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자 부터 돌을
던져라!
罪なき者から石を投げろ
罪なき者から石を投げろ
어느 날 유대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잡아다가 예수 앞으로 끌고 왔다. 예수에게 이 여인을 어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율법대로 한다면 돌로쳐 죽이는 것이었다.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는 예수에게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용서를 말하게 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그렇다고 율법대로 하라고 하면 용서는 무위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한참 땅에 무엇을 쓰는 것이었다. "죄 없는자 부터 돌로 치라!" 침묵이 흘렀다. 한 사람 두 사람 손에 든 돌을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모두 떠나고 예수와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만 남았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간음한 여인은 진심으로 회개했다. 용서와 회개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인가?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당연하고 쉬운일이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데 용서를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사실 후자에 해당된다. 인생을 살면서 상대가 실수와 잘못을 해놓고 용서를 구하러 오는 일이 몇번이나 되나? 대부분 미안하다는 말도 듣기 힘들고, 옆구리 찔러서 절받듯이 상대의 사과를 요청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앞에 간음한 여인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돌을 들어 칠 것인가? 죄 없으면 돌로 치라! 우리는 돌을 들어 칠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가 보여준 행동이다. 그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여인을 생명을 걸고 보호한다. 당시에 율법을 어기는 행위는 마찬가지로 돌에 맞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율법에 맞서서 자신과 상관도 없는 간음한 여인을 보호한다. 그리고 '나도 너를 심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용서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다만 나도 너를 심판하지 않는다고 했다. 간음한 여인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간음한 여인은 용서를 받은 것이다. 예수가 용서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회개를 통해서 용서가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심판할 권한도 없지만, 사실 용서를 할 권한도 없다. 하늘이 심판하고, 하늘이 용서한다는 말도 하지만, 사실 이 말도 정확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죄로 인해 심판 받는 것, 반면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문인진, 박진성의 성명서를 읽으면서 느낀점은 이들은 아직도 회개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개의 진정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글은 들고 있던 돌을 놓지 못하게 한다. 던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아직도 예수의 마음을 따라갈려면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罪なき者から石を投げろ http://ameblo.jp/gildong/
パイオニアケフェに投稿された文書を翻訳して引用します。
ある日、ユダヤ人たちが姦淫した女性を現場で捉えてイエス前に連れてきた。 イエスにこの女性をどうしてしたら良いかと尋ねた。 律法のとおりするならば石で打ち殺すということだった。 愛と許しを教えるイエスには困難な状況だった。 この状況で許すと語れば律法を破ることになり、 かと言って、律法の通りにしなさいと言えば、許しは無為に帰する。 しばらく地面に何かを書きながら・・・ 「罪なき者が先に石で打ちなさい!」 沈黙が流れた。 一人、二人、手に持った石を捨ててその場を立ち去った。 誰もいなくなり、イエスと姦淫して捕えられてきた女性だけが残った。 「私も貴方の罪を問わない。」 姦淫した女性は心より悔い改めた。 許しと悔い改めのうち、どちらが先か? 悔い改めなければ許しはないと話す人がいる。 許しを請う人を許すのは当然で易しいことだ。 しかし許しを請うこともないのに、許すことは容易なことではない。 大部分の場合は、実は、後者に該当する。 人生を生きながら相手が失敗と誤りをしておいて、許しを請いにくることが何度あろうか。 殆どが、申し訳ないという話も聞くことさえも難しく、わき腹を突かれてお辞儀されるように、相手の謝罪を要請しなければならない場合も多い。 私たちの前に姦淫した女性がいる時、私たちはどのようにすべきか? 石を取って打つだろうか? 罪がなければ石で打ちなさい! 私たちは石を取って打つ権利がない。 ところが重要なのはイエスが見せた行動だ。 彼は石に打たれて死ぬかも知れない女性を命をかけて守った。 当時、律法を破る行為は同じように石に打たれることだった。 ところが彼は律法に対抗して自身と関係もない姦淫した女性を守った。 そして「私も貴方を審判しない」と語った。 許すという話ではなかった。ただ、私も貴方を審判しないと語った。 姦淫した女性は本当に改心して自身の罪を悔いた。 姦淫した女性は許しを受けたのだ。イエスが許したのではない。 自身の悔い改めを通じて許しが成立したのだ。 私たちは誰を審判する権限もないが、実は許す権限もない。 天が審判して、天が許すという言葉もあるが、実はこの話も正確ではないかも知れない。 罪によって審判を受けること、罪を悔い改めて許しを受けることは、 実は自分自身にかかっていたのだ。 文仁進、朴珍成の声明書を読みながら感じた点は、 彼らはまだ悔い改めの道に入らなかったということだ。 悔い改めの真正さが全く見えない文書は、持っている石を置かないようにする。 投げることはできないが、それでも置きたくない気がする。 まだ、イエスの心について行こうとするならば、行く道が遠いと言う気がし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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