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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3일 토요일

참부모의 이름이 거짓과 불의를 정당화 할 때...'죽여라!'

참부모의 이름이 거짓과 불의를 정당화 할 때...'죽여라!' 
 

참선 수행을 강조하는 선불교(禪佛敎)에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관념화된 부처는 똥단지에 불과하고, 조사는 그냥 늙은 중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부처는 구한다고 결코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오직 득도와 해탈을 통해 스스로 되어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부처를 만났다고 좋아해서 거기에 머물고, 스승을 만났다고 거기에 머물면 자기 스스로 해야할 득도와 해탈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된다. 따라서 부처도 조사도 모두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다.

위의 불가의 진리를 우리에게 적용해도 결코 틀리지 않다. 참부모를 아무리 외치고, 구한다고 하더라도 관념화된 참부모는 똥단지에 불과하다. 표현이 거칠어 보여도 옳은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예수님도 하셨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섭리의 정신을 놓친 이들이 외치는 '주여 주여!' 음성은 결국 자기구원을 위한 이기적인 몸부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지 않은가? 참부모의 정신과 삶을 나의 생활속에 구현해 놓지 못하고, 그 참부모의 귀한 가치만 귀하다고 핏대 올리며 이야기 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시 말해 참사랑의 실천적 삶을 따르지 않고, 그가 이루려 했던 하나님의 꿈과 소망인 평화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한 실천적 노력을 하지 않고, "참부모 최고! 또 참부모를 믿는 통일교 최고!"를 외친다면 그 무슨 의미 있는 신앙인가? 게다가 참부모의 이름의 우월적 지위를 누군가를 심판하고 매도한다면 이런 신앙은 아니함 만도 못한 신앙이다. 예수는 "불법을 행한자들아! 내가 도무지 너희들을 알지 못하니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요즘 참부모님의 이름은 거짓과 불의를 감추고 정당화 하는데 사용되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세계회장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참부모님이 세웠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명백히 비원리적 반섭리적인 길을 가는데도 말이다. 재단이사장이 통일가의 참사랑의 전통을 파탄 내고 있음에도 참부모님이 세웠기 때문에 그를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못을 하고, 사퇴하라는 여론이 빗발쳐도 참아버님의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 때문에 물러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무조건 참부모님이다. 미대륙의 총회장을 맡았던 참자녀가 재임기간에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고 사생아를 출산 했어도 그녀가 참부모님의 딸이기 때문에 우리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참부모의 이름으로 정당화 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부모님은 정말 위대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위대한 참부모님의 이름은 전가의 보도가 되어 거짓과 불법을 정당화 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문형진 세계회장은 본인의 트위터에 참아버님이 걸으신 흔적을 따라 걷는 길이라고 미국의 유명 명승지 앞에서 활짝 웃는 기념 사진과 레스토랑에서 음식 먹는 장면들을 담아 올렸다. 성화식이 끝나고 참아버님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이 그가 평소 주장한 일곱번 죽고 여덟번 부활했다는 고난의 7사부활노정이 아니라, 미대륙 횡단이라는 초호화 버스로 즐기는 꿈의 여행이다. 참부모님의 이름을 걸쳐 놨으니 우리는 추호도 의심없이 그런 줄 알고 믿어야 한다. 그렇지만 식구들은 믿어야 하되 그런 삶을 결코 흉내내서는 안된다. 참가정을 제외하고는 사생결단 전력투구로 기원절까지 목표를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저런 사치스러운 여행은 허락될 수 없다. 특히 일본식구들은 할당량 헌금액수를 채우지 못하면 기원절에 못들어 가기 때문이다.

 
가족간의 소송전도 원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참사랑의 기준으로 보게 되면 더우기 말이 되지 않는데도, 참부모님의 지시사항이기 때문에 예외라는 것이다. 참부모님은 불의와 불법을 정당화 하는 초법적인 이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 통일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거짓과 불법을 보호하고 정당화 하는 수호신이 된 것이다.

지도자들과 식구들은 참부모님의 이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잘못된 것을 알고, 느끼는 데도 침묵한다. 바로 참부모님 때문이다. 나는 이런 목회자, 식구들을 많이 봤다.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 참부모 때문이란다.



그러나 똑똑히 알아야 한다. 거짓을 눈감고, 불의를 정당화 하는 것은 참부모가 아니다. 그것은 참부모를 가장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우상이고 마귀이다. 참사랑을 파괴하고 섭리를 파괴하는 참부모는 참부모가 아니다. 참부모의 가면을 쓰고 위장한 존재이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이런 참부모를 만나면 미혹되지 말고 무조건 죽여라!

<새벽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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