가장 가깝게 지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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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선교회재단 부이사장 ⓒ 시사저널 사진자료 |
김효율씨 공판에 통일교 인사 대거 참석
30년 이상 통일교인으로 살아왔고, 통일그룹 산하 기업체 고위 간부를 지내기도 했던 한 인사는 “김효율씨는 그야말로 ‘문고리 권력’이며 실세”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근거로 문선명 총재가 타계한 지 약 4개월 후 한학자 총재가 신년하례에서 했던 발언을 들었다. 당시 한 총재는 “김효율 박사는 아버님(문선명) 대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별합니다. 모든 제도 위에 있습니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통일교측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통일교측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효율 부이사장에게는 어떤 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단지 심부름을 하는 정도”라며 “사실이 아닌 음모론 시각에서 자꾸 이야기되는 것이 불편하다”고 밝혔다.
김효율씨는 현재 형사 소송 2건의 피고인 신분으로 밝혀졌다. 두 사건 모두 WTA(워싱턴타임즈항공)와 관련된 것이다. 2009년 당시 WTA의 대표였던 주동문씨가 회사 돈 2100만 달러를 선교회재단으로 보낸 것에 대한 재판인데, 당시 선교회재단의 사무총장이 김효율씨였다. 검찰은 당시 외국환을 보내면서 법에 따라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것과 회사 돈을 대규모로 재단측에 보낸 것에 대해 각각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외국환거래법 위반의 피고인은 김효율씨, 배임에 대한 피고인은 김씨와 주동문씨다. 현재 외국환거래법 관련 재판은 2심, 배임 재판은 1심이 진행 중이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난 5월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층에서 열린 외국환거래법 위반 재판을 참관했다. 이날 재판에는 주동문씨와 통일교 한국총회장을 맡고 있는 양창식씨도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그 밖에 실국장급 인사들도 참석해 공판장에 나온 김효율씨와 인사를 나눴다. 이날 공판은 1시간 정도 이어졌다. 증인으로는 은행 관계자가 참석했다. 공판이 끝나고 김씨는 이날 참관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법원을 떠났다.
한 총재 중심의 통일교는 최측근 가신 그룹이 실무를 장악했다. 7남 문형진씨가 세계회장직만을 유지한 가운데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의 친동생 박노희씨가 통일그룹 회장, 또 다른 측근 양창식씨가 한국총회장을 맡았다. 일부에선 김효율 선교회재단 부이사장을 실세로 지목하기도 한다. ‘통일교’라는 명칭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다시 되돌려지는 등 변화를 겪고 있는 ‘포스트 문선명’ 체제가 향후 어떻게 변모될지 주목된다.
“세계회장으로서 역할 해나갈 것” 미국총회장 해임 통보 심정 담은 문형진 세계회장 공개서한
<시사저널>은 문선명 총재 타계 후 공식적인 후계자로 부각된 7남 문형진 세계회장이 지난 2월 미국총회장 해임 통보를 받은 후 미국 신도들에게 돌린 영문 서한을 입수했다. 이 서한은 영문으로 되어 있으며, 한국이 아닌 미국 교회 신도들에게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서한에는 갑작스런 해임 통보로 놀랐다는 이야기와 함께 세계회장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해나갈 것이라는 의지가 담겨 있다. 서한에 담긴 주요 내용을 번역해 소개한다.
아시다시피 참어머님(한학자 총재)께서는 저희들에게 미국 교회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해임 사유에 대한 어떤 설명과 안내도 없이 해임 지시를 받고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이번 사임 요구는 참아버님(문선명 총재) 이후 세 번째입니다. 사실 이러한 결정에 상처를 입지 않고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항상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점에서는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또한 늘 선하시다는 것을 아는 세계회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어제 미국 교회 이사회는 투표를 통해 미국 교회의 총회장을 바꾸는 결정을 했습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좀 더 민주적인 교회 정책을 수립하고, 투명한 헌금과 자산 관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우리가 어떤 곳에서 권한을 갖든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것이었고, 결코 후회는 없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임명된 지도자가 이와 같은 목표를 계속 실현해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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