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신)종교 연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시도는 (신)종교의 대표적인 정체성과 그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종교는 다른 신종교와 비교하여 보편적인 정체성뿐만 아니라 특수한 정체성을 포함하고 있는데,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수한 정체성이 바로 그 신종교의 대표적 정체성이라 할 수 있고, 그 정체성은 의례나 신념체계 등의 종교현상을 통해 외부로 표현된다. 현재 관찰되는 종교현상은 시간적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종교현상의 최초 동기가 되는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그 종교의 신화이다. 따라서 신화는 그 종교사의 상징과 뿌리이며, 교리와 의례의 동기이기도 하다.[2]
오래된 기성종교에 비해 신종교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신종교도 역시 신화로서의 사건, 즉 역사를 갖고 있다. 신종교의 신화도 신종교 출발의 동기와 그 당위성에 대한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신앙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단지 신종교의 신화가 시공간적으로 현재와 가깝다는 것이 기성종교 신화와의 차이이다. 특히 신종교의 신화는 창교자의 특수한 종교적 사건, 예를 들어 창교자의 종교적 체험이나 종교적 능력 및 초기 신자들의 다양한 종교적 사건 등에서 비롯되어 시간이 감에 따라 상상력이 더해져 신종교의 신화로 구체화되고, 그것이 체계를 갖추어 의례로 지켜지며 신봉된다. 신종교의 신화와 의례가 형성되어 체계적인 교리가 형성되는 과정은 특정 신종교에 대한 이해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종교 현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능케 한다. 더 나아가 신화와 의례, 교리 등을 포함한 신종교의 정체성은 화석화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신종교가 처한 내외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도 신종교 연구의 즐거움이자 이유이다.
종교 교리와 전통 등 정체성의 변화가 신종교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신종교에서의 변화는 기성종교의 그것에 비해 다소 쉽고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창교자가 생존해 있는 경우, 교리와 의례의 변화는 창교자의 종교적 정체성 변화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리와 의례의 변화가 바람직한 것이냐 아니냐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교리와 의례가 변화되는 과정과 일관성의 문제가 더 중요한 요소이다. 교리와 의례가 비록 창교자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종교적 변화에 따라 교리와 의례가 변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의례와 전통이 간단하게 형성되어 전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교리와 의례 하나하나에는 신화적 사건, 즉 이야기가 내재되어 있어서 교리를 지키고 의례를 행하는 신앙자들은 신화적 사건과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수하며 신앙으로 내재화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앙이 유지되고 종교적 가치가 형성 및 전수되어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다. 특히 의례는 신화(교리)가 실행되어 표현되는 결과이며 종교의 정체성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 그 자체라고도 할 만큼 종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3] 그만큼 변하기가 어렵고, 만약 변해야 하는 경우라면 의례의 변화에 상응하는 신화적 사건과 이야기(교리)를 통해 합리화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다면 종교적 정체성의 혼란은 필연적이다.
본 논문은 이런 관점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변하며 이어져 온 통일교회의 정체성과 그 변화 과정을 “혈통복귀의례”를 중심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필자의 이러한 의도는 통일운동을 이끌어 온 문선명 선생의 핵심 정체성을 “혈통이 복귀된 참가정에 의한 지상천국 건설”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이 정체성은 혈통복귀의례인 “축복결혼”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신종교 중에서 역사와 규모, 나아가 한국 사회에 미쳐왔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통일교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신종교라는 필자의 주장에 그리 많은 이견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통일교회의 혈통복귀의례 변화과정을 연구하고자 한 필자의 구체적인 이유는 1)축복결혼식을 통한 혈통복귀 행사는 통일교회를 대표하는 정체성이고, 2) 혈통복귀의례의 첫 열매이자 통일교회 정체성의 핵심에 있는 참가정(창교자의 직계가정) 주변에서의 교리 논쟁은 창교자 성화 후 “참부모(참어머니)”가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관찰되는 특이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3) 특히 창교자 성화 전후 진행되었던 후계자 논쟁은 당사자들의 정체성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특히 혈통복귀의례에 대한 정체성도 분명한 차이를 보일 것이라는 가정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을 통해 통일교회 정체성의 알파와 오메가인 혈통복귀의례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고자 한다.
2. 통일교회 혈통복귀 신화의 형성
통일교회는 창교자에 의해 “혈통이 복귀된 참가정 운동을 통해 하나님나라 건설”을 종교적 이상으로 삼고 있다. ‘혈통복귀’는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해와가 타락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혈통’을 회복한다는 통일교회 구원론의 중심으로서 통일교회 정체성의 근간이다. 비록 혈통복귀의 정체성이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의 타락설화를 근원으로 하고 있지만, 혈통복귀의례는 창교자가 주도한 새로운 신화적 사건에 기초하고 있으며, 창교자의 종교체험을 통한 정체성 형성과정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가. 통일교회 신화의 태동: 1920~1953
창교자 문선명(文鮮明) 선생은[4] 1935년 4월 평안북도 정주의 묘두(猫頭)산에서 밤새워 기도하던 중 예수를 만나 인류구원에 대한 소명을 받았다.[5] 이때 받은 소명은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더 이상 죄와 타락이 없는 평화세계 지상천국을 실현하는 것이었다.[6] 이는 한민족을 중심으로 전개될 또 하나의 천년왕국운동의 출발이 시작되는 사명자 인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그가 받은 소명에서 혈통복귀의례와 관련된 ‘죄의 뿌리,’ ‘타락’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소명을 받은 후 창교자는 우주의 근본과 세상의 원리를 깨닫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특히 자신과 통일교회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타락론’을 체득(體得)한 것은 바로 일본 동경에서의 학창시절 기간이었다고 한다.[7] 타락론은 인간의 원죄가 성적인 음란이라는 사실이 중심 내용이었는데, 이는 이미 성주교단의 김성도를[8] 비롯하여 김백문 등 당시 기독교 신령파 집단의 주 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선생이 1944년 최선길과 첫 결혼을 했는데, 1964년 한학자와의 성혼과 그 이후 통일교회의 결혼의례에서 파악되는 종교의례로서의 특징을 최선길과의 결혼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최선길과 결혼 당시에는 타락론이나 혈통복귀에 대한 교리 및 의례가 구체적으로 조직화 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생은 최선길과 결혼 직후인 1945년 10월 경, 백남주의 애제자이자 성주교단의 조사(助師)였던 김백문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결코 우연한 만남은 아니었을 것이다. 타락론에 대한 관심과 구세의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을 통해 선생과 기독교 신령파들과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김백문은 당시 이미 인간의 타락과 복귀에 대한 나름대로의 체계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9] 선생과 이 신령파들과의 직간접적인 교류는 죄의 뿌리가 음란이라는 교리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선생은 1946년 4월 2일에 최선길과 이룬 가정을 이남에 남겨둔 채 “여호와의 부인”을 만나 그녀를 “복귀”하라는 계시에 따라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다.[10] 선생은 최선길과 결혼 후 이미 아들 성진이 출생한 상태에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입장이었지만, 계시를 따라 목숨을 걸고 월북했던 것이다. 하늘의 계시라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사명자로서의 삶은 세속적 통념이나 윤리, 도덕을 넘어서는 불가피한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통일교회사에 등장하는 평양에서의 4-5년간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 기간 동안 통일교회 창교자의 혈통복귀와 타락론 관련 신화의 실천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창교자가 개척한 평양의 가정교회는 ‘신령파’들이 주로 모였다. 이들 중 박씨 노파와 정득은은[11] 이 논문에서 기억해야 할 주요인물이다. 박씨 노파는 자칭 ‘여호와 부인’으로 스스로를 인식한 사람이었고,[12] 장차 선생은 그녀로부터 ‘여호와’임을 인정받아야 했는데,[13] 이 과정에서 ‘혈통복귀’의 의식(儀式)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14] 박씨와 더불어 선생과의 혈통복귀를 고백한 정득은의 진술을[15] 통해서도 평양에서 이루어진 혈통복귀신화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다.
선생이 주관하던 평양 가정교회에서의 분위기는 선생이 전하는 복귀에 대한 하나님의 한(恨)과 신비로운 종교체험,[16] 집회 참석자들이 울부짖듯 통곡하는 기도와 그들이 전하는 계시의 선포 등으로 가득 찬 신령한 집회였다고 한다. 이것은 기성 기독교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성스러운 성교(性交)를 통해 혈통복귀를 한다는 특별한 의식에 대한 소문은 은밀히 퍼져나갔을 것이고, 결국 선생은 “사회질서 문란죄”로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5년 형을 받게 된다.[17]
필자가 통일교회사에 등장하는 평양의 혈통복귀의례를 신화적 사건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 사건이 지닌 의미가 인간의 이성적 작용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절대자의 계시에 따른 종교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생에게 이 의례는 정당한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필연적인 사건인 것이다. 종교현상은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삶의 본질이나 죽음, 구원과 같은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궁극적 문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종교현상은 생사를 넘어서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보편적으로 인식되어 온 윤리, 도덕의 관념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신종교 현상 중 어떤 것은 기성종교의 성속(聖俗)의 개념조차 넘어서는가 하면, 꿈에서나 보았을 이상세계를 주장하기도 하며 실제로 그 세계를 현실세계에서 이루어 내기 위해 혁명적 시도를 하다가 세속세계나 다른 종교와 마찰을 빚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 신화의 체계화, 교리의 형성: 원리원본
신종교의 교리는 기성종교의 교리에 비해 그 형성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교리 형성의 유무형적 제약으로 정교한 교리체계 형성이 사실상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창교자의 종교체험과 사명자 인식과정에서 형성된 종교성이 추종자들에게 교시되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교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신종교의 교리는 창교자 정체성의 투사체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창교자의 종교적 정체성의 변화에 따라 교리와 의례도 변화한다.[18] 신종교의 교리, 의례의 가변성은 신종교의 변화 과정과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서 신종교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통일교회의 주요 교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복귀’라는 공식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교회 의례, 특히 혈통복귀의례는 구원을 위한 행위로서 인간이 타락했던 반대 경로를 상징화하여 구체화 되었다. 절대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성적 음란행위와 혈통의 더럽혀짐이 타락의 이유였음으로 그 반대 경로를 따라 절대자를 대신하여 창교자가 정해주는 배필과 약혼하며, 이미 절대자의 혈통으로 복귀된 창교자를 통해 중생하는 것과 그 과정이 통일교회에서 주장하는 복귀의 공식이자 그 의례이다.
선생은 6.25 전쟁 중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하였다. 우여곡절을 거쳐 도착한 부산 범냇골에서의 생활과 1952년 5월 10일, 통일교회 제1경전인 原理原本이 완성된 사건 등은 통일교회사에서 평양 가정교회에서의 사건들과 함께 풍부한 신화의 재료를 통일교회에 제공하고 있다. 특히, 『원리원본』은 선생이 체득한 하늘의 계시와 당신이 스스로 탐구하여 밝혀낸 하늘의 비밀, 나아가 기독교 신령파들과 주고받은 여러 종교적 요소가 포함된 경전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원리원본』은 통일교회의 정체성, 특히 혈통복귀의 근본을 밝히는 교리로서, 인간의 타락 이유, 타락의 경로, 타락의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천사장이 해와와 성적인 음란관계를 통해 일체를 이루었고, 타락한 해와가 다시 아담과 육체적인 성관계를 맺음으로써 영육(靈肉) 아울러 타락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19]
이후 창교자가 깨달은 육적타락(음란행위)의 복귀신화, 즉 혈통복귀 신화는 실제 거룩한 성행위를 통한 결혼의 종교의례로 발전하였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해와가 절대자를 배신하고 음란행위로 타락했으므로 구원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음란행위와 반대 경로로 복귀해야하며, 절대자가 허락하는 거룩한 성행위(축복결혼식)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거룩한 성행위를 통한 복귀의 과정을 통일교회는 ‘혈통복귀(血統復歸)’의[20] 축복결혼식으로 조직화하였다. 물론 거룩한 결혼으로서의 축복결혼식은 부부에서 가정, 민족, 국가, 세계 나아가 우주의 범위로 확장된다. 혈통복귀를 포함한 구원의 과정은 창교자의 어린양 잔치로 구체화 되었다.[21] 특히 이 논문이 주목하는 통일교회 혈통복귀의례의 원리와,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 『성신신학』,[22] 정득은의 『생의 원리』에서[23] 보이는 타락론과 혈통복귀 관련 내용과의 체계적인 비교연구는 필자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통일교회의 교리가 『원리원본』을 통해 구체화 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부산 피난시절의 소규모 집회에서는 특별한 의례가 발견되지 않는다. 6.25 전쟁 직후 부산에서 전도된 신앙자들의 간증에 따르면 마치 평양 가정교회에서의 신령한 예배에서와 같이 계시를 통해 모인 신령한 사람들에 의한 소규모의 신령한 예배가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24] 전쟁 직후 혼란하고도 비참한 한국 사회의 현실보다 구세의 사명을 준비하고 있었던 선생의 사정이 더 힘들었던 이유도[25] 있었을 것이다.
3. 의례의 체계화; 혈통복귀 실천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1954-1960)
통일교회 교리의 근간이 되는 原理原本의 초고를 탈고한 이후 포교의 근거는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왔는데, 창교자는 1954년 청파동에 본부를 둔 ‘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를[26] 창립하였다. 협회의 명칭을 통해 선생이 인식하고 있던 구세 사명의 방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스스로 특정한 교파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며, 통일교회라는 명칭도 선생이 의도한 이름이 아니었다고 언급한다. 비록 협회의 명칭이 외관상으로는 기독교의 한 분파로 여겨질 수 있고, 실제로 기성기독교는 선생의 통일교회를 기독교 성경을 근본으로 하는 기독교 이단 교파 중 하나로 여기기도 했지만, 선생은 그 이후에도 자신의 구세 활동을 결코 종파나 분파로 여기지 않았다.
당시 행해졌던 의례는 주로 신령한 예배와 원리강의를 통한 전도활동이었다. 예배의 형식은 설교와 기도 그리고 찬송으로 이루어졌는데, 고도로 정형화된 예배의 형식을 추구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좀 더 많은 신앙자들을 전도하여 조직의 안정적인 울타리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초기 통일교회는 늘 불안하기도 했고, 늘 간절했다. 일요일 설교는 거의 선생이 하였고, 성경을 기본으로 제목을 붙여 이루어졌는데, 예배의 절정은 선생의 설교와 기도에서 이루어졌다. 하나의 찬송을 반복해서 부를 때, 간절한 심정에 사무쳐 참석자들은 늘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타락한 인류를 복귀해야 하는 하늘의 심정이 참석자들의 심정과 통하였던 것이다. 수십억 인류 가운데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신앙자들에게 하나님의 사정이나 그들의 사정이나 같았을 것이다.
선생이 주도한 예배와 원리강의도 협회 창립 전부터 자리 잡은 통일교회의 중요한 의례로 볼 수 있다. 유효원을 비롯 협회 창립을 전후하여 전도된 사람들은 주로 엘리뜨들이었고 대학생들을 주로 전도하려 했다는 사실은 특이하다. 통일교회와 비슷한 시기에 박태선에 의해 시작된 전도관의 경우 엘리뜨만이 아니라 다양한 수준과 계층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전도된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전도관의 박태선이 전국적인 대중 부흥회를 대대적으로 벌였던 것과는 달리 통일교회의 선생은 협회를 조직한 후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대규모 종교집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대신 소수 엘리뜨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효원의 (판서) 원리강의가 통일교회의 전도수단이었다는[27] 사실은 한국전쟁이라는 대재난 상황에서 신종교가 급속도로 확대될 수 있는 기회를 전도관에 비해 통일교회가 놓친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28] 선생이 주도한 통일교회의 원리에 감명을 받아 회심한 소수의 엘리뜨 신앙자들은 기존 종교와 사회로부터 통일교회에 가해지는 경계와 압박을 방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창교자의 가정이 깨지는[29] 일에서부터 ‘이대・연대 사건’과[30] ‘서대문 형무소 수감 사건’[31] 등의 사태가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이어졌다. 일련의 사태들은 신종교로 출발한 통일교회가 정체성을 달리하는 사회 및 기성종교와 부딪혀야 할 필연적인 갈등이기도 했다. 통일교회사의 공식 자료는 김명희의[32] 경우를 제외하고, 이 기간 선생에 의한 혈통복귀행사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4. 의례의 실천
가. 창교자의 어린양 잔치
그런 와중에 창교자가 40세에 가까워지자 여자 신도들은 어린양의 배필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통일교회의 표현을 빌리자면 “창교자와 결혼하고 싶어 생명을 걸어놓고 덤벼드는 상황이었다”고 한다.[33] 창교자를 둘러싼 이러한 통일교회 내에서의 분위기는 통일교회의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1960년 만40세였던 창교자는 당시 17세였던 한학자(韓鶴子)를[34] 어린양의 신부로 간택했다.[35] 어린양의 신부는 우주를 대표하는 어머니이자 구세주의 아내였다. 창교자의 어린양 잔치는 가약식(1960년 3월 27일, 음3.1.)을 먼저 하고 1960년 4월 11일 오전 10시부터, 전국교회에서 선발된 7백여 명의 남녀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청난 반대’[36] 속에서 두 번의 행사로 거행되었다. 제1차식은 ‘탕감복귀 부모의 식’으로 통일교회인들이 좌우로 도열한 가운데 하얀 양복과 치마저고리로 예복을 입은 신랑신부가 중앙통로로 걸어 나와 북쪽에 마련된 무대단상(行禮臺)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천주를 향해 성혼을 선포하였다. ‘영광의 부모의 식’인 제2차식은 신랑신부가 한국 전통 한복으로 갈아입고, 입장한 '하나님' 앞에 선서를 올리고, 이어 참석자 전원의 경배(4배), 신랑신부 맞절(3배), 신랑신부 예물교환, 맞절(1배)로 본례가 끝났다. 창교자는 성혼식을 통해 통일원리가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통일교회의 존재가 온천지에 널리 알려져서 순조롭게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37]
창교자의 성혼식은 통일교회 의례의 시작이자 성스러운 통일교회의 신화가 정형화된 첫 의례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단순한 결혼이 아니라 ‘하나님’이 잃어버렸던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의 공인된 최초의 결혼이자 창교자 자신이 재림주, 참부모, 메시아로 자리매김 되는 어린양 혼인잔치이기도 했다.[38] 이 종교적 가치는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린양잔치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으며, 통일교회가 존재하여 세계를 혈통복귀로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창교자의 어린양잔치 이후 통일교회는 ‘부모의 날’을 비롯하여 ‘8대 명절’과 ‘봉헌식’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절기 의례를 제정하였고,[39] 일반 신도들도 혈통복귀와 구원을 위한 성스러운 종교의식으로의 결혼이 허락되었다.
나. 축복결혼식의 원형: 36가정 축복결혼식
창교자 부부의 역사적인 가약식(1960년 3월 27일, 음 3월 1일)이 있기 전 김원필-정달옥, 유효원-사길자, 김영휘-정대화 3쌍이 하늘 자녀로 택정 받아 약혼을 맺었다. 이어 창교자 성혼식(1960년 4월 11일, 음 3월 16일)이 거행된 후 닷새째 되는 날에 위 세 쌍이 창교자의 3자녀 가정으로서 성혼을 허락받아 “성례식”을 올렸다. 이들에 대한 결혼 허락이나 매칭은 당사자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창교자가 직접 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통일교회 축복결혼식의 효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961년 5월 15일, 나머지 33쌍을 더하여 36가정 합동축복결혼식을 실시함으로써 축복결혼식을 통한 “축복가정”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40] 축복결혼식은 어린양잔치를 통해 참된 혈통의 조상이자 참부모의 입장으로 복귀한 창교자가 '하나님'의 혈통을 전수해 주는 거룩한 혈통전환 의식이며, 이를 통해 자녀를 번식하여 지상천국을 이루려는 통일교회 정체성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선생이 세상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동안 창교자가 인간의 타락문제를 놓고 하늘로부터 담판 받은 집단적 혈통복귀 사명의 첫 출발이기도 했다.
현재 통일교회에서 거행하는 축복결혼식 의례의 절차는 창교자의 성혼식과 36가정 합동축복결혼식 이후 72가정 축복결혼식을 거치면서 체계화되었다. 36가정 축복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통일교회 창교자와 더불어 통일교회 신화형성의 주역이었기 때문에, 통일교회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왔고, 통일교회의 핵심역할을 두루 역임해 왔다. 축복결혼식에 참여한 순서는 통일교회 발전에 공헌한 서열이기도 하고 집단별 공동체 의식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통일교회 특권의식의 상징이었다.[41]
한 가지 주목할 점은 36가정 축복 결혼식의 요소와 72가정 이후 현재 축복결혼식의 요소에 다소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통일교회의 축복결혼식은 ‘약혼식-성주식-결혼식-성별기간(40일 성별과 탕감봉)-삼일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36가정 ‘성례식’에서는 성주식, 성별기간, 삼일식 및 40일 성별의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 36가정에서 성주식과 삼일식에 대한 공식 자료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성주식과 삼일식에 해당하는 의례의 요소를 36가정 ‘성례식’ 전에 이미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거친 혈통복귀의례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식적인 자료에서 확인할 수 없으나,[42] 이 의례에 대한 사료수집과 통일교회학적 해석의 필요성은 시급하다.[43]
어쨌든 최초 3가정 축복식은 그 후 의례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앞으로 전개되는 대규모 합동축복결혼식의 원형이었다. 3가정 축복결혼식은 양차에 걸쳐 거행되었는데, 제1차식은 잃어버린 만물을 찾아온다는 의미의 ‘만물복귀의 식’과 ‘자녀복귀의 식’으로 진행되었고, 제2차식은 혼례 본식으로 축복예식으로 진행되었다. 1차식은 자녀들의 선서, 문답, 축도로 거행되었고, 2차식은 예복을 입고 행진, 삼배 경배, 문답 선서, 축도, 1배 경배, 예물교환, 교회 대표 예물 증정, 축가로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선서>[44], <문답>[45], <축도>, <말씀>을 한 후에 다시 한 가정씩 “축복받은 참아들딸에게 오늘 이 자리에서 성혼을 허락 하시옵소서”라는 <선서>와 <문답>,< 축도> 후 <기도>로 진행되었다.[46] 36가정 축복결혼식의 의례를 분석해 보면 모든 순서와 용어는 고도의 종교적 상징을 포함하고 있으며, 창교자에 의해 고안된 의례로서 통일교회 의례 특성을 집약하고 대표한다.
36가정은 세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성혼식도 그룹별로 시간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47] 제1그룹은 이미 결혼한 부부가 다시 결혼하는 기성(旣成)가정이며,[48] 제2그룹은 재혼 가정이며, 제3그룹은 미혼으로 참가한 그룹이다.[49] 세 그룹으로의 구별은 결혼과 관련된 모든 유형의 인간이 축복식에 참여할 수 있으며, 복귀원리에 따라 각 유형별로 거쳐야 할 의례를 구별하여 예시했음을 보여준다.
36가정 결혼식에서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은 제2그룹의 결혼 대상자 중에는 창교자의 지시에 따라 통일교회의 축복결혼에 참여하기 위해 이혼을 감행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비신앙자들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 당시 축복결혼식에 참여하는 신랑신부의 각오와 종교적 태도를 엿볼 수 있으며, 이는 통일교회가 가정을 파괴하는 종교라는 비난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36가정의 각 그룹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 발전과정으로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라는 삼 단계의 인류역사를 상징했다.[50]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통일교회 축복결혼의 세 가지 모델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믿음의 자녀 3명 이상 전도, 일정 금액의 헌금 등 자격을 갖추고 의무를 다 한 사람만이 36가정 축복결혼식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자격과 의무도 역시 앞으로 전개될 축복결혼식의 기준이 되었다.[51] 36가정 축복결혼식 후 신랑신부가 바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임지(任地)로 파송되어 전도활동과 봉사활동, 계몽활동에 헌신하였던 것도 이 후 통일교회 전도의 전통이 되었다. 36가정의 축복결혼식을 모델로 하여 이후 72가정, 124가정, 430가정 등으로 확대되어 나왔으며,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국제결혼으로 확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 축복결혼식의 과정
통일교회 축복결혼의 종교적 의미는 절대자가 이상했던 사랑의 질서를 결혼을 통해 바로 세우는 것이다. 축복결혼의 과정은 ‘약혼식-성주식-결혼식-성별기간(40일성별과 탕감봉)-삼일식’이라는 연속적인 5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혈통전환’ 의식은 크게 내적 과정인 ‘성주식’과 외적으로 통과하는 과정인 ‘삼일식’이 중심이다.
1단계: 약혼식
원하는 모든 사람이 축복결혼식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혼의 경우 통일교회 입교(入敎)와 일정한 신앙기간을 거친 후, 통일교회 신앙에 대한 확신과 결혼적령기에 다다랐을 때 공직자의 동의를 받아야 축복결혼에 참여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교자를 재림하신 메시아요 ‘참부모’로 믿고, 중생과 부활 의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출발하겠다는 결심이다. 통일교회 입교와 동시에 일체의 자유연애, 특히 성행위는 금지되며 이는 약혼식의 기본 조건이 된다. 기혼 가정의 부부도 축복받을 때까지의 부부생활은 종교적으로 금지된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축복결혼을 받을 수 없으며, 허락받지 않은 성행위는 타락행위라는 믿음 때문이다.[52]
배우자는 창교자에 의해 정해진다.[53] 태초의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의 타락이 절대자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했다는 신앙 때문이다. 약혼식은 ‘불신(不信)죄를 청산하고 믿음을 결정하는 의식’으로 절대자의 사랑의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약혼 상대자를 절대사랑으로 믿고 축복결혼을 지켜야 한다.[54] 1세 미혼남녀의 경우 과거의 모든 죄, 특히 음란죄는 ‘회개문’을 작성한 후 불에 태워 없애버리는 의식을 통해 용서받는다. 그러나 통일교회 축복가정 2세의 경우 결혼 전 성관계는 허락되지 않으며, 이를 어길 경우 많은 조건을 세운 후에야 약혼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참여자가 창교자가 정해 준 배필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창교자가 배우자를 정하는 현상은 통일교회의 축복결혼이 세인들의 입에 자주 올랐던 내용이었다. ‘자유연애’를 지향하는 사회 통념과는 맞지 않았고, 특히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부모들의 반발은 축복결혼 참여자들이 평생 안고가야 할 인륜적 고통이었지만 종교적 이상을 위해 축복결혼 참여자들은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2단계: 성주식(聖酒式)
성주식은 원죄를 청산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성주(聖酒)를 마시는 의식이며, 태초의 인간은 성적 음란행위를 함으로 절대자의 선의 혈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사탄의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믿는 신화에 기초하고 있다. 성주식은 해와인 여성이 먼저 타락한 것으로 보아 이미 복귀된 창교자가 영적(靈的)으로 먼저 여성을 복귀하고, 복귀된 여성이 다시 남성을 낳아 중생(重生)시키는 과정의 의례이다. 성주는 세 종류의 술과 모든 만물을 상징하는 21가지 재료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이것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은 철저히 비밀로 지켜지고 있다.[55] 성주를 마신다는 것은 영적, 육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통일교회인들은 이 식이 없으면 원죄를 벗고 ‘혈통전환’을 할 수가 없는 것으로 믿고 있다.[56]
성주식에 참여하는 모든 여성은 타락한 해와의 입장이며 원죄 없는 아담인 재림주의 신부의 입장에 있다. 따라서 (그와 실제 결혼해야 구원이 완성되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는 상징적 행사가 바로 성주식인 것이다.[57]
3단계: 축복식
축복식은 하늘(천상, 영계)과 땅(지상세계)이 보호하는 가운데 창교자에 의해서 축복결혼이 만천하에 선포되는 의식으로 결혼식에 해당된다. 진행순서는 ‘개식선언-기도-예식사-축원-들러리입장-주례입장-고천문-성수의식-성혼문답-축도-예물교환-성혼선포-축사-축가-꽃다발봉정-기념품봉정-신랑신부인사-만세삼창-주례퇴장-폐식선언’이다. 주례를 모신 가운데 고천문과 성수의식, 성혼문답이 핵심 내용이다. 고천문(告天文)은 ‘합동축복결혼식’을 절대자에게 고하여 영원한 참사랑의 축복을 허락받는 기원의 의식이며, 성수(聖水)의식은 주례가 성별된 성수를 신랑신부들에게 뿌려서 축복을 받는 남녀를 성별(聖別)하는 의미를 가진다. 성혼문답은 축복결혼에 참여하여 축복가정을 이루는 참여자들이 절대자와 창교자 앞에서 영원한 부부의 인연을 설정하고, 상대자인 남편과 아내 앞에 도리와 책임을 다해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을 세계적인 지도자로 양성하면서 가정생활을 통해 지상천국을 건설할 주역이 될 것을 결의하며 선서하는 의식이다.[58]
축복식은 일반에게 공개된 행사로 가장 정교하게 조직된 통일교회 의례이며 구원행위이다. 창교자 및 의례 참여자의 독특한 복식(服飾)과 의례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날 뿐만 아니라 통일교회의 정체성이 일반에게 공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축복식의 초점은 엄밀히 말해 의례에 참여하는 신랑신부가 아니라 의례를 집전하는 창교자 부부에 집중되어 있다. 축복식은 단순한 결혼식의 차원을 넘어 모든 인류를 혈통복귀의례인 축복식을 통해 구원하겠다는 창교자의 의도가 세상에 드러나는 의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4단계: 성별기간(聖別期間)
축복식 후 실시하는 성별기간은 ‘40일성별’과 ‘탕감봉(蕩減棒)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별기간은 아담, 해와가 성장기간에 불륜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40일 기간 동안 절대자와 창교자의 심정과 하나 되어, 자신의 배우자를 심정적으로 잘 모시고 정성을 드리는 기간이다. 탕감봉 의식은 천사장이 해와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타락했다고 보기 때문에 음란의 상징인 우리 몸의 환도뼈(엉덩이)가 있는 허리 아래 엉덩이를 몽둥이로 남편과 부인이 서로 세 대씩 내리침으로써 역사 이래 모든 남녀의 타락이 초래한 원한(怨恨)을 풀고, 과거의 모든 잘못을 서로 용서하는 의식이다. 세 차례의 격타는 소생기, 장성기, 완성기의 3단계와 구약, 신약, 성약시대를 탕감복귀(회복)한다는 상징적인 표시가 된다. 진행절차는 경배를 드린 후에 먼저 남편이 부인의 엉덩이를 세 대 때리고, 다시 맞은 부인이 남편의 엉덩이를 세 대 때리는데, 이 의식은 서로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부부가 살면서 절대로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지낼 것도 다짐한다.[59]
5단계: 삼일식(三日式)
삼일식은 성별기간이 끝난 후 실체적인 부부로서 가정을 출발하고 성관계를 맺는 혈통복귀의식으로 5단계 중에서 가장 실질적이고 독특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삼일식 행사는 전체 복귀섭리역사(구약, 신약)를 탕감복귀하는 실체적인 복귀식(탕감식)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참부모’인 창교자에 의해 중생 조건을 세우는 탕감의식이며, 진행절차는 타락의 반대경로에 따라 “아내가 먼저 복귀되어 남편을 다시 낳는 과정을 외적으로 통과하는 의식”이다.[60]
부부는 각자가 샤워 후에 성건(聖巾)에[61] 물을 묻혀서 몸을 깨끗이 닦은 후에 통일교회 전통예복인 하얀 예복을 입고 참여한다. 첫째, 둘째 날의 여성 상위의 의식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남편이 절대자의 아들로 탄생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남편은 부인에게 ‘어머니, 나를 낳아 주십시오’하는 심정으로 경배를 세 번 올리고 시작하고, 마친 후에는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심정으로 경배를 한 번 올린다. 셋째 날은 비로소 남편이 남자의 주관성을 복귀하는 의식으로 부부가 맞절을 3회 한 후에 남성 상위의 의식을 하고 마친 후에는 부인이 남편에게 한 번 경배함으로 종료된다. 여기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성행위를 마친 후에는 성건으로 각자의 생식기를 닦은 후 이를 세탁하지 않고 그대로 말려서 보관하며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을 종교적 전통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건에 묻은 흔적이 “중생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혈통전환의)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62]
삼일식은 단순한 부부의 성적결합이 아니라 거룩한 복귀의 의식으로 ‘성별된 공간에서’[63] 엄숙하게 진행되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삼일식은 혈통복귀의례의 핵심이며, 그 의미는 통일교회 정체성 전체의 의미와도 같기 때문에 의례의 성공여부에 따라 의례 참여자가 갖게 되는 종교적 의식(意識) 및 무의식(無意識)은 신도들의 종교생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통일교회 축복결혼의 이상이 모든 참여자에 의해 실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창교자가 맺어준 상대자가 참여자의 이상형과 맞지 않거나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약혼이 파기되는 경우도 있고, 엄격히 준수되어야 할 삼일식의 절차가 지켜지지 않아 다시 행해지기도 한다. 모든 의례에서 부부간 성적 의무와 책임은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적, 윤리적 의무이다.
라. 축복가정의 생활
통일교회 축복결혼의례의 절차와 의미를 통해 통일교회의 ‘결혼 및 성’과 혈통복귀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과 창교자의 종교적 체험이나 교리가 의례의 절차와 의미에 모두 녹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교회인들에게 ‘혈통복귀’의 과정인 축복결혼만큼 일상의 ‘가정생활’도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왜냐하면 음란의 타락으로 원죄를 유전 받아 혈통에 문제가 생겼고, 이기심과 같은 ‘타락성’을 갖게 되었으며, 축복결혼 이후 가정생활을 통해 실체적인 성장기간을 거쳐 타락성이 사라져야 완성한 인간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구원 받아 완성한 인간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성적(性的) 타락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창교자는 ‘성(性)기관’을 “사랑의 본궁, 생명의 본궁, 혈통의 본궁”[64]으로 교시하고 생식기로 저지른 음란죄는 결코 용서받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부부는 축복결혼을 받은 후 절대자의 뜻에 복종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참부모인 창교자에게 맡기고 축복식을 통해 받은 거룩한 혈통을 절대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65]
통일교회의 성 정체성은 아주 엄격한 성 윤리를 준수하면서도 부부간에 있어서는 상호 합의 하에 자유롭고 다양한 성 행위를 통해 행복한 부부생활로 기쁘고 자유롭게 살아갈 것을 신앙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혈통복귀와 유지를 위한 성적 금기와 종교적으로 인정받은 실제 부부간의 자유로운 성생활이 교리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은 통일교회의 성 정체성의 큰 특징 중 하나이다.
통일교회의 축복결혼은 ‘혈통복귀’라는 가정차원의 구원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이상의 실현’이라는 보다 큰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통일교회가 집착하는 국제축복결혼식은 창교자의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1988년 10월 30일에 있었던 6500가정 축복결혼식은 많은 한국과 일본의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었고, 역사적인 한일관계를 청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1992년 3만 쌍 축복결혼 이후 더 다양한 국적의 부부가 탄생했는데 “교리와 언어, 문화와 풍습이 달라도 절대자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부부가 하나 되면 화합과 통일, 문화의 창조가 싹튼다”고[66] 주장하는 창교자의 연설을 통해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5. 의례의 대중화
가. 혈통복귀의 세계화
1980년대 이후 거행된 대규모 국제 및 초교파적 축복결혼의 일반화는 통일교회 문화가 국제화, 다양화 되었다는 긍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종교, 언어 및 문화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로 인해 통일교회인들이 넘어야 할 또 다른 신앙적 과제로 남아있다. 더욱이 1992년 3만 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끝나자 창교자는 1995년에 36만 쌍을 축복할 것이라고 공표하였다. 통일교회의 당시 역량을 고려할 때 이 목표는 거의 불가능한 목표였다. 일반 신앙자의 입장에서 축복결혼식은 가장 성스러운 혈통복귀의례로서 천국백성이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최소 참여조건인 일주일 금식, 믿음의 자녀 전도, 일정기간 동안의 신앙생활, 축복헌금 납부 등에 대해 늘 종교적 자부심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통일교회 각 현장은 36만 쌍 축복의 목표를 위해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 차원에서 대상자들을 ’모집‘하기에 이르렀다. 그들 중 상당수는 나이나 경제적 수준을 고려할 때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수준 미달의 사람들이었다.[67] 축복결혼의 참여조건이 상당히 쉬워졌고, 통일교회의 정체성이나 종교적 이상과는 무관하게 단지 결혼을 목적으로 축복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는 통일교회의 신앙적 문제만이 아니라 다문화 가정에 의한 사회적 문제로 표면화 되었고, 통일교회의 세속화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사실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혼 축복참여자들의 인원이 제한적이자 통일교회 협회차원에서 소위 ‘길거리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기혼축복자들에게 성주를 마시게 했다. 이런 사태에 대해 당시 여러 공직자들이 통일교회의 정체성이 변질될 수도 있음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마신 성주의 가치와 종교의례의 한 부분으로 믿고 마신 성주의 가치가 동일한가에 대한 논란이 당시에 회자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창교자는 그 의미와 가치에 차이가 없으며 성주를 마신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된 자녀가 되었다고 규정했다. 혈통복귀를 통해 전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구세주의 특권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며,[68] 복귀섭리의 시대적 혜택에 따른 혈통복귀에 대한 창교자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 중생식, 부활식, 영생식을 통한 혈통복귀
창교자가 인간 조상이 범한 타락의 실상을 깨닫고 복귀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례로서의 종교행위를 계시 받아 실천해 왔던 것이 이상에서 언급한 내용들이다. 일본 유학시절 깨달은 타락론, 기독교 신령파들과 주고 받은 영향들, 평양 가정교회에서의 혈통복귀의례, 어린양잔치, 복귀된 혈통 전수를 위한 통일교회의 축복결혼식 등은 창교자가 오로지 인류 전체를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환시켜 지상천국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이 의례의 과정들은 모두 창교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례는 인류의 메시아이자 참부모에 의한 혈통복귀라는 본질적 가치 외에 세련된 의례로서의 구조적 측면이나 축복의 세계화 전략에 걸맞는 보편적 의례로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1996년 36만쌍 축복결혼식 이후 창교자는 혈통복귀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언급하며, 이미 축복결혼식에 참여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는 부부와 축복가정의 자녀들에게 성주식을 다시 하도록 지시 하였다. 이전까지 축복결혼식 때의 성주식과 삼일식 및 40일 성별 등등의 의례를 통해 혈통복귀의 과정이 종결되고 더 이상의 성주식이 필요 없다고 대부분의 신앙자들이 알고 있었지만, 창교자의 지시에 따라 통일교회의 모든 가정들은 통일교회 각 지역 교회에서 새로운 성주식에 동참하였다.
뿐만 아니라 축복의 세계화 전략과 함께 진행된 것이 전국적인 순결운동이었다. 특히 청소년 순결운동은 외적으로는 성(性)의 순결운동이었지만 내적으로는 전 세계 청소년을 상대로 한 혈통복귀의례였다. 언급한 바대로 혈통복귀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혈로 상징되는 성주를 마시는 것을 기본조건으로 한다. 순결한 성을 주장하는 순결운동도 성주를 마지지 않으면 혈통복귀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인류를 '하나님' 혈통의 자녀로 복귀시키는 것이 창교자의 사명이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성주의 요소를 종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통일교회는 순결켄디를[69] 고안해 내기에 이르렀다.[70] 실제로 한국의 경우 전국적으로 통일교회 신앙자들은 자신의 자녀들은 물론이고 학교 앞에서 순결캔디를 나누어주는 행사를 360만 쌍 축복의식의 일부로 진행 했고, 그 결과를 중앙에 보고하였다. 길거리 축복과 더불어 순결캔디 먹이기 운동이 통일교회의 정체성과 전통에 합당한 지에 대한 약간의 논란이 있었으나 창교자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통일교회 교리가 말하는 혈통복귀의 절대적 목적에 가려 논란은 지속되지 않았다.
결국 창교자는 2003년 8월에 ‘3대권 하나님 조국 입적을 위한 신성주 출발’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성주를 만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지금까지 성주는 탕감시대의 성주였지만, 이 시대는 뭐냐 하면 3대권, 3대는 제1이스라엘, 제2이스라엘, 제3이스라엘이에요. 3대권 하나님 조국의 입적을 위한 신성주 출발 선포 시작! 8월 20일은 제2이스라엘 미국 출감 18주년을 맞는 날로 출발 선언일로 정한다. 알겠어요? 3대권 하나님 조국의 입적을 위한 새로운 성주 출발 선언 시작(8월 20일은 제2이스라엘 미국 출감 18년째 맞는 날로 출발 선언함).
새로운 성주 전수식
1) 중생식
2) 부활식
3) 영생식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복중에서부터 깨끗이 성별해야 된다구요. 이제 자기가 부락에 돌아가서 아기 밴 아줌마가 있으면 중생식을 해 줘야 되고, 그다음에 두 살 내지 세 살을 넘어서 16세까지의 아이들이 있으면 부활식을 하는 거예요. 성주를 나눠 주는 거예요. 그럴 때는 부모님을 모셔 가지고 하는 거예요. 중생식도 부모님을 모시고, 부활식도 부모님을 모시고, 영생식 결혼식도 부모를 모시고 해야 돼요.
「부활식을 16세까지 합니까?」 16세까지! 「16세부터 영생식이라고 했습니다.」 16세 이후에는 결혼하니까 영생식! 「예. 16세부터요?」 부활식이 16세까지야. 그러니까 두 살 만 24개월부터, 24개월이 되면 말을 다 하거든. 조금 뜨게 되면 세 살을 중심삼고 말을 다 한다구요. 그걸 두고 말하는 거예요. 중생식․부활식, 부활식은 세 살 혹은 두 살 이상에서 16세까지예요. 그래서 그전에 태어났더라도 중생식․부활식․영생식을 다 거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혈통전환이라는 말이 결혼식으로써 사회적으로 달라지는 거예요. 어렸을 적부터 하는 거예요, 복중에서부터! 여러분이 부락에서 아기를 밴 여인을 보면 찾아가서, 부모를 모셔 놓고 이러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중생식과 부활식과 영생식, 축복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키울 때도 그렇게 키워야 된다구요. 우리 아기들은 하늘나라에 입적시킬 수 있는 아기로서 핏줄을 이미 맑혀 가지고, 더럽히지 않고 순결을 지켜서 순정․순결․순혈․순애 정신을 가지고 키워 가지고 영생식, 영원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가정으로 연결하는 거예요.”[71]
“그러니까 종족적 메시아, 국가 메시아니까 자기 성씨가 자기 지역이든 어디든 남아 있으면 전부 다 불을 붙여요. 오십 이상 된 아줌마라든가 이런 사람들에게는 관심 안 가져도 돼요. 오십 이상 된 사람들 집에 찾아가서 아들딸이 중고등학생, 열두 살 이상 되면 관리를 자기에게 맡기라고 해 가지고 교육해야 돼요. 그래 가지고 무슨 식이에요? 중생식, 부활식, 영생식!
집에 들어가서 부활식, 중생식 할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보고, 있으면 잡아끌어다가 부활식, 중생식을 하고 영생식 결혼까지도 책임지는 거예요. 그러니 조상이에요, 조상, 조상! 조상이라구요. 알겠어요? 조상이 뭐예요? 중생식, 그 다음에는?「부활식.」부활식, 그 다음에는?「영생식.」타락해 가지고 구약시대 신약시대 전부 다 갈라졌어요. 말 안 듣는 것을 한 코로 꿰 가지고 일방통행을 만들어야만 된다는 거 알아야 돼요. 그것이 성약시대의 입적한 주인의 패권이에요, 패권. 일등 되는 패권이에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4년 동안에 해야 될 일이 미혼남녀 4억3천만 쌍을 결혼시키는 것입니다. 각 나라, 알겠어요?「예.」한국이 해야 할 것은…. 한국 봉태!「예.」몇 백만이야?「청소년이요? (김봉태)」청소년하고 대학교까지 해서.「대학생들이 2백만 명 정도 됩니다.」아, 중고등학생은?「중고등학생은 8백만 명 정도 됩니다. (김봉태)」합하면 천만 명이 되누만. 천만이 되면 그런 나라가 몇 개예요? 43개국을 해야 할 텐데, 바쁘겠어요, 안 바쁘겠어요? 한국이 본때를 보여야 되겠다구요.”[72]
중생식은 (축복결혼식을 거친) 임산부의 태아의 혈통을 복중에서부터 복귀하는 의식이다. 태아의 산모가 성주를 마심으로써 복중 태아에서부터 사탄의 혈통을 씻어 내어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환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중생식을 통해 태어난 태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주를 다시 마시는 의식이 부활식이고, 영생식은 중생식과 부활식을 거친 자녀가 축복결혼식을 통해 마시는 성주가 영생식이라고 할 수 있다.[73] 그런데 창교자는 중생식과 부활식은 순결캔디로 가능하지만 영생식은 반드시 성주를 마셔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74]
창교자는 부활식, 중생식, 영생식의 대상으로 축복을 받은 통일교회 신앙자만이 아니라 길거리 축복이나 순결켄디를 통한 비통일교회인도 포함하고 있으며, 결국은 혈통복귀의례마저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75] 인류의 메시아요 참부모인 입장에서 통일교회 신앙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시키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드러나 있다.
의례의 관점에서 볼 때 부활식, 중생식, 영생식의 혈통복귀 과정의 구도는 통일교회 정체성을 유지하고 전수하기 위한 매우 효율적인 체계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복귀섭리 과정 즉, 특정 종교의 의례 수준을 넘어 보편적 가치의 참가정 운동 수단인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사회적 의례”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필자는 평가하고 싶다. 중생식, 부활식, 영생식(축복결혼식)은 봉헌식, 생일식, 성화식 등의 생애주기 의례와 함께 각 연령대의 신앙자들에게 혈통복귀의 가치를 교육하여 통일교회의 정체성 유지와 계승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통일교회는 축복결혼식 외에 혈통복귀를 위한 중생식, 부활식 등의 새로운 의례 개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6. 참가정과 축복가정의 혈통적 차이
창교자 성화 후 제기된 문제 중 하나가 창교자의 직계자녀인 참자녀와 축복받은 신앙자들의 혈통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다. 이러한 논쟁은 ‘참가정’과 ‘직계가정 혹은 참부모님가정’이라는 용어 선택의 논란을 포함하고 있다. 창교자 성화 후 한학자 여사 중심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제정한 ‘천일국헌법’에서 창교자와 그 직계가정을 ‘참가정’이 아닌 ‘참부모님가정’으로 명명하여 그 정의와 가치 그리고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으나, 창교자 직계가정 자녀의 차별되는 혈통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특히 창교자 성화 전까지 통일교회의 고유명사화 되어있던 ‘참가정, 참자녀’라는 명칭을 천일국헌법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창교자 및 한학자 여사 사후 창교자 직계자녀를 중심으로 한 후계체계[76] 대신 ‘참부모님가정’이 위원장이 되는 13인 천일국최고위원회의 집단지도체제로 통치조직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천일국헌법이 참부모 중 하나인 한학자에 의해 완성되었지만, 이것이 창교자의 의도와 얼마나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77]
창교자가 타락론을 깨달은 후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겪은 숱한 오해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체계화해 나왔던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혈통복귀를 통하지 않고는 사탄과의 단절은 물론 '하나님'의 잃어버린 에덴동산 복귀가 불가능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창교자는 1960년 어린양잔치를 통해 비로소 아담과 해와가 이루지 못했던 '하나님' 혈통의 가정, 즉 ‘참가정’을 이루었는데, 통일교회의 기본교리서인 『원리강론』을 비롯하여 창교자의 『말씀집』에 등장하는 참가정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3대 축복과 4위기대 완성을 통해 이루었을 바로 그 가정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창교자의 직계가정은 역사상 최초로 성립된 ‘참가정’을 의미하며,[78] 축복가정은 창교자인 참부모의 혈통에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되어 횡적으로 확대된 참가정인 것이다. 참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를 참자녀라 할 때, 축복가정의 자녀들도 역시 (잠정적인) 참자녀인 셈이다. 그러나 창교자는 자신의 직계 자녀의 핏줄이 일반 축복가정의 핏줄과 다르다고 언급하고 있다.[79]
7. 문현진과 문형진의 혈통복귀 인식 차이
참가정의 문현진과 문형진의 섭리인식 혹은 정체성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창교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혈통복귀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창교자 사후 문형진을 중심으로 했던 통일교회가 창교자의 정체성과 다른 종교로 변하게 된 원인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가. 문현진
문현진은 자신의 아버지인 창교자의 사명을 특정 종교나 교파 창설이 아니라 “참부모와 참가정의 실체적인 기반을 통해 인류를 하늘의 혈통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인류구원을 실현하는 것”이라고[80] 규정한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세워 이 땅에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 나왔다”고[81] 언급하면서, “아버지는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열쇠가 바로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가정, 즉 참가정의 건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인간 최초의 가정을 복귀하여 인류로 다시금 '하나님'의 품속에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60여년의 세월 동안 쉼 없이 일해 왔으며 자신의 사명은 아버지의 소망을 실현하는 것”임을[82] 분명히 하였다.
특이한 사실은 문현진은 아버지의 섭리적 인식과 같이 통일교회(종교) 이후 가정연합의 지향점이 초종교의 시대임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혈통으로 최초로 복귀된 창교자의 직계가정, 즉 참가정의 혈통적 가치를 통일교회의 교리적 차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시대적 인식이 초종교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으나 그가 양보할 수 없는 정체성은 “하나님,” “참가정”과 “혈통,” “지상천국”이라는 통일교회의 교리적 차원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문현진 자신은 '하나님'의 혈통이 복귀된 인류 최초의 참가정의 일원으로서 그 혈통의 가치는 절대적이며,[83] 참가정에 접붙여져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된 축복가정은 결국 참가정의 일원이며, 이것을 확대된 참가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현진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하나님,’ ‘참가정’과 ‘혈통,’ ‘지상천국’ 등의 키워드는 그가 비록 보편적 가치와 봉사를 통해 초종교적 평화이상세계를[84] 지향하고 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인 것이다.[85]
혈통복귀를 통한 지상천국 실현의 한 방안으로 창교자에 의해 실천된 소위 “길거리 축복”의 가치에 대해 창교자와 동일한 인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86] 인간조상이 상실한 '하나님' 혈통으로의 복귀는 '하나님'과 참부모의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그의 주장과 창교자의 이상 또한 일치하고 있다.
현재 한학자 여사 중심의 가정연합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문현진은 아버지의 이상(理想)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까지 축복결혼식과 같은 혈통복귀의례를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하나님->참부모->참가정->확대된 참가정(축복가정)’으로 이어지는 혈통복귀의 가치를 고수하며, 초종교적 가치인 봉사와 이상가정 실현을 통한 평화이상세계 실현운동을 “One Family Under God"의 이름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문현진에게 있어서도 참가정(창교자의 직계가정)이 절대적 가치로 보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혈통을 전 인류에게 전수해주기 위한 (어떤) 의례로서의 수단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본다. 추측컨대 그것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창교자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혈통복귀를 위한 전통이나 의례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87]
나. 문형진
2004년 이후 문형진의 존재가 통일교회인들에게 점차 알려지게 되었으나, 그의 통일교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자료는[88] 많지 않다. 그 후 2008년 4월 18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회장 취임사에서[89] 첫째, 자신이 이해하는 통일운동의 성격은 종교이며, 둘째, 자신은 참부모님을 찬양하고 억만 세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한 정성을 통해 목회를 할 것이고, 셋째, 통일교회의 모든 사안을 자신의 형인 문국진과 협력하고 창교자의 ‘윤허’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언급을 통해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이 발언의 진의는 얼마가지 않아 그가 새롭게 시도한 의례와 설교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문형진에 의해 새롭게 행해진 의례는 심령치유예배, 칠사부활 천복식 그리고 천복축제로 대표된다. 전 천복궁 목사 김갑용에 따르면 문형진은 2009년 7월 17일에 칠사부활 판단완성 참사랑의 계시를 받아, 아버지인 창교자를 육적인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대하게 되었고, 사죄의 마음으로 2009년 7월 29일부터 8월 5일까지 집무실에서 2만1천배 경배를 했으며, 2009년 9월부터 칠사부활 팔단완성의 ‘천복식’을 매일 새벽 기도회에서 실시했다고 한다. 천복식의 순서는 준비찬송,[90] 환영인사,[91] 통일원리세우기,[92] 성서와 원리훈독,[93] 영광내용 훈독,[94] 찬양, 성배기도,[95] 성주·성수 정화식,[96] 성수 전수식,[97] 성수식, 신앙고백,[98] 정화와 회개를 위한 통일원리 120배 경배,[99] 세계회장님 축도, 팔단완성 성초 전수식, 개인기도 및 폐회로 이루어져 있다.
천복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통일교회인의 신앙고백을 대표하는 ‘가정맹세’와는 별도의 ‘영광내용훈독’과 ‘신앙고백’이다. ‘영광내용훈독문’에서 4대 성인의 사명을 최종 완성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실체 대상이자 만왕의 왕이 바로 참부모임을 고백하고 있다. 참부모의 절대적 가치를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은 통일교회 신앙자로서의 기본적인 종교행위이지만, 4대 성인의 사명 실패와 이들의 가치를 비하하는 신앙고백은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종교적 욕망의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비록 문형진이 타종교 지도자와의 긴밀한 교류에 힘을 썼고, 4대 성인의 상(像)이나 초상화를 천복궁에 ‘모시기’까지 했지만, 문형진의 태도는 오히려 종교 간의 갈등을 유발시켜 종교 통합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며 실천했던 창교자의 본의를 흐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있다. 신앙고백 중 ‘참부모님 선서’에 등장하는 ‘부활’의 의미는 통일원리의 부활의 의미보다 기독교 예수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난 그 ‘부활’의 의미와 유사하여 통일교회 전통과는 거리가 느껴진다.
필자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문형진이 천복식에 성주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혈통복귀를 위한 축복결혼식이나 창교자의 특별한 지시로 행해진 성주식을 제외하고 통일교회 의례에서 성주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천복식에서 하나님의 혈통을 상징하며 절대적 가치로 신봉되는 성주를 일상 의례에 사용함으로써 천복식을 통일교회의 역사적이고 공식적인 의례로 편입시키려 했던 문형진의 의도가 엿보인다. 창교자가 천복식에 직접 참여하여 ‘8단완성성초’나 ‘천복성염’ 등을 전수해 주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통해 천복식은 의례로서의 권위와 정통성을 더 인정받게 되었을 것이다.
심령치유예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북을 치며 문형진이 계시로 만든 ‘참부모님 억만세’ 찬송을 반복하면서 ‘진동과 파워’를 참부모에게 보내는 의식(儀式)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부모님 억만세’ 찬송을 지속하는 이유는 “참부모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자 우주의 움직임이며, 우주가 나아가는 목적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향하는 모든 움직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100] 따라서 “참부모는 우주 진동과 파워의 지향성이며 진동과 파워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에 참부모에 집중하여 그 이름을 반복함으로써 진동과 파워과 일체가 되며, 결국 참부모와 일체를 이룰 수 있고, 이러한 과정에서 성령이 치유되는 체험을 하게 되어 천운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령치유예배는 문형진의 천복궁을 제외하고 각 지역 통일교회에서는 거의 행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일부 참석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통일교회의 전통과 보통 통일교회인들의 정서에 비추어 문형진의 심령치유예배는 수용되기 어려운 의례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창교자 성화 직후 문형진이 통일교회 현장을 떠나 도미(渡美)함과 동시에 심령치유예배도 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제1회 천복축제는 2011년 음력 1월 1일, 제44회 ‘참하나님의 날’을 시작으로 창교자의 탄신일인 음력 1월 6일까지, 6일 동안 진행되었고, 제2회 천복축제는 2012년 제1회와 같은 기간에 각각 개최되었다. 그러나 창교자의 성화와 통일교회의 중심에서 문형진이 멀어짐에 따라 천복축제도 더 이상 개최되지 않았다. 천복축제는 문형진이 추구했던 종교적 정체성이 여실히 드러난 행사였는데, 불교, 유교, 천주교 인사가 동참한 천복식에서 창교자는 천복성염을 전수해 주기도 하였다. 특히 천복등 점등의식(點燈儀式)은 지금까지 통일교회 전통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특이하게도 2012년 양력 1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출발해 시청 앞을 거쳐 숭례문까지 1.8㎞ 구간에서 통일교회 신앙자들이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천복축제는 문형진이 심령치유예배와 천복식 등의 의례를 새롭게 도입하여 나름대로 자신감을 얻게 됨으로써 기획한 행사로 보인다. 비록 두 번의 행사로 사라졌지만 통일교회의 의례를 축제의 형태로 대중화시키고자 했던 긍정적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앞의 두 의례와 마찬가지로 문형진이 주도한 의례는 통일교회의 전통적 정서와 이질적인 면이 강해 자연스럽게 통일교회 문화로 수용되기는 쉽지 않았다. 이질적인 종교적 정서에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종교현상을 대하는 종교인의 본능적 태도이다. 문형진이 교명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통일교회’로 변경했을 때도 신앙자들의 태도는 비슷했다. 의례나 교명은 종교적 정체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신화적 사건이나 절차 없이 변할 때 반드시 혼란이 야기된다. 종교적 전통 안에서의 ‘해석’을 통한 합리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문형진이 주도한 교명변경이나 새로운 의례 시도에 창교자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나,[101] 당시 창교자의 카리스마적 권위로 통일교회 전통에 역행하는 문형진의 종교적 실험이 합리화되기에는 이미 어려운 상황이었다. 창교자의 카리스마는 이미 너무나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천복축제의 거리 퍼레이드는 통일교회의 종교적 전통을 시골 난전(亂廛)의 좌판(坐板) 수준으로 전락시켜버렸다. 무표정한 참석자들(특히 간부들)의 얼굴에서 신앙적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을 찾아 볼 수 없었고, 무수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창교자가 유지해 온 통일교회의 전통이 서울시민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던 점에 많은 신앙자들이 분노하였을 것이다.
문형진에 의해 고안된 몇 가지 의례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비록 그가 의례 속에서 통일교회의 정체성을 말하고자 했지만, 정작 창교자와 신앙자들이 60여 년간 쌓아올린 전통들을 자신의 제한된 종교지식과 체험에 근거하여 왜곡함으로써, 오히려 통일교회의 정체성에 혼돈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문형진은 자신의 주관적인 체험과 지식에 근거하여 통일교회의 전통적인 상징과 의례들을 때로는 불교식으로, 때로는 천주교식으로, 때로는 개신교식으로 바꿔보는 실험을 했는데, 결국 문형진은 이러한 태도를 통해 종교의례, 특히 신종교 의례가 가지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통일교회의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창교자의 정체성과도 다르게 통일교회를 사유화 하는 것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또한 그가 외관상 여러 종교들의 예배 방식이나 문화들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해당 종교에 대한 결례이며, 통일교회 세계회장으로서 주체성이 결여된 태도였다. 결국 이질적인 의례에서 파악되는 문형진의 “통일교회”는 창교자나 축복가정들이 수난의 역사를 극복하고 이끌어 온 “통일교회”와 다른 것이며,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다른 종교와의 동질화나 일치가 아닌 오히려 배타적인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혈통복귀의례에 대한 문형진의 인식을 고찰해 볼 때, 그는 자신이 참부모의 직계혈통자녀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메시아이자 참부모인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혈통을 직접 이어받은 참자녀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참부모 앞에 죄인이며, 걸레와 같은 입장”이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한다.[102] 이러한 인식이 비록 하나님과 참부모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창교자의 인식과는[103]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형진은 문현진의 GPF 활동이 통일교회 정체성과 무관한 활동임을 언급하며, 문현진의 GPF에 대해 “초종교운동이나 봉사활동을 통해 평화이상세계 건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통일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젊은 통일교회인들은 통일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사회에 도전하는 활동보다는 중립적인 방법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104] 비판하고 있는데, 이 비판은 통일교회의 정체성을 혈통복귀를 통하여 참가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지상천국 건설로 규정하는 문현진의 인식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형진이 인식하는 통일교회의 정체성은 혈통복귀나 지상천국 혹은 참가정도 아닌 ‘참부모’ 자신이며, 아버지를 위한 최고의 효도는 (신과 같은) 아버지에게 절대복종하여 그를 모시고 노예의 입장에서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105]이다. '하나님' 아래 한 가족 이상을 실현하여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여기는[106] 문현진의 인식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8. 참어머니의 혈통복귀 인식
창교자 성화 전후 일어났던 통일교회 후계자 논쟁은 창교자의 직계자녀가 아니라 참어머니가 통일교회를 통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동안 창교자 가정에서 일어난 여러 비극적 사건, 각종 소송 등으로 통일교회 조직은 엄청난 피해를 겪었다. 그 와중에도 참어머니의 신격화 작업은 창교자 성화 전부터 착실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문형진과 참어머니의 관계가 악화되어 결국 문형진이 어머니와 교회조직을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이유도 참어머니의 신격화 작업과 어머니를 중심한 통일교회 통치 체계에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참어머니의 신격화 작업의 핵심은 선문대학교 신학과의 일부 교수들이 ‘참어머니메시아론’과 ‘참어머니하나님론’ 그리고 ‘독생녀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이론에 대해 심층적인 검증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어머니 신격화 작업의 결과가 전통적인 혈통복귀의례에 미칠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한다. 창교자 성화 직전의 축복결혼식을 참부모가 생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형진 부부가 진행했던 것과는 달리 창교자 성화와 문형진의 도미 후에는 참어머니가 홀로 축복식을 주도했다는 점, 그리고 참아버지의 혈통은 타락한 혈통이며 오로지 자신의 혈통이 순혈이며[107] 자신은 하나님이라고[108] 참어머니가 여러 차례 언급했다는 점으로 볼 때 참어머니를 중심한 가정연합의 혈통복귀 인식과 의례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창교자가 생전에 꿈꾸었던 지상천국은 창교자의 직계가정이 ‘황족’이 되어 통일교회 조직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통치하는 세계였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참어머니가 공표한 천일국헌법에서 규정된 통치체계는 참부모가 신격화되어 숭배되는 외형적 구조 아래에 13인 최고위원회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집단지도체제이다. 다시 말해 어머니의 천일국과 아버지의 천일국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특히 천일국최고위원회의 위원장은 참부모에 의해 임명되는 참부모가정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명시해 놓고 있으나, 참부모 유고시 참부모의 권한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천일국최고위원회로 이양되는데, 위원장의 의결권은 다른 위원들과 동일하여,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위원의 3/4이상 찬성으로도 모든 사안은 결정될 수 있다. 창교자가 성화했고, 참어머니가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창교자가 꿈꾸었던 ‘황족’의 천일국 통치는 결국 13인 최고위원회에 의한 통치로 전락될 가능성이 크게 되었다. 이러한 통치 구조는 창교자 성화 후 통일교회에서 실현되어야 할 종교 민주화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일지도 모르지만, 통일교회 조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관료화된 종교전문가 집단이 통일교회의 정체성 및 전통과 정반대로 통일교회의 진로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109]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일국헌법은 혈통복귀의례인 축복결혼을 참부모만이 주관할 수 있으나 그 권한과 범위를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법률 해설은 위임받을 수 있는 자격을 창교자의 “말씀”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있으나,[110] 창교자의 말씀 간의 다양한 해석에 따라 천일국헌법의 법률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해 볼 때 장차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결국 축복결혼의 권한에 대한 규정이 천일국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이 규정에 대한 개정과 해석의 모든 권한이 천일국최고위원회에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축복결혼의 권한이 창교자의 의도나 통일교회 전통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전개될 가정연합의 혈통복귀의례의 변화에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창교자 직계가정인 참가정의 가치를 비하하는 통일교회 원로들, 특히 참어머니의 발언들이 포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교회의 혈통복귀의례와 정체성이 참어머니 이후 창교자 제자 그룹들에 의해 급격히 변질될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9. 나가는 말
현재 통일교회는 강력한 영적 능력의 카리스마를 앞세워 혈통복귀의례라는 독특한 정체성으로 통일교회를 이끌어 온 창교자의 제1세대가 마무리되고, 자녀시대의 제2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통일교회사에서 보여 준 창교자의 카리스마(특히 혈통복귀와 관련하여)는 통일교회 신화 형성의 뿌리였고, 교리와 의례를 이끌어 왔던 원동력이었다. 신화와 같은 이야기로 하늘의 계시를 받은 일, 평양에서 실천했던 혈통복귀행사, 『원리원본』의 탈고, 수차례의 옥고, 특히 기성 기독교계와 사회로부터 사이비, 이단, 사교, 피가름집단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재림주, 메시아, 참부모, 하나님의 실체 등으로 스스로를 선포하며 통일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창교자의 이상이 있었다. 그리고 종교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언론, 산업 등 현실세계 전반에 걸쳐 본인은 물론 수많은 신앙자들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루고자 했던 이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전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시켜 하나님아래 한 가족 지상천국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창교자가 각고의 노력으로 이끌어 온 통일교회의 모든 운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위기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창교자의 정체성이 변질되어 결국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위기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교회 창교자의 카리스마는 성화 후 일상화를[111] 넘어 소멸의 단계로 가고 있으며, 비록 ‘참어머니메시아론’이나 ‘참어머니하나님론,’ ‘독생녀론’과 같은 새로운 교리로 참어머니가 스스로 ‘하나님의 부인’이나 ‘독생녀,’ ‘여왕’ 등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지만, 창교자 카리스마의 그림자와도 같았던 참어머니의 카리스마도 똑같이 소멸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본 논문에서의 논지대로) 1) 창교자의 카리스마의 원동력은 바로 그의 정체성 차체라고 할 수 있는 혈통복귀와 관련한 신화, 의례, 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창교자 성화와 동시에 외형적인 모양만을 유지한 채 그 본질적 가치가 왜곡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참부모의 한 분인 참어머니와 통일교회 상속자 문형진이 있다는 사실, 2) 창교자의 정체성과 권위가 통일교회 전통 안에서 정상적인 과정으로 전수되지 못했다는 사실, 3) 창교자 성화 후 참어머니가 통일교회 통치를 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 4) 통일교회의 직업적 종교전문가 그룹이 의도적으로 창교자의 정체성을 지우고, 참어머니를 신격화시키고 있으며, 13인의 천일국위원회에 의한 독재적 집단지도체제를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다. 결국 창교자의 카리스마는 완전히 소멸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혈통복귀원리를 통해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시켜 '하나님' 아래 한 가족 이상이 실현된 황족권 실현을 꿈꾸었던 창교자의 이상은 변질 내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참어머니와 일부 직업적 종교전문가 그룹에 의해 변질된 통일교회 정체성을 일반 축복가정들은 서서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선택은 통일교회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창교자로 부터 혈통을 전수 받아 참가정운동에 동참함으로써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 입교했던 대다수 축복가정들은 자신들과 자녀들이 마주하게 될 (천일국헌법 아래의) 새로운 정체성에 심리적인 불편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구나 천일국 실현과 함께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신앙적 보상(완성된 인간과 가정으로서의 자각과 인정)이 사후(死後) 천국행(天國行)으로 교리화되고, 주체적으로 책임분담을 수행하는 천일국 주인이 아니라 종교적 의무만을 강요당하고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신약성도 차원으로 축복가정의 가치가 전락된다면 그들은 감당할 수없는 신앙적 스트레스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본능적으로 (통일교회) 재활성화운동(revitalization movement)에[112] 동참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재활성화운동의 에너지가 조금씩 축적되어 폭발의 임계점으로 가는 과정으로 보이고 임계점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폭발한다.
그 때가 되면 신앙자들의 통일교회 이탈은 확대되고 조직화되어 통일교회 조직의 건전성은 급속히 악화될 것이다. 조직 건전성의 악화에 이어 통일교회가 완전한 몰락으로 이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필연적으로 다양한 차원의 재활성화를 시도하는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축복가정 그룹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엄밀히 말해 종교적 차원의 구원이 필요 없는 천일국 주인으로서의 주체적인 자격과 책임분담, 삶의 목표와 방법을 축복가정의 본심 깊이 심어 준 존재가 다름 아닌 창교자였기 때문에 재활성화운동은 필연적이다.
현재 창교자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창의적으로 확대하려는 문현진의 운동은 필자가 축복가정에 의한 재활성화운동 이후를 낙관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그가 자신의 혈통적 가치를 축복가정이나 혹은 다른 사람들(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 간에)과 비교하여 차별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 차별은 계급적이거나 이기적 목적을 위한 차별이라기보다는 창교자가 꿈꾸었던 “One Family Under God"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책임분담으로 이해할 수 있다.[113] 또한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되었다고 주장하는 참가정 집단의 장자의 입장에 있는 문현진은 재활성화 이후 성공적인 통일운동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며, 아래의 언급으로 본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 참부모에 의해 전수된 혈통의 가치를 유지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합리화된 의례(축복결혼식)를 개발해야 한다. 이 의례는 양보할 수 없는 종교적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담보하여 사회의례로 발전시켜야 전 세계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혈통을 상속받을 수 있으며 천일국이 완성된다.
2) 재활성화 이후 문현진을 중심한 통일운동 조직은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라, 각 개별 축복가정과 지역의 축복가정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독려하고, 후원하는 조직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천일국 시대의 섭리적 현실을 외면한 채 축복가정들을 통제하고 있는 가정연합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재활성화의 에너지는 곧 소멸되고 말 것이다.
3) 문현진의 통일운동은 참부모로부터 전수받은 혈통을 절대적 가치로 유지하되 보편적 가치와 상충하는 종파적 정체성을 과감히 포기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천일국 주인으로서 유지되어야 할 전통과 정체성은 ‘가정맹세’와 양심에 기초하여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책임분담을 통해 축복가정 스스로가 혈통과 가치를 유지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4) 문현진의 통일운동은 운동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One Family Under God"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인 정체성과 초종교적인 정체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주로 GPF의 초종교적 활동에서 상당한 실적을 거둔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과 ‘혈통,’ ‘가정’이 함의하는 최소한의 종교적 요소에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 종교적, 초종교적 정체성을 넘나들 수 있는 축복가정을 위한 조직과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복귀시키기 위한 초종교 조직을 통해 창교자(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종교적인 사명과 초종교적인 사명을 다 해야 한다.
5) 문현진의 통일운동 조직이 경계해야 할 점은 현재 가정연합이 재활성화 대상으로 전락한 전철을 다시 밟지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창교자의 사명과 이상 실현을 절대화한 것이 아니라 창교자를 신격화하였고, 직업적 종교전문가들을 위한 관료주의에 빠졌으며, 건전한 재정 운영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약점과 심리를 이용하여 신앙자들로 하여금 헌금을 착취해 왔던 죄악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1] 문선명 선생에 의해 전개되었던 종교적, 초종교적 운동 등을 위해 조직한 단체의 이름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통일교회’ 등으로 변경된 바 있고 현재는 다시 ‘세계평화가정연합’이 되었으나, 이 논문에서는 편의상 ‘통일교회’라고 한다.
[2] Anthony F. C. Wallace, Religion An Anthropological View (New York, Random House, 1966), pp.102-104.
[3] "종교가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의례가 종교를 구성한다. 대부분의 종교적 행위와 의례의 경우에서 의례는 단순히 종교의 일부가 아니라 종교 그 자체이다. 종교는 다시 말해 합당한 의례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적 믿음은 의례의 효과와 가치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신비적인 신학을 별개로 할 때, 신학은 의례가 행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Raglan, The original of Religion. London (Watts, 1949) p. 47. 안토니월러스, 김종석 역, 『종교인류학』(도서출판 아우내, 2011), 119-120쪽 재인용.
[4] 본명은 문용명(文龍明)으로 부친 문경유, 모친 김경계의 8남매 가운데 차남으로 1920년 음력 1월 6일에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에서 태어났다. 통일교회 내에서는 ‘재림메시아’, ‘구세주’, ‘메시아’, ‘평화의 왕’, ‘참부모’ 등으로 불리고 있으나, 논문에서는 학문적 객관성을 위해 ‘창교자, 선생, 참부모, 참아버지’ 등으로 표기하였고, 그의 아내 한학자 여사는 통일교회에서 사용하는 ‘참어머니, 여사’ 등으로 표기하였다.
[5]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통일교회 발자취Ⅰ (서울: 성화출판사, 2006), 20쪽.
[6] 문선명,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서울: 김영사, 2009), 91-92쪽.
[7]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통일교회 발자취Ⅰ, 22-24쪽.;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참부모님 생애노정 1 (서울: 성화출판사, 1999), 199-210쪽.
[8] 서기 1995년 8월 12일 김성도의 장손 정수원의 증언. “① 죄의 뿌리는 선악과라는 과일을 따먹은 것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남녀관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났다. 즉 음란이 타락의 동기가 되었다. ②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돌아기시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한다. ③ 하나님[께서] 2대 슬픔을 갖고 계시는데 그 첫째가 아담이 타락하는 순간을 아시면서도 간섭하지 못하시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슬픔, 둘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에 돌아가지 않고 살아서 이루셔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장면을 보시는 슬픔이었다. ④ 재림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몸을 통해 오신다. ⑤ 재림주님은 한국으로 오시며 만인이 한국을 신앙의 종주국으로 알고 찾아오게 된다.” 최중현,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1, 37쪽. 재인용.
[9] 김백문, 성신신학』(서울: 평민사, 1954), 128-129쪽. 김백문의 이러한 주장은 그의 이력을 통해 백남주, 김성도 등의 영향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54년 11월에 발간한 『성신신학』에서 김백문은 인간 조상의 첫 타락인 원죄는 해와와 뱀과의 간통문제에서 발원한 범죄임을 분명히 언급하면서 성신으로 “인간의 육적인 정욕성(情慾性)을 성화(聖化)하여 창조 때의 본성본질로 복귀하는 것이 구원을 위한 최후의 과제”라고 주장하였다.; 김백문, 성신신학, 363쪽. 그리고 선악과가 인간의 혈통에 끼친 죄악성과 유전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에덴동산에서 뱀이 해와에게 먹인 선악과는 해와의 육체적 처녀정조(處女貞操)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해와가 뱀에게 정조를 빼앗긴 결과, 해와에 의해 번식된 인류는 뱀의 혈통을 받은 뱀의 자손이므로 원죄복귀를 위해서는 혈통복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10] 성혼 이후에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출발하였으나, 1945년 첫아들(문성진, 1946. 음력 3.1)이 태어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쌀을 구하러 가던 중 “38선을 넘어가라! 북쪽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으라!”는 계시를 받고 평양(45.6.6)으로 간 후 헤어져 지내다가 1952년 11월에 아들을 동반한 최선길과 부산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1954년 5월 1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는 등 선교활동에 주력하면서 서대문형무소를 나온 후에 최선길이 가족과 함께 이혼을 요구하자 헤어지게 되었다. 문선명,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93-137쪽.; 155쪽.;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統一敎會 實錄 (서울: 성화출판사, 2007).
[11] 정득은은 인간의 타락으로 더러운 피가 섞여 흐르고 있는 것을 깨끗한 성스러운 성신의 피로 정화하는 방법인 ‘영체교환(靈體交換)’을 언론에 공개했던 인물이다. 이는 육체적 성교에 의한 방법이며, 주는 편은 남녀를 불구하고 상위(上位)로 하고 받는 편은 하위(下位)로 하였다. 권만익, 「혼음을 신앙화 한 사람들?, 《實話》(1957년 6월호), 81-82쪽.
[12] 박씨 노파의 이름이 박을룡, 을노, 월영 등으로 알려져 있었고, 당시 기독교계에서 미친 노파로 생각했다고 한다. 특별한 집단을 이루지도 않아서 공식적인 기록이 거의 없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참부모님 생애노정 2 (서울: 성화출판사, 1999), 97-114쪽.; 그러나 2009년에 최중현이 만난 박씨 노파의 외손녀의 말에 의하면 1892년 8월 18일 생인 박씨 노파의 본명은 박태영이었고, 10남매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1949년 월남한 이후에도 박태영의 초능력은 지속되었는데, 1961년 서울 가화동에서 별세하였다고 한다. 김종석,『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 제3권』(서울: 청년사, 2009), 332쪽.
[13] 문선명先生말씀編纂委員會, 文鮮明先生 말씀選集 23권 (서울: 성화사, 1986), 253-254쪽.; 287-288쪽.
[14] 권만익, 《實話》(1957년 6월호), 77쪽.
[15] 권만익, 《實話》(1957년 6월호), 75-76쪽.; 이후 정득은은 1946년 음력 11월 월남해서 포교하여 敎母가 되라는 계시를 받고 남하하여 서울 삼각산에 기도원을 만들어 (전도관 창교자) 박태선, (통일교회 원로 목사) 이태윤(이요한) 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혈통복귀 행사를 이어갔다. 통일교회사에서 그녀의 이름이 비중 있게 언급되지 않는 것은 선생의 입장에서 볼 때 평양에서 선생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명과는 달리 정득은이 남한에서 독자적인 사명자의 길을 갔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16] 세계기독교통일신협회,『『신앙수기 제1집 증언』(서울: 성화사, 1982)』, 82쪽.; 107-108쪽.
[17] 세계기독교통일신협회,『『신앙수기 제1집 증언』(서울: 성화사, 1982)』, 84쪽.
[18] 김종석, 한국 메시아운동사 연구 제3권 (서울: 청년사, 2009), 250쪽.
[19] “천사장이 해와를 보니 아름다우매 과연 하나님이 사랑할만한 존재이었다. 이 해와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매 그 사랑을 빼앗기 위하여 해와의 사랑의 실체인 貞操를 所有할 工作을 始作하니 天使長 누시엘은 하나님이 許諾치 않는 行動을 始作하매 그 자체의 마음에는 恐怖心과 原理的 가책이 있었다. 恐怖心을 가지고 해와의 사랑을 所有하려 하기 위하여서 해와의 貞操를 蹂躪하고 보니 누시엘의 마음에 있는 恐怖心과 同時에 天使長의 智慧가 해와와 사랑의 一體를 이루고 나니 해와는 天使長의 智慧 所有者가 되는 同時에 恐怖의 마음을 刺戟받았다. 그리고 보니 해와는 未成熟期에 있었지만 自體의 智慧가 밝아짐을 通하여보니 해와의 자기의 男便은 아담이라 하난 것을 明白히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아지 못하는 아담이 自己의 男便이므로 다시금 男便대로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와는 아담한테 사랑을 强要하게된다. 그 强要하는 해와의 知覺을 避치 못하고 그의 要求에 應하니 벌써 해와의 恐怖心 아담에게도 生起게 되어 하나님의 法理脫線함을 알게 되니 아담 해와는 나무 아래에 숨게 되는 行動이 始作되여 無花果나무 잎으로 犯行한 部分을 가리우게 되었다.” 문선명, 原理原本 (미발간도서), p.25-26. 선생이 직접 쓴 진본(眞本. 1951.5.11.-1952.5.10.)을 제자였던 김원필이 1953년 9월 전후에 노트에 필사하였음. 페이지번호는 필사본에 따른 것이다.
[20] 통일교회의 성적 모티프가 중심이 된 ‘혈통복귀’ 교리는 통일교회를 간음(姦淫) 및 혼음(混淫) 집단이라 부르는 단초가 되었고, 이후 6마리아에 대한 논란도 이때의 일이다. 아마도 통일교회의 상식을 넘는 신령적인 분위기와 여성들의 많은 집회참석 그리고 창교자를 대하는 많은 여자 신도들의 신앙적 열기도 이런 논란의 한 이유였을 것이다.
[21] 창교자는 자신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과 인류의 소망이 실현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문선명先生말씀編纂委員會, 文鮮明先生 말씀選集 8권 (서울: 성화사, 1985), 292쪽.
[22] 김백문, 성신신학』(서울: 평민사, 1954), 128-129쪽.; “ … 人類에 根本的 罪惡性問題에 解決에서 創造太初的 善質人格으로 復歸케하시는 目的인만큼 聖神位의 役事는 그같은 復歸歷史에 最後歷史에 最後的 問題가 時代的歷史性이 될것이매 이제 復歸問題를 두고볼 때 여기에는 自然的으로 人類墮落에 根本的問題가 問題될수박레업는 것이다. 그래서 그問題를 指摘하고본다면 「아담」의 墮落內容이란 즉 「해와」와의 부부간 性交問題를두고서 「해와」의 「뱀」과에 姦通問題로서 發源한 犯罪였는데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聖神이 最後的으로 聖化케하실바 救援에 再創造的人格問題는 이제 以上論한 墮落에 根本되는 男女間性的交際를 두고 肉性에 情慾性을 聖化케 할, 즉 人間에 모든 情慾에 最高根質問題가 되는 肉的 性感을 두고서 하나님의 太初創造하실 때에 가졌든 그 本性本質로 聖化되여 復歸케 하실 바가 그리스도인의 最後聖化문제요 聖神의 歷史的 使役性이 될 것임에는 必然的으로 이 問題를 宗敎的 信仰運動에 敎理的 條件과도 같이 信仰에 全幅的 主力時期가 이를 것임으로 이를 둔 割禮와 洗禮 같은 宗敎儀式的 問題가 發端하게 되겠다는 것이 本論主題이다.”
[23] 嚴攸燮 編, 生의 原理, 13쪽. “사랑이 變하여 사람 卽 慾心으로 變하였다. 언제나 猜忌와 嫉妬와 慾心은 많은生命을 죽이며 自己도 結局은 死亡에 이르는 것이다. 其時 天使 장차 魔鬼「루스베리」라함이 있었으니 嫉妬者요 猜忌者다. 아담이 하나님의 恩惠로서 昌盛하여 많은 福을누릴때 이를 猜忌하며 넘으트리고저 엿보기 始作하였던것이다. 全能者에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喜樂의 날을 보내는 것을 볼때 貪을 내어 機會를 탈 괴휼을 꾸미였든 것이니 이는 곳 헤와를 蹂躪하여 不義의 씨가 백기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인류를 모함에 쓸어넣은 원인이다.”; 嚴攸燮 編, 生의 原理, 17-18. “萬物을 構成하여 노시고 一見하니 아름다웠다. 後日에 이삭의 씨로 말미암아 繁殖함과같이 아담의 씨로 繁殖하려 하셨던 것을 妬忌者의 씨가 먼저 빡였다. 神은 아담에게 이것을 금하였다. 어(이)는 長成期까지에 期限을 두고. 그러나 이 비밀을 妬忌者가알아 機會를 엿보았다. 神은 이것을 알으셨다. 하나 헤와는 슬기로워 이것을 물이칠 줄 알으셨다. 그런데 저는 넘어갔다 하야 姦淫罪를 범하였다.”
[24] 평양에서 실천한 혈통복귀행사가 부산 피난시절에도 있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필자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25] 여기에다 선생의 부인이었던 최선길의 태도도 6.25전쟁 직후 선생이 극복해야 할 어려움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녀는 구세의 사명을 준비하고 있었던 남편과 신령한 사람들의 종교적 행위들을 자신의 가정을 파탄 내는 광신적인 행동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신앙수기 제1집 증언』(서울: 성화사, 1982), 263쪽.; 『신앙수기 제2집 증언』(서울: 성화사, 1984), 329쪽.
[26]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세계기독교’는 동서고금에 걸친 기독교 전부를 의미하고, ‘통일’은 앞으로 나아갈 목적성, 그리고 ‘신령’은 부자관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영육계의 조화를 암시한 표현이었다. 즉 ‘하나님 중심의 영계를 배경으로 한다’는 뜻이다. 특히 통일은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나의 이상이었다. 통일은 연합이 아니다. … 내가 바란 것은 교파 없는 교회였다. 문선명,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138-139쪽.
[27] 『신앙수기 제1집 증언』(서울: 성화사, 1982), 122-123쪽.; 1955년 당시 집회에 모인 신앙자들은 150~ 200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중앙수련원,『참부모님의 생애노정』, 247-250쪽.
[28] 이에 대해서는 Choe, Joong-Hyun. "Messianic Groups and the Korean War: Two Cases in Contrast," a Ph. D. dissertation, Syracuse University, December 1993.을 필독하라.
[29] 1957년 1월 8일 세 명의 공증 하에 협의 이혼하였다.
[30] 통일교회의 교세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1955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통일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이화여자대 학교에서는 55년 3월에 교수 5명, 졸업반 학생 5명을 포함한 14명을 제적 처분하였으며, 연세대학교에서는 교수 한 명과 학생 2명을 제적 처분하였다. 신앙의 자유가 엄연히 보장되는 국가 안에서 기독교 전통신앙에 위배되는 이단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였다.
[31] 이대 연대 사건에 이어 1955년 7월 4일에 형무소 연행되어 약 3개월 후 선고공판을 통해 무죄로 석방된 사건이었다.
[32] 이상에서의 사태와 더불어 한 가지 주목할 사건은 최선길과 협의 이혼 전 선생은 김명희 사이에 희진을 출산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선생의 섭리적인 해석 외에 혈통복귀의례의 흔적은 파악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통일교회사의 설명은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장을 통한 하늘의 지시에 절대 순종해 약혼자 요셉을 속이고 제사장 사가랴로부터 예수님을 수태해 출산했다. 천사장이 속여서 빼앗아간 하늘의 혈통을 복귀해 원죄 없는 본연의 아담을 찾아오는 섭리였다. 그리고 그 가족이 당시 섭리적인 아담 국가 이스라엘 앞에 해와 국가 입장인 애급으로 피신해 탕감노정을 거쳐 돌아 왔다.”,『천일국 창국섭리사』(미발간자료), 104쪽.
[33]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참부모님 생애노정 4 (서울: 성화출판사, 2000), 26-29쪽.
[34] 한학자는 1943년 음력 1월 6일, 평안북도 안주군에서 부친 한승운과 모친 홍순애 슬하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자랐으며, 한국전쟁 때 남하하여 제주도, 춘천, 서울 등지에서 모친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통일교회 입교 당시에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간호전문학교(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35] 창교자가 신부를 선택한 두 가지 조건은 첫째 “어떠한 핏줄을 타고 났느냐 하는 것이다. 사탄세계에서 참소 받을 수 있는 핏줄의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느냐, 아니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핏줄적 내연을 가지고 태어났느냐가 중요하다.” 즉 구약, 신약, 성약을 대표하는 3대가 정성을 들인 집안의 후손에서 나와야 했다. 둘째는 해와가 16세에 타락했기 때문에 18세 또는 20세를 넘으면 안 되었다. “타락권으로 보면 십대들이 문제인데 한국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나이가 어릴수록 지상 여자 세계의 순결 기반에 가깝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양의 신부는 “20년 동안에 열두 아들딸을 낳아야 할 것”이기에 될 수 있는 대로 어린 신부가 좋다고 생각하였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참부모님 생애노정 4, 20쪽.; 25쪽.; 26쪽.
[36] “1953년부터 1960년까지의 기간은 상상할 수 없는 박해의 시기였습니다. 그 기간에는 적어도 36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반대했고, 3개 이상의 교파와 국가 정권이 박해를 가해 왔습니다. … 성혼식장에 나가기 전날까지 경찰서에 불려가서 조서를 꾸미며 경찰과 싸워야 했습니다 … 1960년 4월이 환난과 핍박의 최고봉이었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가정과 이상천국 Ⅰ (서울: 성화출판사, 1997), 754-755쪽.
[37]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통일교회 발자취Ⅰ, 62-65쪽.
[38] “아담 해와가 완성하여 하나님의 축복 하에 결혼을 하고 첫사랑을 맺는 그 자리는 곧 하나님이 실체의 신부를 맞는 자리인 것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결혼, 84쪽.
[39]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傳統 (서울: 성화출판사, 1997).
[40]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統一敎會 實錄, 34-37쪽.
[41] 통일교회의 출발을 같이 한 신화의 주역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마지막까지 통일교회의 정체성을 지지하고 조직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가정과 그렇지 못하고 일찍이 탈퇴한 가정들도 있다.
[42] 황필호는 통일교회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을 언급하며 “예를 들어 객관적인 입장에서 통일교회 제의의 상징기능을 종교학적으로 분석한 정진홍도 통일교회에 대한 비난의 초점이 되었던 피가름이나 혼음에 대하여 ‘적어도 어느 단계까지는-예를 들어 3자녀 성혼식이나 33쌍 성혼식까지는-그러한 의례적 성교가 행해졌으니라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이것이 통일교회를 혹세무민의 사이비 종교로 낙인 짝을 수 있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성의 상징이 종교제의 속에서 종교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하는 사실과 그러한 비난의 실제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진홍, 「종교제의의 상징기능: 통일교회 제의를 중심으로」, 『종교학 서설』, 전망사, 1980, 180쪽.” 황필호, 『통일교회의 종교철학』(서울: 생각하는 백성, 2000), 5쪽에서 재인용.
[43] 특히 문형진은 사료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통일교회학적 토대 없이 “6마리아”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는 매우 부적절한 태도였다. 문형진회장 본부교회 주간통합회의 기록, 2010년 10월 20일.
[44] 선서의 내용은 “우리는 본성 본연의 참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복귀노정을 승리하여 찾아왔사오니 오늘 자녀로서 기뻐 받으시옵고 창조이념으로 허락하시려던 영원한 행복의 축복을 하여 주시옵소서”이다.
[45] 전체 가정에 대한 문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대들은 실수하거나 혹은 잘못하였을 때는 하늘이 자유로 처리할 것을 약속하는가? (예) 그대들은 창조본연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참부모 앞에 효자 효녀와 충신 열녀가 되기를 약속하는가? (예) 그대들은 본성의 자녀로서 피조만물을 주관하는 동시에 그의 화동의 주체가 되기를 약속하는가? (예) 그대들은 선의 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서 제2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선의 아들딸을 양육하기를 약속하는가? (예)”
[46]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주요의식과 선포식Ⅰ (서울: 성화출판사, 2001), 120쪽.
[47] 통일신학교 말씀연구회, 통일교회사 연구 가이드 Ⅱ (미발간도서), 1986, 134-138쪽.
[48] 36가정 이후 최초의 기성가정축복은 창교자의 주례로 1963년 2월 8일에 26쌍의 축복결혼이 있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역사편찬위원회, 《史報》59 (1986), 2-3쪽.
[49]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통일교회 발자취Ⅰ, 273쪽.
[50]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782-784쪽.
[51]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역사편찬위원회, 참부모님 생애노정 4, 60-67쪽.
[52]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연애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정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마음에 있었던 사람은 절대 축복을 안 해 줍니다. 축복받기 위해서는 신앙의 정기과정을 거쳐야 됩니다(1970. 3. 22).”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결혼 (서울: 성화출판사, 2005), 196쪽.
[53] 초기에는 직접 정해주었으나 숫자가 많아지면서 서류에 의해 일차적으로 국적, 연령, 학력, 건강검진서류(AIDS, 질병, 장애여부 등), 희망국가 등에 의해 분류된 터전 위에서 영적인 결정에 의해 사진 매칭이 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섭리의 진전에 의해서 부모의 허락 하에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일정부분 허락하고 있으며, 부모나 교회지도자의 중매로 배우자를 선택하기도 한다. 또한 파혼한 가해자도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축복결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54]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결혼, 111-113쪽.
[55]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672쪽.; “성주는 부모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피를 상징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마시면 부모의 사랑과 일체가 되고, 또 피와 일체가 됩니다. 이런 것이 성주의 내용인 것입니다.”, 원본 『천성경』, 1244쪽.
[56]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결혼, 114-121쪽.;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 667-673쪽.
[57] 실제로 한국에서 15년 이상 머물면서 한국종교사를 연구했던 외국인 종교학자 그레이슨(J. H. Grayson)은 “재림주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인류의 육체적인 복구이기 때문에 문선명은 각 신도들에게 적절한 결혼 상대자를 정해주고 신성한 결혼식을 합동으로 거행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임스 헌틀리 그레이슨, 한국종교사, 강돈구 옮김 (서울: 민족사, 1995), 318쪽.
[58]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결혼, 32-55쪽.; 122-123쪽.
[59]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결혼, 124-127쪽.
[60]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결혼, 128-129쪽.
[61] 하얀 천(수건)에 성주를 묻히고 말려서 만든 일종의 거룩한 수건을 의미한다.
[62]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축복결혼, 128-132쪽.
[63] 삼일식이 치러지는 공간은 창교자의 성혼식을 마치고 전수해 준 일종의 소금인 ‘성염(聖鹽)’으로 사탄이 침범하지 못하게 공간이나 물건을 성별(聖別)을 한 이후에 창교자의 존영을 놓고 ‘성초(聖焦)’를 켜 두고 있다.
[64] “남자에게 여자에게 제일 귀한 게 뭐예요? … 사랑의 기관, 생식기입니다. 생명을 심는 도구 생식기입니다. … 결혼해 가지고 부부가 첫날 저녁에 그걸 맞추는 그 시간에 사랑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거기서 시작하는 거예요. 사랑의 첫 출발입니다. 사랑의 본궁입니다. … 생명의 본궁입니다. 여기에서 남자 여자, 두 사람의 생명이 연결되는 거예요.” 문선명先生말씀編輯委員會, 文鮮明 先生 말씀選集 제260권, 1996년 4월 11일에 설교한 내용이다.
[65] 통일교회인들의 ‘순결’과 ‘절대성’을 지키려고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욕’을 주관하지 못해 탈선을 하는 경우는 신앙의 깊이에 따라 심각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창교자는 ‘입적축복식’과 ‘새출발수련회’, ‘천주축복식’ 등을 통해 성주식을 새롭게 거행하게 하여 그러한 가정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재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66] 2003년 7월 1일, ‘2003 세계문화체육대전(WCSF)’ 만찬에서 행한 창교자의 연설에 나타난 내용이다.
[67] 장애인이나 정신병자도 있었다.
[68] 이러한 논란에 대해 축복이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기 위한 여력은 너무나 부족하였다. 3만쌍 축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후 창교자의 구세에 대한 사명과 섭리의 시대적 혜택에 대한 확신이 어느 때보다도 컸던 시기였지만 “길거리 축복”과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 차원의 전도 및 축복활동은 통일교회 구성원들의 무리한 자금이 투입되어 무분별하게 이루어졌고 사후 처리가 전무한 이유로 통일교회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었고 심각한 부작용의 후유증이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69] 창교자가 사용한 용어는 성주(聖酒)를 대신하는 聖캔디였다.; “그런데 접붙일 수 있는 나무가 없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래서 복중으로부터 중생, 다시금 교체하는 거예요. 성주(聖酒)가 그러한 것입니다. 거기에 참사랑의 씨가 들어가 있어요. 그것을 마시지 않고 아들딸을 낳으면 복중에서 전환할 수 없다구요. 유치원부터 쭉 순결 캔디를 먹게 하는 거예요. 『말씀선집』 1998년 03월 29일, 305 권, 83쪽.;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일을 세계적으로 완전히 끝내야 됩니다. 복중시대, 유아시대, 그 다음에는 청소년시대, 거기에 부모들까지도 다 이걸 해야 된다 이거예요. 이제 성주를 공개적으로 가두를 막고 나눠 줘야 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세계 사람들을 전부 다 순결 캔디와 성주를 먹여야 된다구요. 국가 메시아, 종족적 메시아, 가정적 메시아가 조직적으로 편성돼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전부 다 해야 되는 거예요. 금년 표어가 뭐예요? ‘참축복 천주화와 사탄 혈통 근절’입니다. 사탄 혈통을 단절하면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탄세계에서는 가인이 아벨을 죽여서 지옥에 갔지만, 이제는 아벨이 부모를 모시고 장자의 자리에 서서 완전히 강제적으로라도 축복해 줘야 된다구요, 강제로라도. 전부가 그들을 붙들고 실체로서 싸워서라도 해 줘라 이거예요.“ 『말씀선집』, 1999년 10월 22일, 312 권, 197쪽.
[70] 순결켄디는 음료 공장인 (주)일화에서 성주를 포함한 것으로 알려진 캔디를 제품화 하여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순결운동의 일환으로 나누어주어 성주의 요소를 먹게 함으로써 사탄의 혈통을 근절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71] 『말씀선집』 2003년 08월 20일, 416 권, 84-85쪽.
[72] 『말씀선집』 2000년 10월 04일, 335 권, 234쪽.
[73] 서기 1998년 03월 29일 말씀, 文鮮明先生말씀選集 305권 14~17쪽.; “(前略) 첫 번째는 중생의 길을 통과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부활해야 됩니다. 세 번째는 영생식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읽어 봐요! 일본 멤버들, 읽어 봐요! 「첫째는 중생의 길을 통과해야 된다. 둘째는 부활해야 된다. 셋째는 영생식을 통과해야 된다.」 여러분이 축복받고 복중에 아들딸을 가졌다면, 그것은 교회의 축복권 내에서 아들딸을 가진 거라구요. 국가라든가 세계를 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를 넘어서는 시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승리하느냐? 그러니까 축복가정의 여자가 임신을 하면 성주를 마시게 해주라구요. 그것은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는 조건으로서 마시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아들딸을 낳지 못했어요. 축복가정이 성씨별로 종족적 메시아가 되면 자기 자신과 성씨가 같은 사람들을 모두 다 찾아내서 이러한 과정을 통과시켜야 됩니다. 그러면 일본 민족이 하나님 나라를 통과하는 조건을 세울 수 있다구요. 일본 국민 1억2천5백만을 축복시키지 않으면 일본 민족이 하나님 나라에 접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건 놀음놀이가 아니라 심각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터무니없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원리원칙에 통하는 말씀입니다. 그거 이루어야 돼요, 이루지 말아야 돼요? 안 이루어도 좋다구요. 그렇게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해요? 「예.」 멘도쿠사이(めんどう臭い; 번잡하고 성가심), 멘도쿠사이! 쿠사이(臭い; 고약한 냄새가 나다), 쿠사이! 똥 냄새보다 더 지독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임신한 아들딸에게 성주를 마시게 해서 그 아들딸을 앞세우고 부활의 공식도 필요 없이 부활하는 거예요. 복중에서 중생하는 거라구요. 여기서 바꿔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에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낳은 2세들은 복중에서 성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주를 마시게 하는데, 그것이 부활식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중생식과 부활식을 통과한 다음에 하게 되는 결혼식은 영원히 사는 영생식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을 중심삼고 영생식을 통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직할 통일권에 들어가는 거예요. 직접주관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의 해방권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심으로써 구원받는 그것이 영생식입니다. 그러니까 셋째까지 다 해야 됩니다. (下略)”
[74] 『말씀선집』 1998년 03월 29일, 305 권, 83쪽. “그래서 복중으로부터 중생, 다시금 교체하는 거예요. 성주(聖酒)가 그러한 것입니다. 거기에 참사랑의 씨가 들어가 있어요. 그것을 마시지 않고 아들딸을 낳으면 복중에서 전환할 수 없다구요. 유치원부터 쭉 순결 캔디를 먹게 하는 거예요. 그것은 영생식인데, 영생식은 캔디를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구요. 성주식, 본래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탄 혈통을 끊을 수 있으면 끝나는 거라구요.”
[75] 文鮮明先生말씀選集 2003년 12월 27일, 429권, 202쪽. “복중에 밴 아기들은 명년 천일국 4년 지나 가지고 ‘아이고, 중생식이 필요 없습니다.’ ‘부활식이 필요 없습니다.’ ‘영생식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 시대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천일국 4년이 필요 적절한 것이에요, 필요 부적절한 것이에요?「필요 적절한 것입니다.」”
[76] 『하나님의 뜻과 세계』, 774쪽. “선생님 가정에서는 전부를 모아 회의해 가지고 이런 원칙에 누가 일치했느냐 하는 것을 공론에 붙여 후계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보다 희생하고, 보다 가정 전체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가장 희생했느냐 하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 전체가 알고, 축복받은 사람이 알고, 선생님 일족이 다 알고, 선생님과 어머니가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된 후에는 세계가 다 법적시대로 들어갑니다. 하늘나라의 헌법시대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아무리 하늘 앞에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법에 걸리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법에 위반 안 되는 후계자를 찾아 세우는 역사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 과정에서 현재 축복받은 가정이 얼마나 무서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7] 2008년 창교자의 지시로 만들어져 보고된 것으로 알려진 「천일국 헌법 기초안」은 “구세주, 메시아, 재림주, 참부모는, 곧 참사랑 참가정의 시원이신 천지인 참부모이다. 천주에는 천지인 참부모님을 중심으로 직계 참자녀의 참가정이 있고, 접붙여 복귀된 가정으로 태어난 축복가정이 참가정을 이뤄가게 된다”로 규정하며 참가정을 규정하고 있다.
[78] 『하나님의 뜻과 세계』, 148쪽. “성혼식 행사는 196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정이 생겨남과 동시에 점차 확대되어 종족권, 민족권으로 확산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축복행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79] 『말씀집』437권, 195쪽. “그래도 다행한 것이, 선생님의 아들딸은 직계 아들딸이라는 거예요. 아담을 중심삼아 가지고 실체의 아들딸이니 사탄이 주관할 수 없어요. 언제든지, 천년만년 영계에 있는 것을 언제든지 데려다가 하늘의 자리에 올라오더라도 핏줄이 달라요. 여러분과 선생님 직계의 자녀와 핏줄이 달라요.”
[80] 뮨현진, 『심정문화의 주인』(서울: 월드카프,2004) , 78쪽.
[81] 뮨현진, 『심정문화의 주인』(서울: 월드카프,2004) , 86쪽.
[82] 뮨현진, 『심정문화의 주인』(서울: 월드카프,2004) , 10-12쪽.
[83] 뮨현진,『심정문화의 주인』(서울: 월드카프, 2004), 44쪽.
[84] GPF의 활동은 초종교적인 통일교회 복귀섭리의 완성기 전통과 의례의 전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GPF가 "One Family Under God"의 이상 실현을 위한 봉사활동(위하는 삶)을 핵심 정체성으로 삼고 있고, "God"라는 종교적 숭배대상(일반적으로 볼 때)을 정체성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GPF가 주관하는 행사의 모든 의식(ceremony)은 초종교적이며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GPF의 축제(festival)는 하나의 가치와 목적을 위해 모든 인류가 서로 어울리고 동화되어 하나 될 수 있는 의례(혹은 의식)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85] 뮨현진,『심정문화의 주인』(서울: 월드카프,2004), 102쪽. “아버님께서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 일관되게 유지해 온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지상에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워싱턴 타임즈를 창설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통일교회를 창립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연합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고, 카프 조직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인류역사를 통해 복귀하고자 하셨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참사랑과 참생명, 참혈통이 현현하는 이상가정이었습니다. … 이 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참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86] 「문현진님 자정집회 말씀」, 《지구촌 평화뉴스》2014. 2. 7.자 A2쪽. “… 축복은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90년대와 2000년 이후에 우리는 축복의 문을 개방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완전히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쉽게 축복을 합니까?’… 여러분이 진정한 신앙인이고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순수하게 헌신했다면 제일 먼저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똑같은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십니까? …”
[87]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현진은 여러 가지 딜레마를 안고 있다. 어머니가 이끌고 있는 가정연합의 정체성, 특히 축복결혼식을 포함한 혈통복귀의 전통과 불가피한 갈등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이미 가정연합은 아버지의 통일운동의 정체성을 지우고 어머니 중심의 종교운동을 위한 철저한 이론작업을 진행해 왔고 조직정비를 거의 마친 상태이다. 불가피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문현진의 해법이 무엇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88] 천정궁 훈독회, 문형진의 간증문, 2007년 1월 17일; 문형진의 간증과 설교를 통해 바로 위의 형인 문영진의 사망 직전까지 종교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문영진 사망 후 종교의 명상법에 깊이 심취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통일세계』, 통권 470호, 2010년 8월호, 12쪽.
[89] 2008년 4월 18일 문형진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회장 취임사.
[90] 준비찬송은 “맹세”, 복식은 예복 및 흰색 신발, 통일마크 목걸이와 스카프, 원리강론을 갖고 등장한다.
[91] 세계회장 문형진이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축복이 여러분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하면 참석자들이 “아주”로 답한다.
[92] 문형진 부부의 선창에 따라 참석자들이 “수수작용 사위기대 하나님의 참사랑을 상속받고 승화할 때까지 영광을 올리겠습니다”라고 제창한 후 선 상태에서 합장한다.
[93] 문형진이 “이제 다같이 성서와 원리강론을 훈독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축사장(문형진의 아내)은 성경과 원리강론을 각각 훈독한다.
[94] 영광내용 훈독은 개신교 의례의 사도신경 암송처럼, 통일교회인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영광 올립니다.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창세 이래로 당신의 참사랑을 상속받은 자녀들을 기다려오셨습니다.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간부 사탄으로부터 이기적이고 거짓된 사랑을 상속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4대 성인들을 보내셨습니다. 부처, 공자, 모하메드 그리고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 그러나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시는 비극으로 인하여 창조이상을 이룰 수 없으셨고, 참가정을 세우지 못하셨기 때문에 … 참부모님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참사랑과 부모의 심정을 상속받고 예수께서 이루지 못하신 사명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일곱 번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칠사부활 팔단완성의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지옥밑창으로 내려가시어 당신의 성스러운 영혼을 내던져 희생하셨습니다. 우리와 자녀들, 우리 가정이 영육으로 해방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참사랑의 힘으로, 참부모님께서는 일곱 번의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죽음도 어떤 죄악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8단계 하나님의 완성권내로 올라가셨습니다. 창조주의 절대권능으로 하늘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완전한 실체 대상자로서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아주!”
[95] 성배위에 세계회장과 축사장의 손이 올라가면 벨을 한 번 울리며, “이 성주와 성수는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과 참부모님께서 쏟으신 수고와 고통을 의미합니다”라고 선언하면 “아주”라고 답한다.
[96] 창교자가 일곱 번 죽음에서 부활하신 의미를 생각하며 성주를 일곱 번 정화하는 의식, 세계회장 부부가 1회, 참석자가 7회 각 4회 경배를 한다.
[97] 세계회장이 성주와 성수를 성별한 후 성주를 막대에 한 방울 묻혀 성수에 섞는다. 성주를 받혀 들어 올리고 좌우로 목회자와 목회자 아내에게 성수를 전수하고, 축사장은 목회자에게 성화(聖花)를 전수한다. 세계회장이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하면 “아주”라고 답한다.
[98] “다 같이 일어서서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참부모님 선서를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다같이 “여기 하나님의 심정을 해방시켜 드린 영원하신 나의 참부모님이 계십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우리의 영생을 위해 죽음과 죄악, 그리고 사탄으로부터 일곱 번 죽음에서 승리하고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얼마나 실천하며 살았는가에 따라 영계에서 조상들로부터 심판받을 것입니다. 나는 이 칠사부활의 참사랑과 부모의 심정을 상속받겠습니다.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나는 이 순간부터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아주!”라고 제창한다. “영원하신 참부모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참사랑을 상속받아 역사의 슬픔은 평화와 기쁨, 사랑과 희망으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라는 세계회장의 말에 “아주”라고 답한다. “당신께서 흘리셨던 눈물이 희망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참사랑에 대한 저희들의 신앙과 복종으로 당신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하면, “아주”라고 답한다.
[99] “칠사부활, 팔단완성, 참부모님 승리, 참사랑 승리, 나는 살아있다. 감사 합니다”의 칠사부활 찬송을 개신교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의 멜로디에 따라 각 소절을 4회씩 전체 5회 반복하여 120배 경배를 한다.
[100] 『통일세계』 475권 2011년 1월, 39쪽.
[101] 종교적 정체성의 변화를 선포하였을 때 대부분의 통일교회인은 그 섭리적 변화의 발전과정과 당위성을 이해하고 인정하였다. 왜냐 하면 그 변화와 선포가 통일교회가 약속했던 일관된 섭리발전과정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통일교회 신앙자들은 문형진이 전통과 교리에 입각한 특별한 종교적 설명이나 합리화 없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통일교회”라는 신약섭리 차원의 종파적 집단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들이 “가정연합”에서 “통일교회”로 환원되는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항의하지 못한 것은 변화를 시도한 주체가 창교자의 직계자녀인 문형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통일교회 전통에 대한 문형진의 변화시도는 창교자를 하나님의 실체로 믿고 숭배의 대상으로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심지어 통일교회 전통과는 거리가 먼 성령치유 예배나 칠사부활 정성, 나아가 숭배를 위한 창교자의 상(像)을 제작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통일교회인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의례들이 통일교회인들의 종교적 정서와 거리가 멀었고, 신화적 이야기가 부재했기 때문이며 결국 통일교회와는 무관한 의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02] 문형진 회장 전국 공직자 총회, 2010. 6.5.
[103] 2003. 7. 9. “선생님의 아들딸은, 참부모의 아들딸은 지옥에 있더라도, 어디에 가 있더라도 언제든지 궁전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선생님의 직계 아들딸은 사탄이 제아무리 유혹하더라도 승리시대에 있어서 사탄이 제거할 수 있는, 방어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104]『통일세계』 통권 468호(2010년 양력 6월호), 13쪽.
[105]「문형진의 설교」2011년 7월 31일, “일단 동양에서는 효자 아들은 완전히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아버지를 위해서만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절대복종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모셔야 합니다. 또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위에서의 권한이 있습니다. … 아마도 다른 부분이 있다면, 노예는 그것을 선택할 수 없지만 부자관계에서의 진정한 효자는 이 노예제도에서 자신이 아버지의 노예가 되겠다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6] 문현진,『하나님 꿈의 실현』(서울: 아주미디어, 2011), 305쪽. “제 부모님의 삶에 있어서, 특별히 제 아버지의 삶을 통하여 참된 효자가 가야하는 전형노정이 완성되었습니다. 참된 효자의 길이란 아버지의 꿈을 상속하는 주인이 되는 것이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축복중심가정이요, 확대된 참가정의 일원으로서 실천해야 할 효자의 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주종관계에서 보여질 수 있는 맹목적인 복종은 성약시대에 축복가정이 상속해야 할 참된 효의 덕목이 아니며 본문의 말씀처럼 아버지의 꿈의 주인이 되어 각자의 책임분담으로 그 뜻을 실천하고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2011년 트루월드그룹 연차총회 (2011. 3. 12.-13.)
[107] 문형진의 2015년 3월 15일 설교
[108] 문형진의 2015년 4월 12일 설교
[109] 비록 "참어머니"가 현재 통일교회의 중심존재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리더쉽은 현재 혼란에 빠진 통일교회의 사태들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그 이유로 종교적 카리스마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참어머니"의 카리스마는 창교자가 보여준 카리스마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창교자가 보여주었던 카리스마의 실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녀의 카리스마도 사라져버렸다. 엄밀히 말해 창교자의 카리스마의 소멸 혹은 일상화는 통일교회가 천년왕국운동으로서의 역할을 다 한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천년왕국의 메시지가 사라졌고, 그 지상천국이 당대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먼 미래의 사건이라고 신앙자들이 인식함과 동시에 통일교회는 기성종교가 된 것이며 창교자의 카리스마도 사라졌던 것이다. 특히, 창교자 성화 전후에 벌어졌던 여러 사태들은 창교자의 카리스마를 소멸시킨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고, 결국 "참어머니"의 카리스마도 이와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110] 천일국헌법 해설의 근거로 삼고 있는 “말씀”의 상당부분이 개정된『천성경』과 창교자 사후 편찬된『평화경』이라는 사실은 천일국헌법의 정통성 시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11] 비록 신종교 창교자의 카리스마가 스스로를 절대적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을 정점으로 점점 약화되다가 결국 일상화 되어 버린다. 일상화된 카리스마의 운명은 창교자를 신봉하는 신앙자들의 선택에 따라 비극적 상황을 맞기도 하고, 창교자의 정체성을 발전적으로 승계하는 후계자에게 카리스마가 성공적으로 전수됨으로써 일상화된 카리스마는 새로운 차원으로 해석되고 합리화 되어 결국 신종교의 또 다른 신화로 남아지기도 한다.
[112] 재활성화운동은 “보다 만족스러운 문화를 세우려는 사회구성원들의 어떤 의식적이고 조직된 노력”으로 정의된다. 주로 원시공동체의 구성원이 유럽문화를 접촉한 이후 열정적인 종교운동의 양상을 띠었던 현상을 서술하기 위한 여러 정의 중 하나가 재활성화운동이다. 화물숭배(cargo cult), 토착적 민족운동(nativistic movement), 메시아숭배(messsianic cult) 등의 용어도 그 중 하나이다. 안토니월러스, 김종석 역, 『종교인류학』(도서출판 아우내, 2011), 32-33쪽.
[113] 문현진의 세 권의 저서에 드러난 그의 일관된 주장은 1) 참부모와 참가정의 혈통적 가치는 절대적이며 2)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창교자의 사명 그리고 자신의 사명은 일치하는데 4) 그 사명은 “One Family Under God"가 실현된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며 5) 이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위하여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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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5일 토요일
통일교회 혈통복귀의례가 형성되어 변화되는 과정
2015.04.25. 11:31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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