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의 폭력은 크게 두 가지다.
독생녀 섭리의 이름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적 폭력과
이러한 억압에 대항하는 개인의 양심적 저항이다.
독생녀와 기득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거대한 섭리적 명분과 구조적 폭력을 섭리의 이름으로 행사한다.
민중사관에서 보면 독생녀와 기득권은 독재정치 또는 ‘위로부터의 폭력’이고
개인의 양심적 저항은 민중의 저항 또는 ‘아래로부터의 비폭력적 저항’ 이라 할 수 있다.
독생녀와 간부들은 눈이 보이는 심각한 폭력성을 내포해도 통치행위로 당연하고 정당화 한다. 양심적 저항은 약자의 저항수단이고 신앙세계에서 불평불만으로 간주한다. 독생녀와 가신권력에 개인의 조그만 양심적 저항은 바위에 계란치기다. 간디는 불의에 저항하라. 폭력적 저항보다 양심을 찌르는 비폭력 저항을 주장했다. 그 대신 악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은 무능이나 비겁이라고 비판했다.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양심을 따르기 위해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불복종’도 필요하고, 바람직한 질서를 세우기 위해 권력에 협력하지 않는 ‘비협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폭력적 양심의 저항의 본질은 크게 두가지다. 참아버님의 양심은 하나님보다 부모보다 앞선다는 양심이 진리에 앞선다. 양심은 섭리와 독생녀를 구조폭력으로 패배시키는 대신 정신력과 포용력으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상대의 육체에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상대의 양심을 찌르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제 교회의 마지막 보루인 원로그룹이 굴복하지 않거나 협력하지 않는다면 참아버지의 이름으로 신앙과 양심으로 반대하고 양심적 저항하라! 그러면, 아무리 독생녀 섭리시대라고 그 권력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리고 본향원에서 잃어버린 아버지를 다시 찾을 것을 것이다...... |
15.12.03. 18:08
지성에 입각하여
양심의 기준에 순응하여
원리적 견해에 호응하여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원로그룹이 있기나 한지 모르지만
나이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양심과 원리적 판단에 의해
식구로서의 도리,
아니 축복가정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야 한다.
신앙인이기 이전에 순수한 인간으로서 양심의 도리를 망각치 말아야 한다.
아버님께서 왜 양심의 도리를 강조하셨는가를 숙고해야 한다.
양심의 기준에 순응하여
원리적 견해에 호응하여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원로그룹이 있기나 한지 모르지만
나이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양심과 원리적 판단에 의해
식구로서의 도리,
아니 축복가정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야 한다.
신앙인이기 이전에 순수한 인간으로서 양심의 도리를 망각치 말아야 한다.
아버님께서 왜 양심의 도리를 강조하셨는가를 숙고해야 한다.
21:28
현직 목회자들이 문제이고
원로 목회자라고 하는 분들은
원리와 섭리를 배우고 말하고 강의하고 설교하고 아버님대신 각지역을
대표해서 타락인간들을 하늘 앞으로
인도 하여 구원받게 해야하는 큰
책임을 갖고 살아온 분들인데
망가저 가는 통일가를 보면서
말한마디 못하고 눈치만보고
요령만 피우는 사람들은 소신도
원리기준도 분별력 없는 자들은
이제 쓸모 없이 페기처분 해야할
때가 온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세계.국가를
논할자격이 있는가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자들은
공동묘지에 사망신고할 일만 남았습니다
원로 목회자라고 하는 분들은
원리와 섭리를 배우고 말하고 강의하고 설교하고 아버님대신 각지역을
대표해서 타락인간들을 하늘 앞으로
인도 하여 구원받게 해야하는 큰
책임을 갖고 살아온 분들인데
망가저 가는 통일가를 보면서
말한마디 못하고 눈치만보고
요령만 피우는 사람들은 소신도
원리기준도 분별력 없는 자들은
이제 쓸모 없이 페기처분 해야할
때가 온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세계.국가를
논할자격이 있는가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자들은
공동묘지에 사망신고할 일만 남았습니다
원로 목사 현직목사 그들에게 희망이 없다.
답글삭제식구라도 제 정신이면 되는데 그런 식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