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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6일 화요일

창조본연의 참사랑의 부부관계가 말씀 변조의 근거일 수 없다!

창조본연의 참사랑의 부부관계가 말씀 변조의 근거일 수 없다!

2013.08.05. 12:21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1731

"노랫말을 작곡가의 부인이 바꿀 수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이기 때문에?"


어느 분이 아주 적절한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은 어쩌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그것은 모든 부부가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연 맺은 부부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고 비전입니다. 부부일심동체는 참사랑의 부부관계를 일컷는 말입니다. 
 
부부가 자녀를 낳아 기르며, 가정의 행복을 위해 살다보면 부부의 마음은 일심동체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의 성격과 생각, 행동이 아내와 똑같아지거나, 아내가 남편과 똑같아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똑같아진다고 가르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비원리, 비진리를 가르치는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죽을 때까지 인간은 개성진리체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개성진리체의 인간이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을 통해 완성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합성일체화 한다고 합니다. 부부 사랑의 합성일체화 된 객체가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버니, 어머니는 하나님의 이성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존재인 것입니다. 


남편이 이루어 놓은 일을 남편의 사후, 유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이 바꿀 수 있을까요?
생전의 남편은 노래 만드는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쓴 노랫말이 히트를 치고, 유명세를 타고, 세상에 많은 팬들이 생겼고, 그로 인해 많은 상도 타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자 몇몇 구절은 마음에 안든다고 아내가 그 노랫말을 바꿀 수 있을까요? 남편 살아 있아 있을때는 남편에게 건의도 할 수 있겠죠? 그래도 바꾸는 것은 남편의 몫입니다. 시, 소설 등의 문학작품도 마찬가지이고, 그림, 음악 등 다른 예술세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작곡가 누구의 부인이라고 하면, 그러한 작곡가를 내조한 부인으로서 한 없는 존경을 받습니다. 그 아내가 없었다면 위대한 작곡가 남편은 세상에 없었을 테니까요!


남편이 한 일을 아내가 마음대로 바꾸는 행위를 정당화 하라고, 부부일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부부일체라는 말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주라는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 아내가 하는 집안일들은 남편에게 존중 받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의 문화적 일편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내조를 소중하게 여기는 남편이 되어야 하고, 남편이 하는 바깥일을 아내가 이해하고 더욱 내조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어쩌면 '부부일체'라는 말의 속 뜻이 아니겠습니까?  참아버님은 참사랑으로 완성된 부부는 '동참권, 동위권, 동거권'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 부인은 영부인이 된다는 것을 실례로 설명하셨습니다. 이렇듯 부부일체는 참사랑의 부부관계를 설명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부자일체도 마찬가지 뜻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원리강론은 유효원 전협회장의 조력에 의한 참아버님의 단독작품입니다. 당시 어머님은 참아버님과 성혼하시고 혹독한 7년 노정을 보내시고 있을 때입니다. 가정맹세문도 마찬가지이고, 나머지 8대교본교재도 모두 참아버님의 단독작품입니다. 만약에 참어머님께서 참아버님께 당신의 생각을 말씀드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전에는 참어머님이 어떤 말씀도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아버님은 말씀집을 '참부모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하시고 공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신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말씀의 원문을 수정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반발이 있자, 급기야 말씀편찬위원회(위원장 김영휘)와 양창식 총회장 등은 참아버님이 참어머님과 일심, 일념, 일체, 일화를 강조하는 요상한 언행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거기에 김영휘 회장님은 참아버님이 언제나 참어머님과 영적으로 함께 하며 일문일답을 한다는 말씀까지 보태고 있습니다. 


이 두분은 일체라는 말의 뜻을 '참사랑의 부부관계'가 아닌, 참부모님이 생각을 비롯한 모든 면이 같다는 뜻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논리에 기반한 설명은 매우 괘변스럽습니다. 펼치는 논리 자체에 이미 모순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참아버님과 일심, 일체, 일념, 일화의 참어머님이기 때문에 말씀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면, 영계에 계신 참아버님과 일문일답하면서 상의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일체의 관계라고 하는 것은 상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의는 서로가 다르거나, 모를 때 하는 것입니다. 일체라면 무슨 상의가 필요합니까? 원리강론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부분을 근거로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생각이 동일한 일체라고 한다면 기도는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더 더욱이 그 말 뒤에 이어지는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서 작업을 했다는 말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참아버님, 참어머님이 일체의 관계이고, 그렇게 합의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면,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일 필요가 어디있습니까? 하나님, 참아버님, 참어머님의 삼위일체적 일체적 관계인데 전문가 의견은 도대체 뭡니까? 불필요한 엑스트라의 출현이 아닌가요? 


이렇게 말씀을 편찬한 측에서 괘변스러운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한눈에 딱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순전히 권위로 입막음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아버님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참어머님, 전문가들의 권위... 이런 권위의 합(合)으로 비원리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려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권위처럼 잘 먹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권위주의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겠습니다.   


참아버님이 창조본연의 참사랑의 부부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표현하신 '일심, 일체, 일념, 일화'와 그 모든 섭리적 의식들이 말씀을 변조할 수 있는 논리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음을 영계에서 바라보시는 참아버님은 어떤 심정이실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참사랑의 부부관계가 말씀변조를 허락할까요?


<새벽 별>
                                   

13.08.05. 13:56 new
백번 천번 맞는 말씀입니다.
이제 교활스러운 지도자들의 세속적이고 탐욕스로운
억지 논리는 비록 참부모님의 이름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속물들의 농간일 뿐입니다.
이들은 아무곳에서나 일심, 일체, 일념, 일화를 적용시켜
참어머님을 비 상식적인 인물로 끌고가고 있습니다.
 
 
13.08.05. 14:07 new
그럼에도 한마음으로 넘치는 아부 찬송의 합창을 낯간지럽게 날리며 그래도 지도자로 불리고 싶어하는 저 까마귀들의 정체는 뭘까요?
 
 
13.08.05. 14:46 new
존귀하시고 경애하고 사랑하는 참어머님이 하시는 일이니 존경과 사랑과 열렬한 찬사를 계속 올려야 마땅하지 않을깝쇼? 마당쇠.
 
 
13.08.05. 15:04 new
참사랑의 부부관계를 말씀을 변조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핵심인 글이군요. 참어머님이기 때문에 참아버님과 똑같은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밝혀주셨습니다.
 
 
13.08.05. 17:40 new
모든 책임을 어머님께 돌리는 저들은 결국 참어머님 무용론(필요없음)을 들고 나올 것입니다. 결국은 법통만 존재한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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