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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5일 목요일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면?... 책임하지 못하면 메시아도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2016.09.12. 23:52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사명을 인수받는 세례를 받고 공생애 노정을 시작하면서 세례요한은 세례요한대로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각자의 길을 가면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고 결국 갈등의 관계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는 중에 세례요한은 헤롯왕이 자신의 제수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고 세례요한은 은밀하게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에게 보내서 다시 한 번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게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대답 대신에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하신 후 제자들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위 내용은 마태복음 11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원리강론의 세례요한에 사명과 위치에 관해서 언급한 것으로 모두 다 아는 내용이다.

세례요한이 사명을 다 하지 못하는 바람에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되어 있으며 결국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실패로 돌아가고 2천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모세의 반석이타가 원인(遠因)이고 세례요한의 불신이 근인(近因)이며 예수의 십자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두고 지금까지도 기독교에서는 예정으로 보았지만 통일교회에서는 실패로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섭리에서는 다시 메시아가 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고 그 근거를 가지고 아버님이 메시아로 선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기독교에서는 메시아로 인정할 리가 없다.
예수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예정이었으니 그들의 교리를 개정하지 않는 한 구원섭리를 하러 다시 메시아가 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다시 오는 것은 심판을 하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주장하는 메시아관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통일교회가 되어가는 상황을 보면 이제 참부모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어져 자식과 교인들로부터 힐난을 당하는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부의 생각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 당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중심인물로 세워진 사람이 책임을 하지 못하면 다시 대신(代身)자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섭리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다시 중심인물을 보내야 하는가?
그렇게 되면 먼저 세웠던 중심인물은 실패한 중심인물이 될 수밖에 없으며 사명은 자동적으로 인계가 될 것이다.

그러면 참부모의 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복귀섭리가 중단될 수도 없고 중심인물로 세워진 사람이 책임을 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메시아를 보내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지 않는가?

통일교 내에서 이미 이런 일들이 많이 있어 왔었던 역사도 있었고 지금도 어머님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대신해야 한다는 조직이 지금도 활동 중에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원리의 입장이라면 어느 누구도 책임을 다 하지 못했을 때는 다른 중심인물을 세울 수밖에 없는 원칙을 벗어날 수 없었다.

참부모의 위치에 서게 되면 인간구원섭리에 지장을 주는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가?
2000년도 이후부터 지금까지 되어 지고 있는 이런 현상들은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역행에 대해서 역행(逆行)이면 역행이지 순행(順行)은 하니라고 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섭리가 진행되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독교의 역사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림 메시아 이후의 역사가 메시아를 맞이해야 하는 기독교의 역사와 같아서는 안 된다.
그런 역사가 되풀이 된다면 구원섭리는 요원(遼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열이나 기반이 허물어지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면 섭리의 완성이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일이든 간에 그 책임은 섭리의 중심인물인 당사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렇게 갈라진 것들이 통합이 되지 않는다면?
허물어진 기반이 복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성약시대에는 이론적으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들이니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과거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과거와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성약시대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재림 메시아는 무슨 의미가 있고 참부모는 무슨 의미가 있게 되는가?

그냥 믿으면 되는 것이지 이런 것들을 왜 골치 아프게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심정과 이성과 지성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깊이도 없고 뿌리도 없는 교인으로만 남아질 뿐이다.

우리는 대회를 통해서 승리의 선포를 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 있어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메시아가 선포를 했으니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승리의 선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한 적도 없고,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승리의 억만세를 당연히 불렀다.
그리고 선포대로 되어지지 못하게 되면 우리가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으로 자책을 하면서....

원리에서 말하는 인간책임분담이 누구에게나 있다면 그 책임분담에 대해서 면책특권은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인간의 법에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면책특권이 있지만 하나님의 법에서는 그런 면책특권이 없을 것 아닌가?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많이 혼란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메시아라는 단어에 대해서, 성약시대라는 단어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여러 단어들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이성과 신앙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따라서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16.09.13. 08:43
공감되는 문제를 제기 하셨습니다.
긴 글 올리신 결론은 "실패한 메시아였다"이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부처님,예수님등과 비교해서 마지막 가시는 임종과 그 후의 추도식 그리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가정의 분열상 이 모든 현상들이 그 분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고요.
┗ 16.09.13. 09:43
절대니 완성이니 이런말들은 처음부터 있을수가 없는일이였죠...
당신의 당대에 다 이루시고자 성급하게 선포한것이 이것이 실수 가 아닐까 합니다
부족하지만 인간이 그 유한성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그럴려고 노력하는것 그게 더 아름다운 법 아닐까요?
변할수 없는 법칙은 세상이...우주가...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변할테고 지금도 변하고 있으니까요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우리가) 지금도 생각하고 있고 움직이고 있다는 그것!
┗ 16.09.13. 23:20
참부모님 생전에 하나님은 커튼 뒤에 감추어지고 잊혀진 존재가 되었지요.
"만왕의 왕 천지인 참부모 억만세"라고 외칠 때 창조주 하나님이 설자리는?

댓글 1개:

  1. 예수님 실패로 재림메시아, 재림메시아 실패와 중심인물 변경 이것이 원리다. 이 내용이지요. 재림메시야 실패면 원리도 실패이겠군요. 재림 메시야 때문에 하나님이 설자리가 없다. 각자 생각이고 신앙이지요.
    재림 메시아로 인해서 하나님이 확실해 졌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 수가 있었고 인류역사속에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슬픔을 알 수있었지요. 그리고 대신자 상속자는 변경할 수 없는 내용을 왜 자꾸 바꾸려 하는지 그 자리가 그리도 탐나는지요.
    참아버님께서 어린 신준님을 정하지 않으셨다면 2대왕은 지금 어떻게 되셨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요.
    하나님 참아버님 2대왕 신준님 이 자리를 바꾸려고 모두가 몸부림을 넘어서 세상을 심판의 자리로 가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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