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익명방에 올라왔던 보고서인데, 문국진 이사장의 권총회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어서, 참고가 될 것 같아 다시 들춰 봤습니다. 이곳 카페에는 어느덧 없는 자료가 없네요. 통일운동의 생생한 역사를 기록한
곳이니 앞으로도 운영자께서는 사명감을 갖고 잘 관리하고 지켜나가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세일로 엔터프라이즈(KAHR의
모회사)가
문국진 이사장 소유가 된 배경과 그
문제점
1. 배경설명
1993년 3월 Saeilo Machinery
(USA) Inc. 는 UCI 산하
회사인 One Up Enterprises (1UP)이 94% 지분을 소유한 회사였다.
1994년
4월 문국진 이사장(이하
문이사장)은
세일로 머시너리의 지분 49%를 807불에 인수하게 된다.
1995년 2월 문 이사장은 Saeilo
Inc. 를 독립법인으로 세우고 총기제작 사업(Kahr Arms Division)을 시작한다.
이 회사의 지분은 100% 문 이사장에게
있었으며, 당시 그가 얼마를 투자했는지 밝혀진 것은 없다. 같은 해 2월 그는
1UP으로부터 $2M 투자를 받았다. 이어서 4월에
$3M을 추가로 투자 받게 된다. 투자된 $5M의 가치는 전체 지분의
20%였다. 당시 Saeilo Inc.
의 소유구조는 문 이사장이 77%, 1UP이 19%, SEI[1]가 4%였다.
1999년 7월 문 이사장은 Saeilo
Enterprises Inc.를 설립한다. 그리고 세일로의
주식과 30:1로 스왑을 하여 합병하였고,
세일로의 모든 계열 회사들이 세일로 엔터프라이즈 산하로
귀속되었다.
2003년 9월 문 이사장은 UCI
계열의
1UP이 소유한 세일로 엔터프라이즈 지분 20%를 $1M에 재매입하겠다는 제안을
UCI에
하였다. 그리고 동년 12월 당시 UCI의 회장이었던 주동문씨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1UP의 지분은
$1M에 문 이사장에게로 넘어갔고, 그 결과 문 이사장은 세일로
엔터프라이즈와 Kahr 총기 비즈니스의 100%
지분을 소유하게 됐다.
2. 문제점
문국진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 때마다 자랑스럽게 Kahr 권총 비즈니스는 자신이 일으켜 세운 회사이며, 자신소유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1993년부터 2003년까지의
약 10년간의 과정을 추적해 보면 그렇게 주장하기에는 몇 군데 석연치 않은 부분이 눈에
띈다. 특수
관계를 이용하여 재산을 사유화한 의혹이 짙다.
그는 1993년 3월경 아버지의 부탁으로 적자가 나고 있는 세일로 회사를 책임 맡게 된 것 같다. 당시
세일로는 UCI 계열의 1UP이 94%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95년 사업의 주력분야를 총기제작회사로 바꾸면서 그는 100% 자신 소유의 별도의
회사인 세일로 Inc.를 설립하고
UCI로부터
5백만불의 투자를 받아 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검증되지 않은 신예 사업가가 아이디어 하나로 5백만불이라는 거금을 투자
받고, 이를
전체 지분의 19%로 결정했다는 것은 문 이사장에 대한 통일그룹의 배경과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하버드 경제학과 출신답게 비즈니스에 자질이 있었고, 총기사업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 같다. 그런데 2003년 9월 권총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 8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는 이해될 수 없는 제안을 UCI에 하게 된다.
정상적이라면 자신을 믿고 무일푼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게 도와준
UCI에 본격적인 수익배당을 안겨주어야 하는데, 그는 되려 UCI가 투자한
5백만불 지분을 백만불에 다시 사가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당시
세일로 그룹의 전체 수익구조는 적자였지만 Kahr 총기 비즈니스는 확실히 흑자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세일로 엔터프라이즈의
장부가 총액은 $7.04M이었고, 순매출은
$17.03M이었다. 장부가로만
계산해도 UCI가 소유한 지분의 가치는
$1.4M였고, 순매출 규모로
계산한다면 $3.4M이었다.
일반적으로 Kahr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투자자의 입장에서 이 사업이 현재 수익을 내고
있고, 향후
전망이 계속 밝은 입장이라면 과연 장부가 기준 1배수 이하의 덤핑 가격을 받고 회사 지분을 팔겠는가?
당시 UCI가 1백만불이 없어서
휘청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 UCI에서 이 문제를 조사해 온 B모씨에
의하면 정상적으로 이런 계약은 특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며,
불공정 내부자 거래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 이 정도면 거의 훔쳐간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당시
그들은 Grant Thorton이라는 회계회사에 의뢰를 했으나,
이것은
IRS(미 국세청)의 지적을 피해가려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Grant Thorton은 독립적으로 세일로 엔터프라이즈를 조사하기 보다는 그 회사에서 받은 자료에
기초해서 1백만불이 시장 가치로 볼 때 공정한 범위 내의 가격이라는 견해서를 딸랑 1페이지짜리로 만들어 제출해
주었다. 결국 문 이사장과 당시 UCI
회장인 주동문씨는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지분은 헐값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허락이 있었는가에 대한 증거는 없다.
3. 결론
문국진 이사장은 일견 약삭빠른
계산으로 아버지의 힘을 빌어 힘들이지 않고 사업을 일으키고,
나중에 또 한 번 딜을 잘 성사시켜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와 지난 몇 년간 미국의 권총회사에 대한 실적을 언론을 통해
과도하게 부풀려 선전해 왔고, 최근에는 자신의 부인을 총기회사의 섹시 모델로 등장시켜 종교 지도자인 아버지를
망신시키고, 큰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앞으로 그가 도의적으로 존경 받는 기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험난한
고비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
セイロ・エンタープライズ(KAHRの元会社)が 文國進理事長所有になった背景とその問題点http://cafe.daum.net/W-CARPKorea/cSkJ/18078 http://ameblo.jp/gildong/ より 1.背景説明 1993年3月、セイロ・マシナリー(Saeilo Machinery USA Inc.)は、UCI傘下の会社であるワンナップ・エンタプライズ(One Up Enterprises)が94%持分を所有する会社であった。 1994年4月、文國進理事長はセイロ・マシ-ナリーの持分49%を807ドルで取得することになる。 1995年2月、文國進理事長はセイロ(Saeilo Inc.)を独立法人として設立し銃器製作事業(Kahr Arms Division)を始める。この会社の持分は100%文國進理事長にあり、当時彼がいくら投資したのかは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同年2月、彼はワンナップ・エンタプライズから200万ドルの投資を受け、続いて4月に300万ドルを追加投資されることになる。投資された500万ドルの価値は全体持分の20%であった。当時、セイロ(Saeilo Inc.)の所有構造は、文國進理事長が77%、ワンナップ・エンタプライズが19%、SEI[1]が4%であった。 1999年7月、文國進理事長はセイロ・エンタープライズ(Saeilo Enterprises Inc.)を設立する。そしてセイロの株式と30:1でスワップをして合併し、セイロのすべての系列会社をセイロ・エンタープライズの傘下に帰属させた。 2003年9月、文國進理事長は、UCI系列のワンナップ・エンタプライズが所有するセイロ・エンタープライズの持分20%を100万ドルで買い戻すという提案をUCIにした。そして同年12月、当時UCIの会長だった朱東文氏と契約を締結しながら、ワンナップ・エンタプライズ持分は100万ドルで文國進理事長に移り、その結果、文國進理事長はセイロ・エンタープライズとKahr銃器ビジネスの100%持分を所有することになった。 2.問題点 文國進理事長は言論インタビューの時ごとに、誇らしくKahr拳銃ビジネスは自身が立て起こした会社であり、個人所有であることを強調してきた。しかし1993年から2003年までの約10年間の過程を追跡してみれば、そのように主張するには何箇所か釈然としない部分が目に付く。特殊関係を利用して財産を私有化した疑惑が濃厚である。 彼は1993年3月頃、父の要請で赤字が出ているセイロ・マシナリーの責任を引き受けることになったようだ。当時、セイロ・マシナリーはUCI系列のワンナップが94%の持分を持っていた。ところが95年事業の主力分野を銃器製作会社に変えながら、彼自身が100%所有の別会社であるセイロ(Saeilo Inc.)を設立し、UCIから500万ドルの投資を受け取った。大学を卒業したばかりの20代半ば、未検証の新鋭事業家が、アイディア一つで500万ドルという大金を投資され、これを全体持分の19%と決めたということは、文國進理事長に対する統一グループの背景と信頼がなかったとすれば不可能だっただろう。 彼はハーバード経済学科出身らしくビジネスに資質があったし、銃器事業においてある程度成功を収めたようだ。ところが2003年9月、拳銃ビジネスを始めて8年が過ぎた時点で、彼は理解困難な提案をUCIにすることになる。本来ならば、彼自身を信じて無一文から新しい事業をするように助けたUCIに本格的な収益配当をすべきなのに、こともあろうに、UCIが投資した500万ドルの持分を100万ドルで買い戻すと提案したのだ。 当時、セイロでグループの全体収益構造は赤字だったが、Kahr銃器ビジネスは確かに黒字を出していた。そしてセイロ・エンタープライズの帳簿価総額は704万ドルであったし、純売り上げは1703万ドルだった。帳簿価だけ計算してもUCIが所有した持分の価値は140万ドルであり、純売り上げ規模で計算するならば340万ドルだった。 一般的にKahrビジネスの可能性を見て投資した投資家の立場でこの事業が現在収益を出していて、今後展望がずっと明るい立場ならば、果たして帳簿価基準1倍数以下のダンピング価格で会社持分を売るだろうか。当時UCIは百万ドルがなくてさまようような状況でもなかった。現在UCIでこの問題を調査してきたB某氏によれば、本来こういう契約は、特恵なしには不可能であり、インサーダー取引として問題になる内容だと率直に吐露した。この程度なら、殆ど泥棒したようなものということだ。 当時、彼らはGrant Thortonという会計会社に依頼をしたが、これはIRS(米国税庁)の指摘を避けようとする形式的な手続きに過ぎなかった。Grant Thortonは独立的にセイロ・エンタープライズを調査するというよりは、その会社から受けた資料に基づいて百万ドルが市場価値から見た時公正な範囲内の価格であるという、ほんの1ページの見解書を作って提出してくれた。結局、文國進理事長と当時UCI会長であった朱東文氏は、契約書にサインをして持分は破格の安値で渡された。この過程で文総裁の許諾があったという証拠はない。 3.結論 文國進理事長は、ずる賢い計算で、父の力を借りて苦も無く事業を起こし、後でもう一度取引をうまく成功させて全てを自分のものにした。しかし、彼は、父の故郷に戻って、ここ数年間の米国での拳銃会社に対する実績を言論を通じて過度に膨らませて宣伝してきたし、最近では自身の夫人を銃器会社のセクシーモデルとして登場させて宗教指導者の父に恥をかかせて、大きい社会的物議をかもしている。今後、彼が道義的に尊敬される企業家になるためには、越えなければならない険しい峠が少なくない展望だ。 ------------------------------------------------- [1] SEIはSaeilo Equity Investments Limited Partunershipとして文國進理事長が所有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