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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세상이 괜히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세상이 괜히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버님이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회라는 간판을 걸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난을 받아 왔다.
어느 한 때는 그 비난의 강도가 약해지기는 했었지만 한 번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기독교의 오해와 모함으로 시작되었던 아니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던 그 모든 원인의 제공은 우리내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버님이 초창기에 비난을 받았던 이유는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이 인류에 대한 복귀섭리에 대한 무지로 메시아관이 잘못되었던 것과, 세상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일들이 우리 내부에 있었던 것들이 그 원인이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또는 선재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우리가 반드시 돌파해야 하는 벽이었으나 초창기에 초종교 운동을 통해서 그 일을 시도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결과 그 벽은 지금도 견고하고 우리는 그들 때문에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상태이며 잘못하면 그들에 의해서 교회가 와해가 될 수 있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혼음의 문제는 기독교인들의 악의적인 선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 그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 사람들은 그 의혹들을 다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직도 우리는 그런 의혹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고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는데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욕을 먹는 경우가 억울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도 일부 기독교인들의 무지와 악의적인 선전 때문에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국제결혼은 누가 보더라도 참으로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내용이 분명하다.
초창기에는 그 결혼의 취지에 대해서 누구나 호응을 하고 찬성을 하며 그 대열에 동참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취지에 맞는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으므로 인해서 그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었고, 본래의 취지를 벗어난 숫자채우기로 행사로 전락하면서 그 취지와 가치는 땅바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국제축복이 흠결이 있어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결혼하지 못한 농촌 노총각들을 결혼시켜 주는 행사로 전락한 것이 국제축복의 가치와 취지 뿐 아니라 교회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국제축복은 무한한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신앙심이 좋은 최고의 엘리트들이 참여를 해야 본래의 취지에 맞는 국제가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국제축복은 당사자들에게나 태어나는 2세들에게나 너무 큰 어려움이다.
그렇지 않은 가정들도 있겠지만 지금 어려움 속에 처해 있는 국제가정들 대부분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어려운 국제축복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더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결혼은 우리의 자랑이었지만 처음의 취지와 다르게 지금은 변질되어 버린 지금은 우리의 자랑이 될 수가 없게 되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인류를 위하는 통일교회가 되지 못하고 인류가 통일교회를 위하기를 바라는 교회로 변질되어 버렸다.
통일교회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부자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이 세상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설명은 그렇게 하면서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는 아버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기 시작하고 모심의 생활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도 모심을 받기를 원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모심을 받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지 않는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랑받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망각했었다.
세상으로 향해야 할 사랑의 방향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 대신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랑해야 했고 메시아 참부모이신 아버님을 모시고 사랑해야 했으며 그 자녀들인 참가정을 모시고 사랑해야 했다.
이런 생활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소위 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루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해도 불가능할 일을 앞에 두고, 충성과 효도가 강조되니 어떻게 세상에 눈길을 돌리겠는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인류에게 영광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인가?
인류의 참부모이신 아버님이 통일교인에세 영광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또는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메시아 참부모가 되셨는가?

메시아 참부모는 모숨을 바쳐 인류를 사랑해야 하고, 그 자녀들인 참자녀들도 목숨을 바쳐 인류를 사랑해야 하고 축복가정을 위시한 통일교인들도 목숨을 바쳐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굶으면 같이 굶어야 하고 자식이 아프면 같이 아파야 하며 자식이 눈물을 흘리면 같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인류가 고통 속에 있다면 참부모와 그 자녀들 축복가정을 중심한 축복가정들은 그 고통에 같이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다면 메시아 인류의 참부모라는 타이틀은 반납이 되어야 하고 참가정이라는 타이틀도 반납이 되어야 하며 축복가정이라는 타이틀도 반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지 않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타이틀을 자랑하기에 바빴을 뿐이다.
아버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류의 참부모로서 한 내용을 세상 사람들이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세상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일들을 한 번 상기해 보라.
어떤 것이 기억되는가?
세상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내용들이 없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합동결혼식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버님을 세상에 인류의 참부모요 메시아로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참부모요 구세주인 메시아라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어떤 증거를 내 놓을 수 있는가?
우리가 지금은 아버님을 메시아로 강조할 때가 아니다.
아버님의 이상이 이 땅에 실현가능할 때 세상 사람들이 그 이상에 다 같이 동참할 때 비로소 메시아이심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구태여 증거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자동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지금 세상 앞에 아버님을 인류의 참부모로 증거하려고 나서는 행위는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아버님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것
자화자찬하는 꼴불견으로 욕을 먹기 십상이지 않겠는가?
내가 세상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욕을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되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라..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세상의 어떤 곳보다도 더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인간관계에서 보여줄수 있는 소위 막장중의 막장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누가 비난과 욕을 하지 않겠는가?

이런 모습이 인류를 구원하러 온 메시아요 참부모와 그 자녀들 그리고 축복가정이라는 통일교인들이 세상에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어찌 이 모습이 인류의 참부모요 구세주인 메시아와 그 자녀들 그리고 그 제자들이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이란 말인가?
이런 모습을 보여 주면서 어찌 인류의 참부모요 구세주라는 말을 세상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뻔뻔스럽지 않다면 세상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아버님의 체를 쓰고 계신다는 소리나 하려고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통일교인들에게나 통할 절대복종 절대신앙을 강조할 셈인가?
세상 사람들을 참으로 우습게 보는 통일교인들이 아닌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
그 원인은 모두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을 우리 스스로 제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세상에서 버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본체론 같은 것에 정신을 집중할 때가 아니고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어떤 상황에 있는 가를 먼저 생각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일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세상 앞으로 한 발자욱도 나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존망 자체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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