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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0일 목요일

우리는 유토피아를 건설 할 수 있는가(1)?

우리는 유토피아를 건설 할 수 있는가(1)?

2013.10.10. 12:07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2482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뜻은 하나님이 치리할 수 있는 세상으로 하나님이 치리할 수 있는 세상의 결과는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의 결과는 결국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말로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 때 비로소 그 세상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동기의 중심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만 빠져 있을 뿐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그 세상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
아래는 역사상에서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사람들과 실지로 만들어졌던 세계의 내용들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발췌난 내용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면 그들은 왜 실패를 했을까를 한 번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우리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 실패의 원인이 있다면 그 실패의 원인을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가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실패의 원인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도 실패하고 말 것이다.
 

유토피아 이야기 : 기원(起源)
 
유토피아라는 말은 1516년 영국인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 냈다. 그리스 어 <우u>는 부정의 접두사이고, <토포스topos>는 장소를 뜻한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본주의 철학자이자 외교관, 대법관이었던 모어는 세금도 가난도 범죄도 없는 사회 체계를 가진 경이로운 섬을 묘사하면서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불렀다. 그는 <유토피아적인> 사회의 첫 번째 특징으로 <자유로움>을 꼽았다.
그가 묘사한 이상향은 다음과 같다.
한 섬에 10만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가구 단위로 편성되어 있으며, 50가구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시포그란트라는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 지도자들이 모여 평의회를 구성하고 네 명의 후보 중에 한 사람의 군주를 뽑는다. 군주의 지위는 종신제이지만, 그가 전제적인 행동을 보일 때는 퇴위시킬 수 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폴레트라는 용병을 부리는데, 그 병사들은 전투중에 적들을 죽이고 자기들도 죽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쓸모가 다하면 전쟁의 도구가 스스로를 파괴하게 되어 있는 셈이다.
화폐는 없고, 주민들은 각자 필요한 만큼 시장에서 물건을 구한다. 집들은 모두 똑같고 자물쇠가 없다. 누구나 한곳에 눌러 살지 않고 10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다. 무위도식은 금지되어 있으며, 가정부, 사제, 귀족, 하인, 거지 따위는 없다. 모두 노동을 하므로 일일 노동 시간을 6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2년 동안 농사를 지어야 할 의무가 있다.
간통을 범하거나 유토피아에서 도망치려고 기도한 자는 자유인의 권리를 잃고 노예가 된다. 그러면 그는 훨씬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소신을 굽힐 줄 모르던 토마스 모어는 1535년 자기 이상향과는 너무 동떨어진 현실 세계에서 감히 영국 왕 헨리 8세의 이혼을 비판하고 나섰다. 왕은 즉시 그를 런던탑에 투옥하고 사형을 내렸다.
 
 
 
유토피아 이야기 : 아담 파 신자들
 
15세기 초엽 보헤미아에서 교회의 개혁과 독일 영주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후스 파 신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들은 신교의 선구자였다.
그들 중에서 급진적인 한 집단이 떨어져 나왔다. 아담 파 신자들이었다. 그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해 이론을 제기했다. 그들이 보기에, 신에게 다가가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담과 똑같은 조건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들은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블타바 강 한복판의 섬에 자리를 잡고, 나체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재산을 공유화하고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살았던 지상 낙원의 삶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모든 사회 제도가 철폐되었다. 화폐, 귀족 계급, 정부, 군인, 자산 계급, 유산 상속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작을 삼가고 야생 열매와 채소만을 먹는 채식 생활을 했다. 교회도 성직자도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신에게 직접 예배를 드리고 살았다.
그러한 급진주의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후스 파 신자들은 그들의 지나친 행동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신에 대한 예배를 간소하게 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아담 파의 경우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후스 파 신자들은 블타바 강에 있는 섬을 포위하고 아담 파 신자들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학살하였다.
 
 
 
유토피아 이야기 : 오로빌
 
인도의 퐁디셰리 근처, 오로빌(오로르빌)29)의 모험은 인간이 시도한 가장 흥미로운 이상주의적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1968년 뱅골 철학자 스리 오로벵도와 프랑스 여류 철학자 미라 알파사(<어머니>라 불리었음)는 그곳에 이상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곳은 모든 것이 중앙으로부터 뻗어 나가는 방사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든 나라로부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주로 절대적 이상향을 추구하던 유럽 인들이 오로빌로 모여들었다.
남녀 모두 풍차, 수공업 공장, 배수로, 정보 센터, 벽돌 공장을 건설했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 작물을 심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영적 경험을 세세히 기록한 몇 권의 책을 썼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살아있는 <어머니>를 신으로 받들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만사가 순조로웠다. 처음에 그녀는 그런 영예를 사양했다. 그러나 스리 오로벵도가 죽고 나자,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해 줄 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미라 알파사는 오래지 않아 숭배자들의 요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들은 그녀를 방에 가두고, 살아서 여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죽은 여신이라도 되라고 강요했다. 미라 알파사는 스스로에게 신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미라 알파사는 억지 춘향으로 여신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머니>는 아주 쇠약해 보였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기가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과 숭배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음을 폭로하려 하자, 숭배자들은 그녀의 말을 막고 방으로 끌고 갔다. <어머니>는 자기를 숭배하는 척하는 자들이 매일매일 가하는 고통 때문에 점점 쭈그렁 노파가 되어갔다.
그래도 <어머니>는 유여곡절 끝에 자기의 옛 친구들에게 은밀한 전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은 여신, 즉 더 쉽게 숭배할 수 있는 여신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구원 요청은 헛된 것이 되었다. 그녀를 도우려던 사람들은 즉각 공동체로부터 쫓겨났다. 최후의 통신 방법으로, 그녀는 갇혀 있던 방안에서 자신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어머니>는 1973년에 죽었다. 십중팔구는 치사량의 비소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오로빌 공동체는 그녀를 여신으로 예우하면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없어지자, 더 이상 공동체를 공고히 해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구성원들은 서로 대립했다. 이상 세계에 대한 꿈을 망각한 채, 그들은 서로를 법정으로 끌고 나갔다. 그들이 벌인 많은 소송을 보면서 사람들은 한때 가장 야심 만만하고 성공적인 공동체 실험의 하나였던 오로빌에 대해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29) 새벽을 뜻하는 aurore와 도시를 뜻하는 ville을 합친 것.
 
 
 
유토피아 이야기 : 텔렘 수도원
 
1534년 프랑수아 라블레30)는『가르강튀아』에 묘사된 텔렘 수도원을 통해, 자기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거기에는 통치 기구가 없다. <자기 자신도 다스릴 줄 모르거늘, 어찌 남을 다스릴 수 있으리오> 하는 것이 라블레의 생각이다. 통치하는 자가 없으므로 수도원의 공동 생활자들은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행동한다. 텔렘 수도원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까닭은 거주자들을 선별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혈통 좋고 정신이 자유롭고 교양 있고 고결하고 아름다운 선남선녀들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여자들은 열 살, 남자들은 열두 살 때 들어간다.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일할 마음이 나면 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쉬고, 마시고, 놀고, 사랑을 나눈다. 시계가 없으므로 시간의 흐름은 잊고 산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다만 소요, 폭력, 분쟁 땅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힘겨운 일은 수도원 밖에 사는 종복들과 장인들이 맡는다.
수도원은 루아르 강 근처의 포르 위오 숲에 있다. 방은 9천 3백 32개이며 성벽은 없다. <성벽은 음모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수도원의 전체적인 모습은 하나의 성과 같다. 지름이 60보쯤 되는 둥근 망루도 여섯 채가 있다. 각 망루의 높이는 6층 건물에 해당한다. 하수도는 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서관이 여러 곳에 있고, 중앙에는 연못이 있으며, 미로 모양의 포도(鋪道)를 갖춘 공원도 있다.
그러나 라블레는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이상향이 언젠가는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한 터무니없는 주장과 선동과 불화 때문에 붕괴되고 말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다.
 
30) Francois Rabelais(1494 ~ 1553). 프랑스의 작가. 소년기와 청년기를 수도원에서 보내며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한편, 당시에 이단으로 취급되던 그리스 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를 독습하였다. 수도원을 나온 뒤, 고대 문화를 전범으로 삼는 인본주의자로서 의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을 연구하였다. 의사와 해부학 교수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므동의 주임 신부를 역임하기도 했다. <전무후무한 프랑스 산문의 마술사>라는 칭호를 안겨 준『팡타그뤼엘』(1532년)과『가르강튀아』(1532년) 등의 장엄하면서도 익살스러운 5부작 소설을 통해, 고대 그리스 · 로마의 학문과 도덕에 관한 인본주의자들의 열렬한 애정과 그들의 정치와 교육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육체와 정신의 균형 속에서 사는 행복을 찬미하였다. 온갖 수준의 프랑스 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풍자적인 사실주의와 상징주의, 가장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가장 방자한 해학을 하나로 융합하였다.
 
 
 
유토피아 이야기 : 팔랑스테르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는 1772년 브장송에서 나사(羅絲)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그는 인류를 위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어마어마한 야망을 드러냈다. 1793년에 그는 자기의 계획을 도의회 의원들에게 설명했지만, 그들의 비웃음만 사고 말았다.
그것에 낙담한 푸리에는 얌전히 살기로 결심하고 회계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집념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연구를 계속하여 자기가 꿈꾸는 사회를『사랑 가득한 신세계』와 같은 여러 저서를 통해 아주 면밀하게 묘사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1천 6백에서 1천 8백명으로 구성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공동체(팔랑주)가 가족을 대체하며, 혈족 관계나 지배 · 피지배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체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기 위해 각자 약간의 세금을 내지만, 통치 기구의 권한은 최소한으로 엄격하게 재한된다. 중요한 결정은 마을의 중앙 광장에 함께 모인 가운데 이루어진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주택 단지에 모여 산다. 푸리에는 그것을 팔랑스테르31)라고 불렀다. 푸리에는 자기가 생각한 이상적인 팔랑스테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3층에서 5층 건물로 이루어진 성 같은 곳인데, 여름에는 분수 때문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볕이 잘 드는 길들이 나 있고, 중앙에는 극장, 휴게실, 도서관, 기상대, 교회당, 전신국이 있다.
그 후 푸리에의 후예들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미국 등지에서까지 팔랑스테르를 건설하였다.
프랑스에서는 1859년에 난로의 발명자인 앙드레 고댕이 푸리에의 팔랑스테를 본받아 생산자 공동체를 건설하였다. 1천 2백 명이 함께 살면서 난로를 만들고 이익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그 협동 조합은 오로지 고댕 가문의 가부장제적인 권위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
 
31) 집단, 공동체를 뜻하는 <팔랑주>와 수도원을 뜻하는 <모나스테르>의 앞과 뒤를 따서 만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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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회는 공산주의와 우리가 추구하는 섭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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