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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1일 화요일

성서나 원리나 말씀에 절대적인 권위를 강조하는 사람은 현명하지도 선량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2017.02.18. 21:41
 그것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니며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은 다 옳은 말인가 하고 묻는다면...
어린아이라면 다 옳다고 대합할 것이지만 초등학생 정도만 되도 부모가 다 옳을 수 없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기 때문에 부모가 하는 말이 다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중학교나 고등학교 더 나아가서 대학생이나 어른이 되면 부모가 하는 말 중에 맞는 말보다는 그렇지 않은 내용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가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훌륭한 인격을 지녔더라도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 수 없고 부모가 하는 판단이 다 옳을 수도 없으며 부모가 예측하는 미래가 다 맞아 들어갈 수가 없다.
결국 알고 있는 지식이나 사물이나 사건을 판단하는 능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정상이며 성인이 된 자녀들이라면 그런 것을 이해하면서 부모를 대하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어렸을 때는 우리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힘도 제일 세고 제일 훌륭한 줄 알고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아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자신의 부모가 세상에서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물론 자신을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주는 부모는 맞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제일 훌륭하며 제일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다.

자녀가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모가 이 세상에서 모든 면에서 제일이라고 믿고 산다면 그런 자녀는 효자이기 이전에 부모의 걱정의 대상이 되는 모자란 자식이 될 뿐이다.
비교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은 언제나 옳고(여기서 옳다는 것은 옳은 판단이다.) 메시아는 언제나 옳으며 따라서 아버님 또한 언제나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게 된다.
솔직히 우리는 하나님을 본 적도 없고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없으며 하나님이 한 말이라고 하는 것도 들은 적이 없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이라고 한 것을 하나님의 말이라고 믿는 것뿐이며 사실 그 말이 하나님이 한 말인지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인지도 알 수가 없지만 그렇게 믿으라고 하니 그렇게 믿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또는 누구의 말씀이라는 것 때문에 그 말이 사실에 맞는 말인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었는데 이런 자세는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하나님이 약속했던 것들이 언제 이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인간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그 약속이나 예정이나 예언은 잘못된 약속이고 잘못된 예언이며 잘못된 예정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어떤 것을 안다면 그런 예정을 해서도 안될 것이고 그런 약속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이나 우리가 메사아로 믿고 있는 아버님도 그렇다.
그 분들이 예언하고 예정하고 약속했던 것들이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지금 기독교의 기반을 보면서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세상에 이룬 업적을 가지고 뜻이 이루어졌었다고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곧 기독교는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도중에서 변질된 체 고착되어진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진 모습이고 , 통일교회 또한 그 과정에서 기반을 잡는 듯 했다가 다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그 약속과 예언과 예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그 분들의 잘못이 아니고 모든 잘못은 인간들에게 있다고 믿고 싶을 것이고 그렇게 믿으라고 교육받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그것이 인간들의 잘못이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말씀이나 아버님의 말씀들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인간들이나 그 분들의 희망사항이다.
인간들은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하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공통된 소망이다.
그래서 그 소망을 이루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서 그 방법을 모색해 온 것이 종교와 더불어 세상의 철학이고 과학이며 인간의 지성들이 추구해 왔던 방법이다.
때로는 혁명이라는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소망은 같지만 그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때 그 때의 방법으로 그 소망을 추구해 왔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루어진 소망은 다음 세대에 미루어 졌지만 그 다음세대에서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 소망은 이루어질 가능성은 사실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에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종교의 지금까지의 행태였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재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설명하는 그 신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우주관이었을 때 설정해 놓은 신이다.
지금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하나님을 사람들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현대인의 지성으로서는 믿을 수가 없는 신이다.
따라서 성서에서나 예수님의 말씀이나 아니면 아버님의 말씀이나 현대인들의 지성으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현대인들이 심성이나 지성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메시아의 말씀이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서나 원리 말씀은 문제가 없는데 사람들이 문제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인간들의 소망은 이 지상에서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의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모든 분야가 총망라하여 서로 협의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해도 그 목적이 이루어지기 힘들겠지만 다른 모든 분야를 무시하고 종교의 힘만으로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나 그렇게 믿게 만드는 종교나 어리석거나 나쁘거나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복종을 해야 하고 메싱아의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복종해야 하며 원리나 아버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복종해야 한다는 그 생각은 많이 잘못된 생각이다.

말씀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고쳐질 수 있는 것이며 때로는 폐기도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재림사상이 그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기독교는 사실상 재림사상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재림사상을 포기하면 사실 기독교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며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포기한 것은 그것이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현대인들이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성서...
그리고 원리 또는 말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지적 수준에 맞는 내용인 것이며 현대인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성서나 원리 말씀 이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그 시대의 수단인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성서나 원리 말씀의 권위에 대해서 강조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도 현명한 사람들도 아닌 선량하지 않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글이 이해가 되는 않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금까지 살아 온대로 살면 되는 것이고 만약 이해가 된다면 수단에 대해서 절대적인 복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7.02.18. 23:42
그래서 모태 신앙 아이들이 제일 불쌍 합니다.
그부모의 종교관이이나 믿었던신앙이 맞는지 틀린지 스스로의 판단이나 선택도 하지못하게하고
더 나아가 내가 믿는 종교를 너도 안믿으면 부모자식인연을꿇어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부모도 있으니..
어리석은 부모 밑에 어리석은 자녀가 생긱게 되지요.
간혹 똑똑한 자식이나와서 부모가 틀렸음 알고 자기의길을 묵묵히 가는 자식도 있고..
성경은 오래되어 죽은 지식이 많고 현재의삶에는결코 답을 주지 못함을 믿습니다.
모두 한때의 수단임을 동의 합니다.
┗ 17.02.20. 21:58 new
종교도 행복해지기 위한 한부분을 망각하고 맹신과 광신에 빠진 사람들이 불쌍하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최고의 행복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헌법에도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자식에게 강요한다면 광신자지요.
 
17.02.19. 06:01
나는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고 어머니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예뻐해 주신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더 진즉에 그걸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을 말입니다.
보는 관점이 외형에 있다면 내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내 엄마가 제일 예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아버지 사랑의 힘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어머니의 사랑은 가장 예쁘고 그것을 깨달은 자녀는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입니다.
성경이나 말씀의 절대성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절대성을 믿지 않거나 잘못 이용하는 나쁜 인간들 때문에 더 혼란한 세상이 되는 것이지 절대성 그 자체는 옳은 겁니다. 
┗ 17.02.19. 06:20
칼을 잘못 사용하면 다칠 수 있고 차를 운전하다 잘못해서 사고를 당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칼이나 자동차가 우리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은 거짓된 말입니다. 매 끼 식당에서 밥을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해도 어떤 형태로든 칼과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신현준 선배님도 성서든 불경이든 유교경전이든 말씀이든 진리의 혜택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부정적인 측면을 들추어 진리를 부정하고 계십니다.
너무 늦기 전에 반성하고 회개하심이 어떨런지요. 우리 피스센타에 한번 오세요. 뵙고 싶네요.
┗ 17.02.19. 07:38
그대가 우물에 갇혀 시야가 좁아진 사람이라네.
반성과 회개는 그대가 더 많이 해야할 사람인지도 모르지.
 
17.02.19. 07:27
그걸 부정하는 사람도 별로 현명하거나 선량해 보이지 않네요.
현명이나 선량함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에서 나옵니다. 강조해서 무슨 행동을 하느냐, 부정해서 무슨 일을 하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강조하면서 정의롭지 못하면 독선과 위선이고 부정하면서 잘난척하면 교만이요 아무것도 안하면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절대성을 강조하면서 정의롭게 행동하면 훌륭한 분입니다.
신현준씨는 가끔 잘난척하면서 개인 여행이나 즐기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 17.02.19. 07:34
정말 못났다.
질투인가?
신선생을 얼마나 안다고 사람 평가를 그렇게 하냐.
┗ 17.02.19. 10:16
밥은 먹고 다니냐? 슬슬 날풀리니까 발작을 하지....
 
17.02.19. 08:17
불교에서는 스스로 도(이치나 원리)를 깨달아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 것은 도를 남이 말해 주어서는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환공과 수레공의 대화에서도 도는 남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존재와 느낌은 다른 사람이 말로 해서 이해를 하고 끝내는 것은 사랑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끝내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종교인데 지적수준이 낮았을 때 설명된 그런 하나님의 틀에 구속되기를 강요하는 것이 기독교 아닌가.

이미 싼타크로스가 없다는 것을 아는 어른에게 산타를 믿으라고
┗ 17.02.19. 08:28
강요하는 형국인 것이다.
종교의 목적은 신의존재와 속성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까닫게 하는 것이다.

섭리를 종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섭리는 종교의 영역이 아니다.
섭리의 대상은 인류가 되고 목적도 인류이며 이루어지는 곳도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다.

따라서 섭리는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모든지식과 도덕수준 제도 양심 등 모든 것이 총동원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며 출발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입으로 섭리와 뜻을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는 것은 그것이 종교의 영역을 너어서기 때문이다.
지극히 일 부분인 종교의 힘 만으로 섭리를 진행 하려고 하니 결국 구호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 17.02.19. 08:41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평생 남의 말만 듣고 사는 줏대 없는 인간의 삶이 될 것이고

섭리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면 구호만 외치고 승리의 억만세나 부르는 자기자신을 기만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허무함 만이 남게 될 것이다.

섭리가 지향하는 것은 인류의 행복이어야 하고인류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이는 인류 전체가 합의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통일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섭리에 대한 개념을 세상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지 직접 섭리를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역할과 분수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개념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며
┗ 17.02.19. 09:36
그런 부분은 종교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의 깃발을 들고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섭리에 대한 당위성이 강조가 되어야 하고 세상의 힘 있는 자들이 섭리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섭리를 먼저 이해한 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섭리를 이끌려고 하니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지금 교회에서 섭리에 대한 약속을 하는 것은
사기에 가까운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알고 듣는 사람도 아는 요사이 말로 웃픈 현상 아닌가?

열심히 살아왔는데 현재의 상황이
실망스럽고 공허한 마음이 든다면 종교와 섭리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 답이 있을 것이다.

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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