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세계일보> 전 사장이 세계일보가 자신을 부당하게 해임했다며 최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고 한다. 세계일보가 지난해 ‘정윤회 국정개입은 사실’이라는 청와대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뒤 정권 쪽이 보복 성격으로 자신의 퇴진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고 정권이 언론사 인사에 개입해 사장을 잘라버리기에 이르렀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정권이 외압을 가한 정황은 매우 짙다. 무엇보다 세계일보 소유주인 통일교의 총재비서실장이 1월31일 조 사장을 호텔 커피숍으로 불러내 “정부 요인이 1월29일 한학자 총재 쪽에 전화를 걸어 ‘조한규 사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통일교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겠다’고 압력을 가해 조 사장을 해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현장 취재기자였으며 언론사 대표로 있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해 주장하는 것이니, 신빙성을 의심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 무렵 세무당국은 통일교 계열의 두 기업체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도 한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해 말부터 정윤회 국정개입 논란으로 단단히 궁지에 몰렸다. 정권 쪽이 볼 때 첫 보도를 한 세계일보가 눈엣가시 같았을 것이다. 그 연장에서 인사 개입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렇게 정권이 언론사를 위협해 굴복시킨 행위는 명백한 언론자유 침해다. 비판 보도를 하는 언론인은 불이익을 받게 되니 꼼짝 말라고 하는 ‘냉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일이다. 국민은 결과적으로 알권리를 제약당했다.
언론인의 밥줄을 끊어 비판의 싹을 잘라버린다는 언론탄압의 고전이 되살아나는 느낌도 든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비판 성향 기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를 요구했으며, 두 신문사 사주들은 이에 굴복해 기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도 비슷한 짓을 했다. 이번에는 자르라는 대상이 기자가 아니라 사장이니 위축 효과는 더 컸을 것이다.
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 통일교 쪽도 문제다. 사회의 공적 기관인 언론을 소유한 사람이나 집단은 합당한 공적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통일교 쪽은 조 사장을 해임하라고 요구한 정부 요인이 누구인지, 불응하면 공개하겠다고 위협받은 판도라의 상자는 또 무엇이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통일교가 종교집단의 이익 보호가 아니라 사회 공익을 위해 언론기관을 운영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모습은 보여야 한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