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통일교회는 어떻게 될까?
만약 통일교회가 지금과 같이 몰락한 모습이 아니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종교라고 하더라도 지금이 모습과는 많이 다른 종교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모든 종교가 그랬듯이 세상의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은 아닌가?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보기 전에 영계에 갈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종교 자체가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게 될 것이다.
인간들이 보수적으로 지켜오는 전통적인 도덕이나 가치관들도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가치관들 또한 변화하는 세상 앞에 어쩔 수 없이 따라서 변화하게 될 것이고 결국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종교 또한 그러한 길을 가게 될 것이고 통일교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통일교인들 또한 그런 길을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도덕관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통일교회가 세상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그 때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악해 진 것이 아니고 환경에 맞게 변화된 것뿐이다.
통일교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초창기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때와 분위기도 다르고 사람들도 달라졌다고 말을 하는데 이 또한 세상의 변화에 따라 식구들이 같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심정이 나빠져서가 아니고 환경이 그렇게 변해 가기 때문이다.
한 참 유행했던 말 중에 글로벌 말이 있었다.
하나로 융합된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정치 경제 문화 도덕 등이 글로벌의 영향을 받게 되고 따라서 종교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는 소위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에 맞는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 대열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에서 글을 올리는 사람이나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교회 따로 사회생활 따로 의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세상과 소통을 하기 보다는 세상의 것을 우습게 알거나 터부시하고 살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 가운데도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아래 글을 한 번 읽어 보기 바란다.
비교 종교학자인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에서 인용한 글이다.
기독교를 꼬집은 글이지만 기독교라는 그 자리는 모든 종교도 해당되는 말이다.
허스키와 진돗개 - 내종교만 종교인가?
서부 캐나다 북쪽 어디에 외딴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개라면 눈썰매를 끄는 허스키라는 개밖에 없었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개'하면 떠오르는 것이 회색 털, 반 미터정도의 키, 우뚝 솟은 귀,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 늑대 같은 짖음 등이다.
그들의 경우 개라면 무조건 허스키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바뀌어 이 마을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이 대도시나 다른 주로 나들이를 나갈 뿐 아니라 멀리 다른 나라에까지 여행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어디로 멀리 여행을 갔다 오는 사람이 중국산인가 하는 ‘시추’ 라는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갈색인 데다가 손안에 들어올 만큼 작은 몸집, 귀는 척 늘어졌고, 긴 털이 온통 얼굴을 가리고 있고, 입은 몽땅하고, 짖는 소리도 캥캥하는 소리뿐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개를 놓고 이것이 개냐 아니냐 하고 토의하기 시작한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허스키와 기본적으로 같은 특성이 있으므로 개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요상하게 생긴 짐승을 개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사랑하던 허스키에 대한 모독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설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사람들의 여행이 더욱 잦아지고 그에 따라 이 마을에도 세퍼트, 도벨만, 리바돌, 리트리버, 토이푸들, 테리어, 치와와, 진돗개 등등의 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마을 사람들이 개라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기호에 따라 이런 저런 개를 사서 키우며 자기들의 '개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아직도 허스키만 개라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든 개를 개로 여기는 사람들의 '타락상'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중 더러는 적극적으로, 다른 모든 개를 개로 인정하려는 사람의 오류와 그런 오류를 퍼뜨리는 사람의 기도(企圖)를 박멸하는 것이 허스키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하기가지 한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그 허스키 충성파 사이에서조차 난리가 났다.
그 충성파 사이에 누구의 허스키가 순종허스키냐 하는 논쟁이 생긴 것이다.
각자 그 마을 많은 허스키 중에서도 눈 위에 흰 점이 박힌 자기 집 허스키만 순종 허스키요, 그것과 다르게 생긴 다른 집 허스키는 모두 허스키가 아니라는 것이다.
허스키면 다 허스키냐?
허스키 중에서도 이상스럽게 눈 위에 흰 점이 흐리게 보인다거나 색깔이 좀 다른 것 같이 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런 허스키는 요즘 새로 들어온 잡개의 피가 잘못 섞여서 생긴 가짜 허스키라는 것이다.
이런 극진한 순종 허스키의 충성파 사람 중 몇몇이 한국에 와서 그들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똥개는 개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돗개처럼 허스키 비슷하게 생긴 개도 진짜 개가 아니라고 한다.
많은 한국 사람이 그 말을 믿기 시작했다.
얼마를 지나자 어처구니없게도 그 캐나다 서부 북쪽 마을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 허스키만이 개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허스키에 대한 관심이 깊은 두 젊은이가 그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겠다고 허스키의 본고장인 캐나다 그 북쪽 마을로 유학을 갔다.
가서 보니 놀랍게도 그 마을에서는 이미 허스키만 개라고 하는 생각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한 젊은이는 허스키만 개라고 믿었던 자기들의 믿음이 사실 근거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 다른 젊은이는 이 마을이 타락해서 아름다운 허스키 전통에서 멀어져도 한참 멀어졌구나하고 개탄한다.
둘이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서 각자가 발견한 것을 말한다.
또 한 번 어처구니없게도 처음 젊은이는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이단이라 하여 강단에서 쫓겨나고 둘째 젊은이야말로 배울 것을 잘 배워 왔다고 떠받들어진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허스키만, 그것도 순종허스키만 진짜 개라는 믿음이 더 굳어지고 더욱 널리 퍼진다. 가히 허스키의 종주국이라 할 만하다.
*****
인류학자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든 짐승이든 '순종'이란 있을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서로 섞이어 잡종이다.
허스키도 늑대의 피가 섞여서 된 종자라 한다. 종교사나 사상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종교나 사상의 경우 잡종이란 말 대신에 '융합"이라는 말을 쓴다.
역사적으로 모든 종교나 사상은 고립된 진공관 속에서 보관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서로 '지평융합'을 하면서 계속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판에 박힌 한 가지 순수 종교나 순수 기독교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다 알고 있듯이 유대교도 바벨론 포로 때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천사, 부활, 최후심판, 낙원 등의 개념을 받아 들였고, 기독교도 이런 혼합된 유대교 사상에다 희랍의 밀의 종교(mystery religions)나 철학 사상을 결합시켜 생겨난 합작품이다.
중국의 선불교가 인도불교와 중국 도가사상의 결합이고, 신유학이 유불도의 습합에서 생긴 산물이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종교도 살아있는 종교라면 다른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자라나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라나고 변화하지 않는 종교란 죽은 종교이다.
서양에서는 천 몇 백 년 동안 거의 아무런 외부적 도전이 없이 기독교만 종교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면서 스스로 '종교'라 하면 의례 기독교가 가진 교리의 특성만을 생각했다.
저 위에 계시는 초월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신이 인간으로 나타나야 한다.
특히 천당 지옥 등 내세를 말해야 한다.
계시의 교리가 있어야 한다.
부활을 믿어야 한다.
하는 등의 기독교적 범주를 설정하고 이 범주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종교는 모두 종교가 아니라고 하든가. 종교라도 기독교와 유를 달리하는 유사종교 내지는 '그릇된 종교'라고 생각해 왔다.
만약 그런 것이 종교라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특히 스위스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다른 종교는 모두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이 되어 남의 종교도 함께 비교 연구하는 '종교학'(종교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일컬어 비교종교학이나 종교사(史)학 이라고도 한다)이라는 학문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창시자 막스 뮬러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는 전제아래 여러 종교를 비교연구하기 시작했다.
주로 이런 종교학자들의 공헌에 힘입어 서양에서도 이웃 종교의 존재와 그들의 가르침이 대략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좀 더 객관적으로 알게 되고, 이런 심도 있는 연구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웃 종교와 나의 종교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제 점점 많은 기독교 신학자가 이웃 종교가 얼른 보아 나의 종교와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도 결국 인간의 '궁극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 궁극관심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잡아 나가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기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개라면 반드시 허스키여야만 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온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계에서는 이웃 종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기독교 교리사에서 어느 한 때 그 시대의 정황에 따라 생겨난 자기들의 특수한 신학적 입장이나 교리체계를 절대적으로 순수한 기독교 진리자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과 다른 모든 것은 잡종으로 아예 기독교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기독교 신앙을 더욱 의미 있게, 그리고 더욱 실감나게 이해하고 해석해 보려는 시도는 모두 '신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이란 딱지를 붙여 일거에 배척한다.
이렇게 새로운 신학을 생각해내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기독교는 기독교이기는커녕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음모, '트로이의 목마'라 생각한다.
자기들만 진짜 순수한 기독교, 순수한 진리 전통을 보수하는 참된 정통파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단한 영적 오만과 신학적 무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옹고집과 독선 때문에 서로 정통파라 주장하는 이들일수록 더욱 사분오열 찢겨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 그것이 진리를 '옹호'하는 길이라고 굳게 다짐한다.
그 다짐을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용사'가 된다.
19세기 팽배하던 군국주의적 사고의 잔재에 발맞추어 "믿는 사람들아 군병 같으니" 등의 전의를 불태우는 군가 같은 찬송을 부르면서 자기들의 믿음을 만방에 전하겠다고 극히 공격적인 '선교사업'에 돌진하는 것이다.
다 아는 것처럼 한국도 이들 외방선교의 중요대상국이었다.
나는 한국에 온 선교사를 모두 나쁘게 평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들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크나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교육, 의료, 과학 기술 면에서 한국 근대사에 끼친 공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나 자신도 그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존경하는 사람 중에 선교사 몇 분이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이 한국에 온 선교사 대부분은 중국이나 일본에 간 선교사와는 달리 극단적인 근본주의자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버트, 게일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이들 거의 모두 한국에 있던 전통 종교는 보나마나 똥개요 '허스키만' 유일한 '진리 개'라는 것을 전하는데 전력을 다한 것이다.
이런 초기 선교사가 남겨 놓은 좋지 못한 유산 중 하나가 현재 한국에 팽배한 기독교 배타주의이다.
한국에서도 물론 유학생들이 서양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개인의 이름을 대는 것은 좀 뭣하지만 고 변선환 박사 같은 분은 유럽이나 미국 신학계에서 공부하면서 지각 있는 서양신학자 사이에 '기독교만' 이라는 배타주의적 생각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한국에 가서 '종교다원주의'를 선창하다가 신학교 학장직은 물론 목사직까지 박탈당하는 '변'을 맞았다.
순수한 '허스키'의 혈통 그 순종을 더럽히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허스키만 개가 아니다.
허스키 중에서도 어느 한 사람이 생각하는 형태의 특종 허스키만 허스키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잣대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하여 누구를 순종 허스키다 아니다 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그런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 세익스피어가 말했다.
"장미가 무슨 이름으로 불리우든 그 향기는 마찬가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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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8
아주!!
새시대를 열게 해주는 통찰력에 한표
개성 진리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한표
모든개를 개로보는 눈을 뜨게한 현준님 사랑합니다.
모든이를 하나님의자녀로 보시게 깨닭음을 주신은사 고맙습니다.
새시대를 열게 해주는 통찰력에 한표
개성 진리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한표
모든개를 개로보는 눈을 뜨게한 현준님 사랑합니다.
모든이를 하나님의자녀로 보시게 깨닭음을 주신은사 고맙습니다.
10:13
오강남 교수님의 열린 정신은 늘 신선함을 전해줍니다.
가끔 갈 之자 걸음을 걷기도 하시지만 그 마저도 이해하게 만듭니다.
풍만한 지식은 심정 교류의 장이기도 합니다.
변선환 교수님에 대한 감리교 목사님들의 회개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제 시청 앞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에서도 목사님들의 핵심주장은 '회개하는 교회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늦었지만 그들이 진정 회개하게 될 때 그들의 죄도 씻어지고 나라도 살고 세계도 살게 될 것입니다.
변선환 교수님은 감리교 지식의 전당인 감리교신학대학 학장(단과대학의 총장과 같은 위치)이셨음에도 정죄당하고 그 열린 정신은 매도 당하셨지요. 순교자처럼 생을 마치셨지요.
가끔 갈 之자 걸음을 걷기도 하시지만 그 마저도 이해하게 만듭니다.
풍만한 지식은 심정 교류의 장이기도 합니다.
변선환 교수님에 대한 감리교 목사님들의 회개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제 시청 앞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에서도 목사님들의 핵심주장은 '회개하는 교회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늦었지만 그들이 진정 회개하게 될 때 그들의 죄도 씻어지고 나라도 살고 세계도 살게 될 것입니다.
변선환 교수님은 감리교 지식의 전당인 감리교신학대학 학장(단과대학의 총장과 같은 위치)이셨음에도 정죄당하고 그 열린 정신은 매도 당하셨지요. 순교자처럼 생을 마치셨지요.
┗ 10:18
대단한 감리교 목사님들...기독교회 목사님들...그렇게 마녀사냥의 기질이 등등한 가운데 자신들의 스승을 몰아내고 매도질을 하다니...그래도 그 양심이 살아있어 그분을 다시보기 시작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기독교건 불교건 우상숭배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돈 받고 복 빌어주는 교회도 있고 그런 절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으로 깨인 지도자들이 소수지만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지도자들은 아마도 불교가 기독교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길을 향해 가는데
입만 열면 하나님을 말하는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팔아먹기에 급급하다면...
기독교건 불교건 우상숭배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돈 받고 복 빌어주는 교회도 있고 그런 절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으로 깨인 지도자들이 소수지만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지도자들은 아마도 불교가 기독교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길을 향해 가는데
입만 열면 하나님을 말하는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팔아먹기에 급급하다면...
┗ 10:21
슬픈 일입니다.
더구나 한 때 젊음을 불사르며 쏟아지는 폭풍우를 맞으며 전진하던 통일교인들의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
진정 회개하며 우리의 미래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곧은 목을 부드럽게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신현준님의 정신도 보다 부드럽게 넓어지기를, 또한 저의 마음과 우리 모두의 마음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한 때 젊음을 불사르며 쏟아지는 폭풍우를 맞으며 전진하던 통일교인들의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
진정 회개하며 우리의 미래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곧은 목을 부드럽게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신현준님의 정신도 보다 부드럽게 넓어지기를, 또한 저의 마음과 우리 모두의 마음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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