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특종 보도한 [세계일보]의 위기

시사INLive | 정희상 전문기자 | 입력 2015.02.06 13:58
 
 
지난해 '정윤회 문건'을 특종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보복이 시작된 것일까? '국세청 내 대검 중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1월22일 <세계일보>의 모체인 통일교 관련 회사인 청심, 진흥레저파인즈 등에 특별 세무조사를 통보했다. 청심그룹은 청심국제병원과 청심국제청소년수련원, 청심국제중·고교 등 의료·복지·교육 시설을 운영하는 통일교 재단 관련 그룹이다.

동시에 서울중앙지검도 최근 청심그룹에 대한 배임 혐의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통일교 핵심 인사들이 수천억원의 배임 행위를 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현재 조사부에서 수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 통일교 측은 '2013년 10월 하순께 남 아무개씨가 검찰에 고발한 사건으로 지금까지 피고발인 조사를 받았을 뿐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그런 와중에 이번 청심그룹에 대한 국세청 조사4국의 세무조사가 시작되어 우리는 검찰 수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 ⓒ시사IN 이명익 : 지난해 12월5일 <세계일보>가 압수수색 당할 수도 있다고 알려지면서 사옥 앞에 취재진들이 모여 있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가 통상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통일교는 이미 2013년 10월부터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문선명 총재 타계 후 상속과 증여 과정의 탈세 여부에 대한 세무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올해 초까지 약 120억원의 탈루 세금을 추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마당에 또다시 사정기관이 칼을 빼든 데다 국세청 조사4국까지 나서자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 보도에 대한 보복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정윤회 문건' 특종 보도 이후 지난 2개월 동안 <세계일보>와 통일교 내부에서 벌어진 어수선하고 복잡한 갈등도 권력 입김 의혹을 부채질한다. 문건 보도 이후 50일 동안 <세계일보>에서는 회장이 2명이나 교체됐다. 또 새해 들어 사장 교체를 둘러싸고 편집국 기자들과 당사자 사이에 '셀프 인사' '경영권 강탈' 등 험한 표현까지 오가더니 결국 신임 사장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한 간부가 파면당하는 등 내홍이 벌어졌다.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세계일보>는 문선명 총재 사후 부인인 한학자 총재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해 11월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첫 보도가 나간 뒤 파문이 번지자 한학자 총재는 12월1일 첫 조처를 취했다. 4남인 문국진씨가 맡고 있던 <세계일보> 회장 자리를 영남 출신인 선문대학교 부총장 손대오씨로 바꿨다.

이날 한학자 총재는 전국의 통일교 목회자 500여 명을 경기도 청평의 수련원에 불러모아 '훈독회'를 열었다. 이 자리는 <세계일보> 보도 직후 십상시로 거론된 청와대 인사들이 <세계일보> 사장과 편집국 기자 등을 형사 고소하면서 청와대와 언론사 간 대립각이 첨예해지자, 이를 걱정하는 신도들을 격려하고 안심시키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한 총재는 이 자리에서 '<세계일보>가 이 정부를 교육하는 신문이 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정의사회 구현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우리는 두려울 게 없다. <세계일보>도 마찬가지다. 두려울 것 없이 진실을 밝히면 된다'라고 독려했다. 말미에는 '무지에는 완성이 없다고 했다. 알아야 현명한 판단을 하는 거다. 이 백성이, 이 정치인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려면 배워야 한다. 우리밖에는 알려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한 방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연합뉴스 : 문선명 통일교 총재 사후 부인 한학자씨(위)가 총재직을 이어받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세계일보>도 마찬가지다.
 
 
한 총재는 함께 참석한 <세계일보> 조한규 사장에게는 '앞으로 <세계일보>의 모든 일은 신임 손대오 회장과 상의해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한 총재의 발언과 조처는 문건 보도 이후 통일교와 <세계일보>에 닥친 정부의 대응에 화전 양면 전술을 주문한 것으로 읽힐 만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교 측 한 인사는 '한 총재는 이날 권력 감시와 진실 보도라는 언론의 본연의 기능을 강조함과 동시에 문건 보도가 통일교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불똥이 통일교로 튀지 않게 하기 위해 영남 출신인 손 회장을 임명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손대오 회장은 그 뒤 검찰의 수사 추이를 지켜보면서 <세계일보> 보도의 수위와 속도를 조절하는 데 개입했다고 한다. 또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의 기류를 탐지해 대응책을 준비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의존한 인물이 <세계일보> 조민호 심의인권위원(55)이었다. 조 위원은 격앙된 청와대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면 문건을 보도한 조한규 사장을 교체하는 등 선제적 유화책을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북 청송 출신인 조 위원은 이렇게 해서 손 회장에 의해 후임 사장 물망에 올랐다. 손 회장은 12월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머물던 한학자 총재를 찾아가 사장을 조한규에서 조민호로 교체하자고 건의했다. 경북 청송 출신인 조민호 위원이 정치부 기자 등을 하면서 현 정권의 영남 출신 실세들과 친분이 있기 때문에 정권과의 긴장관계를 풀고 불똥이 통일교로 튀지 않도록 하는 데 적임이라고 본 듯하다.


혼란 틈타 '셀프 사장 인사' 사건 벌어지기도


처음에는 한 총재가 손 회장의 건의를 수락했다. 12월29일 귀국한 손대오 회장은 조민호 위원을 불러 이 사실을 전달했다. 하지만 12월30일 한 총재는 비서실장을 통해 구두 수락한 조민호 신임 사장 인선을 보류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통일교 측은 '손 회장의 주장이 사장 천거 대상자인 조민호 위원으로부터 나온 정보에만 의존했다는 점이 확인되어 면밀한 검증이 필요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손대오 회장은 한 총재의 인사 중단 지시를 조민호 위원에게 통보하지 않았고, 조 위원은 정상적인 내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1월1일자로 본인이 <세계일보> 신임 사장에 임명됐다는 보도자료를 뿌린 것이다. 해당 보도자료에는 '<세계일보> 제15대 사장 겸 편집·인쇄인에 조민호 심의인권위원이 취임한다'라는 내용과 조 위원의 약력이 담겼다.

새해 벽두의 이런 사태는 <세계일보> 편집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1월1일 출근한 50여 명의 기자가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조민호 위원의 행위를 '셀프 사장 인사'이자 '묵과할 수 없는 경영권 탈취 행태'라고 규탄했다. 기자들은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악전고투하는 조한규 사장 체제를 흔들고자 하는 세력이 벌인 '쿠데타'로서, 절차 문제뿐 아니라 회사의 비상 상황을 자신의 출세에 악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심각성을 주장했다.


 
↑ ⓒ세계일보 제공 :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오른쪽) 부부는 2009년 통일교가 주최하는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통일교 간부들도 1월1일 오후 시내 한 호텔에 모여 한 총재의 인사 보류 지시가 지켜지지 않은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또 손 회장이 조민호 위원의 일방적인 여권 동향 탐지 보고에 의존해 후임 사장으로 그를 점찍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이 회의에서는 조민호 위원과 논설위원실 조정진 부장이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셀프 사장 인사' 보도자료를 뿌린 것이 해사행위로 간주되어 '10일 자택대기' 징계 결정이 내려졌다. 한학자 총재의 인사 보류 지시를 어긴 손대오 회장은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후임 <세계일보> 회장에는 김민하 전 중앙대 총장이 추대됐다.

그렇게 되자 '셀프 사장 인사'를 하려 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조민호 위원은 1월20일 <세계일보> 사내 전산망에 '선후배 동료들께'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반박 및 해명 글을 올렸다. 여기에는 그간의 인사 뒷얘기와 함께 자기가 사태 수습을 위해 여권 인사와 만나 '편집인 자리'를 제안하는 등 모종의 '빅딜'을 하려 했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다.

'손(대오) 회장과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력한 채널을 가동해 통일교 관련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분석하는 것이 나의 1차 임무였습니다. 공개하긴 좀 그렇지만 통일교는 내부에 상당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학자 총재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손 회장을 급파한 배경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정치권력이 바보가 아닌 한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언론 탄압이나 종교 탄압을 할 리 만무합니다. 다름 아닌 형법으로 다스릴 폭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손 회장과 긴 시간 많은 대화를 하면서 늘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조한규 사장에 대해 유독 연민과 미련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통일교 사태'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손 회장의 이 같은 태도는 방해 요소가 됩니다. 왜? 정치권력 입장에서 정윤회 문건 보도는 대통령의 목에 칼을 들이댄 격이고 그 중심인물이 <세계일보>를 대표하는 조 사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세상의 상식 아니겠습니까? 문건의 진위를 떠나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고 국정이 휘청거리는 상황이 말해줍니다. 이런저런 곡절과 과정을 거쳐 내가 사장 후보로 올라가게 됩니다.'

내부 분열로 흠집 난 '정윤회 문건 단독 보도'

이 문건에 <세계일보> 기자단은 또 한번 격앙되었다.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닥친 외압을 견뎌내기 위해 그나마 편집국이 똘똘 뭉치려는 분위기에 조 위원이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한국기자협회 <세계일보> 지회는 즉각 조 위원 징계를 촉구하며 소속 기자 대부분(114명)이 서명에 나섰다. 조 위원은 1월22일 징계위에 회부돼 허위사실 유포와 회사 명예훼손 등의 사유로 파면 처분을 받았다.

조 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정윤회 문건 보도 후 어려워진 통일교와 <세계일보>를 도와주려 한 것밖에 없는데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손대오 회장은 처음에 편집국장부터 바꾸려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사장 교체는 한학자 총재의 명을 받아 이뤄진 일인데 인사가 유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교주가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철회하면 권위가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권 핵심부로부터 얻었다는 통일교와 관련된 자신의 정보가 '셀프 사장' 목적이었다는 기자들과 통일교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만난 여권 핵심 채널은 슈퍼갑이었고 자기는 을이기 때문에 자기가 사장이 된다고 해서 봐주거나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정권에서 통일교의 위기는 양측 가문의 앙금에서 비롯된다. 박 대통령 동생 박근령씨와 신동욱씨 부부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 부부로부터 축복 결혼을 받은 역사가 있다. 통일교에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라고 이런 정보를 줬지만 무시됐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세계일보>와 통일교 내의 잡음이 외부로 불거지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대정부 관계에서 '주전파와 주화파' 간 갈등이랄지, 통일교 내 영호남 세력의 대립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하지만 통일교 측은 이에 대해 억지 프레임이라고 반박한다. 안호열 통일교 대외협력본부장은 '<세계일보> 인사 파동을 영호남 갈등으로 몰고 가는 것은 터무니없다. 통일교단 산하 40여 조직의 주요 간부진은 영호남·충청 출신이 고루 포진해 있고, 대부분 문선명 총재 생전에 임명된 분들이다'라고 말했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 <세계일보> 지회장은 '<세계일보> 내부가 마치 친정부와 반정부 두 세력으로 나뉜 것처럼 보도되는데 사실무근이다. '정윤회 문건' 단독 보도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을 한두 명이 자신들의 출세와 입지를 위해 악용하는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민호 위원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두고 보자. 진실은 나중에 가려질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정희상 전문기자 / minju518@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