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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7일 금요일

신화(神話)의 시대, 종교(宗敎)의 시대, 그리고 이성(理性)의 시대



인간이 지구상에 발생하기 시작해서 지금가지 살아오면서 외적인 면과 내적인 면에서 발전을 했는지 퇴보를 했는지를 살펴본다는 것 자체가 사실 언어도단에 가까운 일이다.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에서 발전을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지금 너무 많다는 것이다.

위의 말을 쉽게 풀어서 이야기를 하면 과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분리 진화하면서 지적수준이 발달하면서 외적인 환경도 같이 발전시켜 나왔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이 보통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할 때는 완벽한 지성을 가지고 출현하였으나 타락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성(理性)의 발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타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완전했을 것이니 이성의 발전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소생기 장성기 완성기의 개인의 성장기간도 각자 당대(當代)에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이성의 발전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마음 속에 두 개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이 편한대로 살아간다.
두 개의 잣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잣대를 가지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면서도 속는 줄을 모르고 살아간다.

우리 속담에 안방에서 들으면 시어머니의 말이 옳고 부엌에 가서 들으면 며느리의 말이 옳은 것처럼 생각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편한 방법으로 안방에서도 맞장구를 치고 부엌에서도 맞장구를 치게 되면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그런 처신을 양쪽의 불신을 초래하고 결국 자신의 설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인간이 유인원에서 분리되어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에서 그런 과정이 없이 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 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가정하여 전개하는 논리는 믿는 이중의 잣대를 가지고 어리석게도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이런 생각이나 이런 생각으로 형성된 가치관들은 소위 하이브리드(잡종) 가치관인 셈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얼치기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을 믿기로 작정을 했으면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든가 과학적 사실을 부정할 용기와 근거가 없다면 종교의 그런 논리를 거부하든가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과학도 믿고 종교의 논리도 거부하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종교인들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인들은 자신을 속이거나 자신이 속고 있는 줄을 모르거나의 한심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신화(神話)와 종교(宗敎)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을까 다른 뿌리에서 출발했을까?
종교가 출현하면서 신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뿌리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나 사실 신화나 종교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종교는 거기에다 교리라는 이성의 옷을 조금 더 입힌 것뿐이다.

지구상 어디를 가더라도 신화와 연관된 전설과 역사와 유물들이 없는 곳이 없다.
서양은 서양대로 동양은 동양대로 서양 중에서도 북유럽은 북유럽대로 남유럽은 남유럽대로...
그리스인들이 만들어 놓은 신전(神殿)들이나 로마가 점령했던 지역에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신전(神殿)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와 연관된 것들이다.

기독교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 전 수백 년에서 수천 년 전까지는 소위 신화의 시대인 셈이다.
그들이 그런 신전을 짓고 신들을 섬기고 살았던 것들이 지금의 지성으로 보면 미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고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지만 그 또한 뿌리는 신화에서 출발하는 것은 기존의 신화와 다름이 없다.
다만 그 신화를 믿었던 민족이 더 우수함으로 인해서 기존의 신화를 배척하고 보다 합리적인 이론을 새로운 추가하여 새로운 신화로 대체를 한 것뿐이다.
구약의 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가 아닌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서양이나 동양이나 신화의 시대에서 종교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그 종교의 뿌리가 신화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다시 시대가 흘러감으로 인해서 그 종교의 시대로 빛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인간의 지성(知性)이 신화는 신화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종교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가 신화에 뿌리를 둔 종교의 이론이 자신들의 지성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신화나 종교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예전과 지금이 다르다.
예전에는 생존의 위협 때문에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 신화와 종교를 믿어왔다면 지금은 기복(祈福)을 위해서 신화나 종교의 힘을 빌린다.
지금의 종교를 보면 기복을 빌어주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지금이 기독교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신화적인 내용 타락이니 부활 그리고 재림이라는 내용을 버린 것이다.

이미 서양은 종교는 인류역사의 유물 수준으로 하나의 문화로 전락되어 있을 뿐 종교가 인류를 구원해 줄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동양 사람들이 불교와 유교를 생활의 문화로 인식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동양 사람들 중에 유교나 불교가 인류를 구원해 줄 희망의 등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을 수양하는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를 기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종교에서의 기복(祈福)은 얼마나 효력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기복은 종교를 통해서만 가능한가?
이런 내용을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기복의 능력이나 소위 액(厄)을 예방하는 능력들은 종교쪽보다는 무속(巫俗)이나 그런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도 효과적이다.
그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전문적으로 그 일을 하기 때문에 소위 길흉화복을 훨씬 더 잘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종교가 할 일은 없다.
신화가 종교에게 자리를 내어 준 것처럼 종교의 사명도 끊나버린 것이다.
아직도 종교가 인간들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고 위안을 주고 영성과 인성에 대한 교육을 해 줄 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그런 것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나 개인 그리고 국가가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고 더 효율적이다.

가장 중요한 영성이나 인성의 개발을 종교가 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어찌 종교가 영성을 개발해 주고 인성을 개발시켜 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종교보다 더 이런 것들을 개발시켜 주는 곳들이 많이 있으며 스스로도 지식의 바다인 인터넷이나 동아리들을 통해서 가능해져 버린 것이며 종교는 오히려 인성과 영성의 개발을 방해하고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신화의 시대에서 종교의 시대를 거처 이제는 이성과 지성이 얼마든지 스스로 개발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이다.

발전하고 변해가는 시대 앞에 종교는 스스로 존속하기 위해서 시대의 역행하는 방법으로 기복이나 빌어주는 곳으로 퇴행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종교를 붙들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이거나 사기꾼이다.
그런 것처럼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 그들과 마찬가지이다.

통일교 또한 종교의 굴레를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에 위에서 예를 든 종교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익명방에 등장하는 온갖 종교적인 용어들...
원죄 혈통 무죄 독생자 독생녀.....
이런 단어들은 인류역사의 유물일 뿐 지금과 미래에 어떤 영향력도 미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길에 나가서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익명방에서 거론되는 이야기들을 한 번 보라.
익명방에 이상한 글을 계속 올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기 보다는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 소식을 세상에 먼저 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누군가가 바깥에 나가서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지 않는가?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삶을 살고 싶다면 세상에서 그 길을 찾는 것이 더 맞다.
그리고 기복(祈福)을 원한다면 전문가들에게 찾아가 보라.
그들은 당신의 현재가 무엇 때문에 지금의 현재가 되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안다.

섭리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섭리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섭리의 대상과 섭리의 목적도 세상이기 때문에 섭리도 세상에서 생각하고 세상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섭리가 통일교회에서 시작되고 통일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통일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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