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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0일 월요일

[개인적 원리 사색] 음란이 원죄라면, 원죄의 뿌리는 무엇인가?

2016.06.19. 10:22
[몇 달전에 올리려다가, 갑자기 김이 새서 그만 둔 글을 쓰레기통에 버릴까 하다가, 이곳에 버립니다. 혹 폐품 수집하시는 분이 있을까 해서.  -을주환]

해와와 타락하기 전, 천사장 루시엘이 느꼈던 인간에 대한 “질투심”은 타락성이 아니라고 원리는 가르칩니다. “창조본성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라고 말하죠. 루시엘은 “과분한 욕망"도 느꼈죠? 해와는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랬”고. 그러나, 이것들도 원죄나 타락성이 되기에는 아직 함량 부족이라는 겁니다, 원리적 관점에서는.

그러다, 드디어 루시엘과 해와가 심각하게 눈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홀연히 “비원적인” 사랑의 힘이 생겼습니다. 이걸 원리는 “금지된 상대기준 조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원리적 사랑의 힘에 떠밀려 둘은, 죽을 줄 알면서도, 서로를 따먹게 됩니다. 이게 “고대적 원리”가 설명하는 타락 과정입니다. 사랑의 자극은 죽음의 공포보다 더 강하다고 강조하지요.   

이런 고대적 설명이 고도의 정보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잘 먹히지가 않습니다. 군데군데 빵구가 많거든요. 이제는 현대인 수준에 맞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타락론 강의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고대적 이론이 인류의 타락병에 대한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단이 근본적으로 잘못 돼 있다 보니, 삼일행사니, 성주식이니, 축복이니 하는 잘못된 처방들에 쓸데없이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

우선, 통일교 타락론 어디에 빵구가 났는 지를 지적하겠습니다.

위에 요약한 타락과정은 기본적으로 유효원 협회장의 설명 방식인데, 설명을 그렇게 한 이유는 자신의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즉, 천사라고 성교하는 과정이 사람과 다르겠냐는 것이죠. 사랑의 열정이 점점 올라 어느 수위에 이르면, 의지로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절정을 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강의를 하면 청강자들은 엉겹결에 동감합니다, 다 들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듣는 이의 경험에 어필하는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에 굳이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무엇이 진실이었나’를 알고 싶어했던 순수한 구도자들 앞에서는 정직하지 못 한 상술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번 보세요--

질투심이 타락을 동기한 원인들중  하나이고, 지금 우리가 생각해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원죄를 유발한 이 나쁜 감정을 그냥 쉽게 “죄"라고 하면 되지, 왜 “창조본성의 부산물"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을까요?  중세 기독교인들은 “자만심"을 죽음을 부르는 7대 죄악중 하나로 마치 원죄처럼 취급했습니다. 통일교는 “질투심”에 대해 왜 그런 징계를 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질투심을 죄라고 말하면 타락론에 논리적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타락론은 죄의 뿌리를 “음란"이라고 결론 짓는데, “질투"를 죄로 규정하면, 뿌리(음란)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열매(질투)가 열려 버렸다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아니면, 질투가 원죄를 유발시킨 진짜 원죄가 되어버립니다.

죄의 위계질서에서, 질투가 감히 음란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면 교리가 너무 평범해 집니다. 그래서, 질투는 음란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 흥만 살짝 돋구고는 멀리 사라져주어야 하는 “창조본성의 부산물"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부산물이라고 하면 덜 나쁘게 들리니까 청강자들이 관심을 덜 가지게 되고, 나중에 등장하는 음란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지요. 그럼, 음란을 원죄로 규정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어요 -- 타락이 발생하기 일보직전의 상황을 질투심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즉, “따먹으면 죽을 줄 알았지만 질투심 때문에 음란을 했다”고 하면 청강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죠.  “죽을 줄 알았지만 사랑의 강력한 힘에 밀려 타락했다"고 설명해야 비로소 고개들이 끄덕입니다. 왜냐하면, 청강자들이 그런 열정적 사랑과 죽음의 종말은 주말 연속극들을 보면서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유협회장께서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집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타락하게 끔하는 힘은 사랑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이 결국 타락을 가능케했다”고 설명해야 하는데, 그렇면 이번에는 사랑이 “원죄의 뿌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다른 원인들, 즉 질투나 상대기준 같은 것, 등을 들고 설명하자니 청강자들을 수긍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딜레마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표현이 바로 “비원리적 사랑"입니다. 즉, 사랑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 원리적인 좋은 것과, 비원리적인 나쁜 것.  그리고, ‘원죄의 뿌리는 비원리적 사랑이지, 원리적 사랑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정적 패착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나니까, 결국 “인간 시조가 타락하기 전에도 이미 비원리적인 그 무엇 (사랑)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말해 버린 꼴이 된 것죠. 여기서 타락론이 자멸한 것입니다.      

타락하기도 전에, 이미 어떤 비원리적인 것, 곧 “비원리적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면, 굳이 복귀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탄의 혈동이나 타락성이 없어도, “비원리적 사랑"은 상대기준만 조성되면 언제나 생길 수 있고, 그것이 원죄인 음란을 또 다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000년 걸려서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 봤자, 비원리적 사랑때문에 또 음란이 생겨 다시 떨어질텐데, 뭐 하러 자꾸 뺑뺑이를 돈단 말입니까.  그냥 여기서 살지.

이건 정말 큰 실망입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우주의 근본 원리를 밝힌다고 큰 소리를 치고는 통일원리가 내린 결론은, 결국, “세상 모든 것에는 선(원리)과 악(비원리)이 있다. 선만 행하라”고 가르치는 초등학교 도덕 과목 수준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 단순한 결론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설명하고, 시간 낭비를 했단 말입니까?   

도데체, 타락론의 이 논리적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왜 타락했으며, 어떻게 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평균 지능을 가진 식구님이라면 모두 그 답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쉽고 당연한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두 “음란"에만 시선이 꽃혀 있습니다.   


그 진실의 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미완성 상태였기 때문에 인간은 타락했다.”

당연하죠. 루시엘이나 해와나 모두 미완성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원죄를 짓은 것입니다.

천사장이 어떻게 미완성일 수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천사장이 당시 완성된 존재였다고 말하면, 문제는 정말 골 때리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은 설사 완성을 한다해도 나중에 타락할 수 있다는 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제 주인의 지시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종을 완성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입니다.

원죄나 타락성이 없어도, 미완성된 인간은 언제나 다시 타락할 수 있습니다.  성주식과 축복식을 3천번 받는다 해도, 그 인간이 덜 됐다면 (미완성) 언제나 다시 타락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혈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을 완성 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의 완성 보다는 혈통의 전환에 모든 관심이 꽃혀있는 현재 교회의 교리나 정책은 분명 인류 문제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며, 신도들의 돈과 시간을 헛된 곳에 허비케하는 부조리(난센스)입니다.

이 잘못된 타락론을 바로 잡지 않고 하는 모든 노력들은 헛수고 입니다.

‘문제의 근원은 음란이나 혈통이 아니라, 미완성이다'고 보면 모든 신학적 문제가 너무나 쉽게 풀립니다.

가령 “어떻게 완전한 하나님이 창조한 작품들이 타락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하면 됩니다:   아무리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라도 물질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려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왜냐하면, 작품은 결국 물질이고, 물질은 하나님처럼 시공을 초월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시공의 제한을 받는 물질은 일정 시간을 통해서 완성된 작품을 탄생한다. 즉, 창조가 완전하게 마무리 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게 성장기간이다.  따라서, 성장기간은 창조기간과 동의어다.  

이런 관점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인류는 아직 하나님의 창조과정중에 있고, 완성된 성인으로 만들어지는 창조과정에 있다고 결론 지으면 됩니다.  그러면,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한 복귀섭리 공식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현재 그 분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작업 도중에 이런 저런 문제들이 생기고 있을 뿐이다.  전지전능하신 그 분의 능력을 믿는다면, 언제가는 반드시 신인일체인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완성된 세상을 이룩할 것이다.

-을주환


 
16.06.19. 15:52 new
[하나님의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현재 그 분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작업 도중에 이런 저런 문제들이 생기고 있을 뿐이다. 전지전능하신 그 분의 능력을 믿는다면, 언제가는 반드시 신인일체인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완성된 세상을 이룩할 것이다.]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16.06.19. 19:00 new
하나님도 결국 완성되지 못하신 상태입니다.
인간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하나님도 완성하실 수 았다고 볼수있으며 아버님도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6.06.19. 22:13 new
통일교는 인간 완성 어떻게 하는 지 몰라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입니다.
못하는 서비스를 신도들에게 팔 수는 없죠.

그래서 대신 혈통복귀를 파는 겁니다.
'인간이 완성됐나'는 객관적으로 쉽게 증명할 수 있지만,
혈통이 진짜 복귀됐는 지, 안 됐는지 증명할 수 없거든요.
증명이 불가능한 서비스를 파는 것은 종교 장사의 기본이죠.

무지한 인간들 때문에 가능한 장사입니다.
┗ 05:59 new
매우 동감입니다!
 
01:38 new
타락론은 빵구보다 더 심각한 것은 창조원리와의 논리모순입니다.
창조원리에서 하나님의 모든 실체대상은 이성성상이라고 해놓고 타락론에선 타락한 천사에 대해선 영적인 존재로만 설정되었다는 것, 설사 영적 존재가 유혹한다 할지라도 웃기는 것은 인간 해와가 귀신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소설같지도 않은 논리를 전개했다는 것, 타락론은 모순투성이입니다.
솔직히 더 기막힌 것은 원리강론에서 총서론부터 창조원리 재림론까지 한페이지마다 논리전개 자체 내적 모순 뿐만아리라 진리가 아닌 내용도 수두룩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원리강론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대해서 정확한 설명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01:39 new
후편 복귀역사론에 들어가선 아예 해석자체가 심각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창조원리와의 자체 모순, 상식적이지 않는 비과학적인 허무맹랑한 해석들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대충 원리강론을 정독하면서 느낀 것은 수십개 정도가 아니라 백여개의 모순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원리강론의 모순을 대략 백여개 정도를 발견했는데 심층적으로 본격적으로 분석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입니다. 
 
01:11 new
어쨌거나 원리강론에서 설득력 있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어느 정도 제시된 것은 분명합니다.
 
01:44 new
맞는 말씀입니다.
원죄는 없습니다.
미완성인거죠.
아담이 도전했다가 좌절한 거죠. 
 
05:56 new
을주환님 그러면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은 미완성 입니까?
┗ 06:20 new
연세를 드실만큼 드신 분들을 미완성이라고 하는 것은 실례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타락했다고 할만한 일들을 하신 것도 없으시고.
대신 능력들이 좀 부족하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댓글 1개:

  1. 진리는 보편 타당한 것이다.

    물이 흐르듯이 명확한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라고 말씀하셨다.




    통일교회 문선명씨나 한학자씨는 종교를 창시하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비추어 볼때 문선명 교주가 주장하는 결과들은 무엇인가?




    문선명씨 스스로의 혈통은 과연 선한가?

    문선명씨는 과연 스스로 원죄를 청산했는가?

    스스로 가정완성을 이룩했는가?

    참가정을 이룩하고 참자녀를 낳았는가?

    그들의 자녀는 어떤가?

    그가 만든 조직과 교회는 어떠한가?

    그를 따르던 소위 36가정과 교권세력, 교회지도자들은 어떠한가?

    그가 시켜서 청평역사를 한 김효남과 김재봉은 어떠한가?

    일반적인 국법이나 관습법, 양심법으로 볼때 그들은 완성하고 통일교에서 주장하는

    교리들을 실천했는가?

    김효남씨 가정, 자녀 다 이혼이나 파탄나지 않았는가?

    김효율씨는 어떠한가? 통일교인들이 존경하는가?

    곽정환씨는 어떠한가? 지들끼리 자르고 이단이라 하고 출교시키지 않았는가?




    진리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

    진리는 상식이다.

    진리는 양심이다.

    진리는 진실이다.

    통일교에 문제있는 사람들, 문선명씨 자신이나 한학자씨 자녀들

    곽정환, 김효남, 김효율, 등등

    내가 문제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이단시하고 정죄한 사람들.

    서로 이단이라하는 문현진, 문형진, 문국진, 등등




    참고: 여기 언급된 모든 인물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인권이 있으며 하느님앞에 훌륭하고 평등한 인격체이며 모두 개성있는 사람들이다. 비판은 통일교에서 주장하는 내용으로 그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다. 특히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나는 이사람들처럼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이 타락되었으며 사탄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통일교 축복만이 구원이고 복귀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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