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이 나사렛 예수의 부활절이었는데, 서양사람들은 “이스터”(Easter)라고 부르더군요. 부활절을 직역하면 “레저렉션 데이”(Resurrection Day)인데 왜 이스터라고 하나, 궁금해서 위키백과를 보니까, 이스터라는 이름은 독일의 민속 여신인 “에아스트레” (Eastre)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이름이 왜 예수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로 둔갑했는 지에는 좀 복잡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까지는 알 필요는 없지만, 내가 이번에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이 <이스터> 여신의 상징이 천사장 루시엘과 같은 “계명성,” 즉, “새벽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스터라는 이름에 “동쪽”(East)이란 뜻이 숨어있으니까, 사실, 밝아오는 새벽의 계명성이 쉬이 연상되기는 합니다. 옛날 독일민족은 새벽에 동을 트게하는 신성한 우주의 힘이<에아스트레> 여신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믿었고, 유태인들은 <루시엘>을 새벽을 여는 계명성처럼 밝고 귀한 존재다,고 생각했던 것같습니다.
신처럼 위대했던 루시엘이 어쩌다가 오늘날 통일교인들에게 쌍욕을 먹는 천하의 죽일 넘이 됐을까요?
루시엘이 우리에게 더러운 피를 물려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가 내 친할머니를 강간해 임신시킴으로써 내 아버지를 태어나게 했고,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피를 물려받아, 그 강간자의 성(姓)을 달게된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입니다. 별명으로 난 “을”씨인데, 이 강간 사건때문에 혈통적으로는 “루”씨라는 것입니다. 내 할애비벌 되는 이 망나니가 나에게 엄청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이죠.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내 혈통적 첫 할아버지가 온 천주의 하나님을 반역한 대역죄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기분이 좀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이야기가 참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습니다. “내가 정말 루시엘의 피를 물려받았을까?” “소위 그 혈통적 ‘타락성’이란 것이 정말 존재할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이 질문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나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러다, 올해 이스터 아침에, “이 질문들에 대해 분명하게 답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겠다, 수년간 고민해왔던 이 신학적 주제에 대한 생각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별명으로나마, 이 신학적 주제에 대한 제 신앙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예수가 죽음의 굴레를 벗고 영생의 하늘로 오른 이스터의 아침에, 제가 경건한 마음으로 올리는 신앙고백이 오래 된 내 마음속의 고통의 굴레를 벗고 광명한 자유 천지로 나가는 해방의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때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한 글을 이제야 올립니다.)
# 초창기 통일교 야화들 중에는 <세 분의 참어머님들>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6마리아>처럼, 민간에 떠돌지만 교회가 정식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역시 축복가정이신, 제 아버지께 들었는데, 1960년 성혼하실 즈음에 참아버님은 참어머님을 세 분이나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 분과 같이 하나하나 육체적 성사까지 치르신 것은 아니고 현재 한학자 어머님만을 정실로 맞이하셨는데, 동시에 섭리적 조건으로 다른 두 분도 부인격으로 지목하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분들에게 별명을 하나씩 붙였습니다 – “타락하지 않은 해와,” “타락한 해와,” “복귀된 해와.”
한학자 어머님은 이 셋 중 어느 별명을 다셨을까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통일원리의 기본은 어느정도 들어 알고 있던터라, 참어머님은 당연히 “복귀된 해와”이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실제로는 “타락하지 않은 해와”라고 불리셨답니다. 참아버님은 복귀된 해와 보다는 타락하지 않은 해와를 더 선호하셨다는 이야기지요.
야화로 떠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것에서 어떤 사실을 밝히려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렇다면 타락한 해와는 누구였고, 복귀된 해와는 누구였죠?”라고 물으면 상황이 엉뚱해집니다. 그게 이야기의 촛점이 아니죠. 우리가 “곰과 호랑이” 이야기 들으면서 ‘단군왕검의 진짜 어머니가 누구였나’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이 이야기를 처음 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뜻을 전달하려고 했을까?’ 궁금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타락을 한번 해버린 후 복귀한 상태보다는, 아예 타락하지 않은 상태가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
앞 글에서, 제 상상속의 토론자께서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무한한 자유의지가 있으되, 죄를 짓고 싶은 충동이 아예 올라오지 않는 사람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분의 멘탈리티는 위 <세분의 참어머님> 이야기꾼과 비슷할 것입니다. 즉, ‘미세하나마 죄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같은 복귀된 해와보다는, 죄의 흔적이 전혀 없는, 아예 타락하지 않은 해와가 더 높은 존재다’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타락의 흔적이 마음속에 전혀 없는 깨끗한 사람을 “완전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따라서, “독생녀께서는 완전하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이한 가치관입니다.
특이하지 않나요? 상식적으로는, 타락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 혹 나중에 타락할 지도 모르는 어린이 보다는, 타락을 한번 경험한 후 회개함으로써 이제는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갖게 된, 그래서 다시는 타락할 가능성이 없는, 어른이 도덕적으로 더 가치있는 존재가 아닐까요?
고기 맛을 한번 본 중이 영원히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타락을 한번 맛 본 어른은 절대 타락을 끊지 못 한다구요? 그러니, 사람에게는 타락의 맛을 아예 보여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구요? 하하하, 타락이 그렇게도 맛 있는 그 무엇인가 보네요. 아무튼, 통일교인들은 이런 어린이 지향적 도덕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일단 지적해 둡니다.
앞에서 약속했으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하겠습니다:
“무한한 자유의지가 있으되, 죄를 짓고 싶은 충동이 아예 올라오지 않는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건 모순이란 말입니다.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모”)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모든 창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순”)는 존재할 수 없죠. 여기서 “모”와 “순”을 묘사한 것이 논리적으로 서로 맞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절대병기로서의 창이 존재한다면, 그것만 빼고는 다른 모든 창을 막아낼 수 있는 “두번째 최고병기”로서의 방패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패가 앞에서 말한 창과 똑같은 “절대병기”는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방패가 절대병기라면, 창이 동시에 절대병기가 될 수는 없겠죠.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무한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특정한 충동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제한된 마음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반대로, 어떠한 신비한 제어 장치를 마음속에 설치해, 죄를 짓고 싶은 충동이 아예 올라오지 않는 통제된 의지를 견지한다면, 동시에 무한한 의지는 소유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앞 뒤가 맞지 않으니까요. 모순입니다. 이런 모순된 상태 (한 마음속에 무한성과 제한성이 공존)를 필요로 하는, “자유의지 무한, 죄 충동 전무”한 인간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냥 머리속에서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관념”일 뿐입니다.
논리를 중요시 공부하지 않으신 분들에게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든 것이 진리는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이미 모순된 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논리성은, 어떤 명제가 진리가 되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 입니다. 그래서, 논리는 진리를 찾는 수단으로는 부족하지만, 거짓을 밝혀내는 수단으로는 매우 강력합니다. 여기서 거짓이란,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혹자는 그런 모순을 비논리적이 아니라 “초논리적”이라고 변명하는데, 사실은 지극히 평범한 미신일 뿐입니다. 자기가 하는 말이 객관적으로는 어떤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고집스럽게 자기가 상상하는 것이 실재로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에 대한 사랑에 빠져있는 자기만의 “나르시시즘”에 불과합니다.
결국, 질문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ㄱ) 무한한 자유의지를 소유하고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거나,
(ㄴ) 죄에 대한 충동이 아예 올라오지 않도록 어떤 신비한 제어 기능을 육신이나 영인체에 설치한 후, 제한적 의지에 만족하거나.
저는 전자를 선택했습니다. 후자가 ‘실제에 있어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가능하다해도 저는 절대 선택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후자를 선택하는 순간,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로보캅같은 기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자유로운 정신”이 남의 의지에 따라 (그게 설사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필요하면 통제되는 상태에서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건 법적인 제약보다 더 지독한 구속이죠. 법아래서는 최소한 생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 생각의 자유을 남에게 내어주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느니, 차라리 타락하면서 편하게 살고 말지, 완전한 성인이 무슨 대수라고 그런 로보트같은 삶을 살겠다는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자는 로보캅을 선택하실 것 같네요.
# 이제, 이 글의 제목에 답할 차례입니다 -- “루시엘의 타락성이 정말 내게 유전되었는가?”
먼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통일원리에서 말하는 ‘사탄의 혈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육신적 혈통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육신의 혈통은 한번 가지고 태어나면 절대 바꿀 수가 없지만, 루시엘의 혈통은 삼일간의 종교적 행사를 통해 바꿀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내가 법적인 절차를 밟아 성씨를 “을”씨에서 “문”씨로 바꾸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법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내가 문씨 행세를 한다면, 과연, 식구님들이 내 혈통이 정말 바뀌었다고 생각할까요? 어림없죠, 불경하다고 욕 먹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육신의 혈통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혈통이 피가 아니라 유전자 정보로 모든 세포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수혈과 헌혈을 아무리 해도 혈통이 바뀔리가 없습니다. 피는 통채로 남의 피로 (혈액형이 같다면) 바꿀 수 있지만, 뇌세포, 정자, 난자를 포함한 몸의 모든 세포 전체를 전부 다 남의 것으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법적으로 성씨 하나 바꾼다고 혈통이 바뀔리 만무하지요. 육신적 혈통은 이렇게 변하지 않고 안정적입니다.
반면에, 사탄의 혈통은 끊임없이 변하고 불안정합니다. 가령, 성주를 마시고 삼일행사를 순서대로 제대로 했다면, 사탄의 혈통은 메시아의 혈통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이 여신도께서 3년 후 축복을 깨고 세상 남자와 재혼을 하는 순간, 세상 남자가 가지고 온 사탄의 혈통 때문에 도로 사탄의 혈통으로 바뀝니다. 그러다, 회개를 하고 다시 교회를 나가려는데, 가정연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겸연쩍어, 문형진님의 성전교회로 입교했습니다. 그리고는, 새 남편과 같이, 참아버님의 정통성을 가진 그 분의 축복은사를 받아, 2번째 사탄 혈통을 다시 선한 것으로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형진님의 “그리스도의 신부론"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도 이제는 참아버님의 신부중 하나가 되어, 원하시면 잠자리도 같이 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야한다,’ 부담감이 너무 불편해 1년 후 출교하고 말았죠.
이번에는, 아예, 교회선교는 접어 버리신 현진님쪽 평화재단 활동을 할까 생각중입니다. 만약 그렇게 결정한다면, 이분의 혈통은 여전히 선한 것인가요, 형진님쪽에서 받은 혈통인데? 아니면, 그냥 아는 친구따라 장로교회나 나갈까 생각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장로교회에서 진짜로 세례를 받아 버리면, 이번에는 예수의 혈통을 받는 것인가요?
아시겠죠, 제 포인트? 교회에서 말하는 “사탄의 혈통”은 유동적이고 변하는 것입니다.
혈통이 유동적이다는 것은, 그런 혈통 때문에 나에게 “평생의 낙인”이 찍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완용의 후손들은 평생 낙인이 찍히죠. 사탄의 혈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통일교에 입교해 삼일간 종교행사만 하면 되니까. 그러니까, 말은 참 더럽게 들리지만, “사탄의 혈통”을 가졌다고 그리 괴로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실제에 있어, “사탄의 혈통”이란 그냥 “말”일뿐입니다. 신학 이론상 필요해서 만들어 놓은 개념일 뿐입니다.
이상하게도, 일부에서는, 이 “사탄의 혈통”이 관념이 아니라 실제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가 좋은 것이라고, 육신의 혈통처럼 실제적이기를 바라는 지는 모르지만, 무슨 자기만의 심리적 이유가 있겠지요.
*사탄의 혈통을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으신 분들은, 제가 바로 이 글 위에 올려놓은 <사탄의 혈통을 실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란 글을 읽어 보십시오.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한 두개 있을 것입니다.
백 번 양보해서, 루시엘의 피가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고 가정해 보죠. 그렇다면, 루시엘의 피만큼 우수한 혈통도 따로 없습니다. 그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번 보세요: (ㄱ) 머리 좋기로는 루시엘 따라 갈 존재 없죠, 하나님도 등쳐먹은 놈이니까. (ㄴ) 또, 통일교인들은 그가 무척 미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와가 한 눈에 반해버렸을 정도로. (ㄷ) 경영 판단력도 엄청나죠. 6천년간 메시아을 두 번이나 갈아치우고, 수많은 선지성현들의 반란에도 끄덕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경영하고 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절대 패권자의 유전자를 내가 이어 받았다구요? 흠…
그러나, 이런 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사탄의 혈통이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요인이 하나 있습니다. 이 요인이란 바로 소위 “타락성"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만, 평신도 식구님들이 생각하는 타락성이란 이런 것입니다:
“루시엘의 피속에는 뭔가 더러운 것이 있고, 그 더러운 것이 내 몸속에도 피를 타고 돌고 있다.”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아무런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우리는 왠지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다보면 가끔 마음속으로, 거짓말, 질투, 시기, 교만, 분노, 욕만, 사기, 등등의 부정적 감정들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런 마음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내가 뭔가 잘못된, 뭔가 부족한 인간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죠.
그리고는, 무의식적으로, ‘내속에 있는 이 모든 나쁜 마음들의 원천이 바로 루시엘의 피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혈통은 아니래도, 우리의 마음을 영적으로 조정하는 어떤 “영적인 유전인자”가 있다면, 그걸 “피”라고 부를 수 있고, 우리는 그 피를 가지고 있는 루시엘의 자손이다는 결론입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루시엘의 타락성이 정말 내게 유전되었는가?”
저의 결론적 대답을 네 문단으로 요약하겠습니다. 원죄와 타락성에 대한 저의 솔직한 신앙고백입니다:
1. 루시엘에게 타락성이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내게 유전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루시엘은 아담과 해외처럼 처음부터 자유하는 영적 존재였다. 그래서, 질투라는 것을 할 수 있었고, 해와를 유혹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상상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시엘은 이런 자유스런 상상을,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겨 해와와 성교한 것이다. 이러한 자유스런 상상과 의지를 ‘타락성’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상상과 의지는 자유하는 영적 존재들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능력들이고, 그런 능력을 만들어 준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 루시엘이 해와를 따먹은 것은 천법에 따라 엄청난 대역죄가 된 것이 분명하다. 해와의 주인이 하나님에서 루시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해와의 주인만 바뀐 것이 아니라, 불행히도, 그녀의 후손인 모든 인류의 주인이 루시엘로 바뀌었다. 그러나, 루시엘의 따먹음은 영적인 사건이었기에, 우리들의 육신적 혈통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 했다. 따라서, 둘이 아무리 영적으로 사랑했다해도, 루시엘의 피가 우리에게 직접 옮겨오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는 해와와 진짜 성교를 한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아>씨의 자손들이다. 그러나, 천법의 규정에 따라 주인은 여전히 루시엘이다. 꼭 혈통적 할아버지가 내 주인이 되라는 법은 없으니까. 주관권은 루시엘이 가지고 있더라도, 나와 내 주인 사이에 혈통적 관계는 없다.
3. 아무리 천주를 뒤엎은 엄청난 죄라 할지라도, 루시엘과 해와의 성교는 둘 사이에서만 일어났던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사건이었음도 분명하다. 따라서, 6천년 후에 태어난 나 자신이나 인류는,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의 동침 사건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이 없다. 우리는 오히려 짓지도 않은 죄를 덮어 쓴 피해자들이다.
4. 따라서, 오히려 피해자인 현생 인류에게, 루시엘과 해와를 핑계대며, ‘타락성이 있는 어둠의 자식들이네,’ ‘원죄가 있네,’ 그러니까, ‘회개하라느니,’ ‘탕감비를 지불하라니,’ 등등의 언사들로, 인격 모독과 협박을 감행하는 인간들은 인류 모두에게 엄청난 무례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시건방진 대답들에 대해 변명을 좀 해야겠죠?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다음에 하겠습니다.
-을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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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사탄의 혈통>이라는 어휘는
신학적 필요에 의해서 지어진
말일 뿐이다.>는 주장에는,
과학적인 실증적 검증을 요구 하는 접근 방법의 연구 태도로서,
위 주장은,
<원리 강론>의 교육 방향과
메시아의 교육 <말씀>에
반 하는 내용으로서
동의 할 수 없다.
주 교과서인 원리 강론과 말씀에
위 주제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과학적인 검증으로 현대 지성이 실증 할 수 있도록
자세 한 과학적 검증 Data를 제시 하지는 않았고,
산발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으나,
타락론에서는,
타락의 주체인 누시엘은 영적 존재이고,
해와도 영을 주체로 소유 한 존재로서,
영인과 지상 인 사이의 영적 성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수수 관계가
신학적 필요에 의해서 지어진
말일 뿐이다.>는 주장에는,
과학적인 실증적 검증을 요구 하는 접근 방법의 연구 태도로서,
위 주장은,
<원리 강론>의 교육 방향과
메시아의 교육 <말씀>에
반 하는 내용으로서
동의 할 수 없다.
주 교과서인 원리 강론과 말씀에
위 주제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과학적인 검증으로 현대 지성이 실증 할 수 있도록
자세 한 과학적 검증 Data를 제시 하지는 않았고,
산발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으나,
타락론에서는,
타락의 주체인 누시엘은 영적 존재이고,
해와도 영을 주체로 소유 한 존재로서,
영인과 지상 인 사이의 영적 성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수수 관계가
┗ 20:42
지상인 사이의 수수 관계 시에 느끼는
감각과 느낌이 같다고
표현 되어 있다.
영적으로 심령 기준이 높거나,
영매의 사명이 있는 존재만이,
이해 하고,
스스로의 내적인 인식으로 확신을 하는 문제로서,
현재의 과학의 단계로서는,
검증으로 실증의 인식 할 Data가 없다고,
심령 세계(영계) 존재와
지상 영육 인간 과의
상호 수수 작용과 그 결과물인
사탄 혈통에 관하여
단정 한 다는 것은,
하나의 주관적인 가설로서는 제기 할 만 할다고 할 것이로되,
신앙 상의 Issue를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단정 짓는 다는 것은
아직은 시기 상조이고
무모 하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신앙인의 지위에서는
더욱 더 무모 하다고 생각 한다.
감각과 느낌이 같다고
표현 되어 있다.
영적으로 심령 기준이 높거나,
영매의 사명이 있는 존재만이,
이해 하고,
스스로의 내적인 인식으로 확신을 하는 문제로서,
현재의 과학의 단계로서는,
검증으로 실증의 인식 할 Data가 없다고,
심령 세계(영계) 존재와
지상 영육 인간 과의
상호 수수 작용과 그 결과물인
사탄 혈통에 관하여
단정 한 다는 것은,
하나의 주관적인 가설로서는 제기 할 만 할다고 할 것이로되,
신앙 상의 Issue를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단정 짓는 다는 것은
아직은 시기 상조이고
무모 하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신앙인의 지위에서는
더욱 더 무모 하다고 생각 한다.
┗ 20:46
결론으로,
신앙인의 위치에서는
우리 신앙의 핵심 가치인,
<원리 강론>의 교육과
메시아의 가르침이신 <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배우고 이해 하여
알아서 믿는 방법 만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신앙>의 방법을 통 해서
위 질문에 접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원글 필자의
잘 정리 된 생각과
논리적인 전개의 글이
많은 신앙인들에게
타락론 이해의 지평을 넓혀 준다는 점에서
유익 한 글이다.
신앙인의 위치에서는
우리 신앙의 핵심 가치인,
<원리 강론>의 교육과
메시아의 가르침이신 <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배우고 이해 하여
알아서 믿는 방법 만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신앙>의 방법을 통 해서
위 질문에 접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원글 필자의
잘 정리 된 생각과
논리적인 전개의 글이
많은 신앙인들에게
타락론 이해의 지평을 넓혀 준다는 점에서
유익 한 글이다.
21:00
원리의 타락론 이하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곧 올 것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까지 믿어 온 사람들은 또 어떻게 되고
잘 생각들 해보시오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까지 믿어 온 사람들은 또 어떻게 되고
잘 생각들 해보시오들
┗ 21:24
곧 올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온 것이다.
통일원리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참가정이나 수제자들이나 신도들의 삶의 현실을 눈으로 보고도 모른다면 할말이 없다.
통일원리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참가정이나 수제자들이나 신도들의 삶의 현실을 눈으로 보고도 모른다면 할말이 없다.
┗ 21:45
인식의 판단을
외적인 모양 만으로 할 때에는
질적인 오류를 범 할 가능성이 농후 하다는 것이란다.
귀하의 심령과 지능의 기준이나 범위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를
파악 할 수가 불능이니라.
섯부른 판단을
함부로
범 하지 말 지어다.
<너 자신을 알라 ~ !>
귀하가 좋아 하는
헬라 문화권의 교육 내용이다.
외적인 모양 만으로 할 때에는
질적인 오류를 범 할 가능성이 농후 하다는 것이란다.
귀하의 심령과 지능의 기준이나 범위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를
파악 할 수가 불능이니라.
섯부른 판단을
함부로
범 하지 말 지어다.
<너 자신을 알라 ~ !>
귀하가 좋아 하는
헬라 문화권의 교육 내용이다.
┗ 21:51
너자신이 아니고
나자신을 알라
나자신을 알라
뭔 말인지?
답글삭제내가 이정도로 똑똑하다. 그리고 내가 하는 고민은 이정도 수준이다. 그런 것인가?
내가 정말 똑똑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누가 보아도 들어도 알 수 있는 것 같은 내용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위 내용은 자기 자신에 빠져있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