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통일교회 전부회장 마크브롬웰의
공개서신3 - "하나님의 목표는 무기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2012.12.07. 08:56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19272
통일교 지도부에 의해
섭리가 파괴되는 있는 통탄스런 현실을 직면하면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서 발표한 유럽 통일교회 전부회장 마크브롬웰의 공개서신입니다.
전체 내용을 5회로 나누어 본 카페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영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자주- 유럽 통일교회 전부회장 마크브롬웰의 공개서신3 "하나님의 목표는 무기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무기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기는 결코 참아버님의 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무술을 창안하실
때조차, 전체적으로 신체적인 방어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으며 영적인 단련을 마지막 카드로
여기셨다. 그랜드마스터는 영계로부터 훈련 받는다. 그러면 왜 무기는 국진님의
천일국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분명, 무기라는 주제는 부수적이며 심지어 중요성에서 가장 마지막을 차지한다. 천일국에서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적합한 준비는 천일국의 주인들이 한다. 가장 긴급한 염려는 어떻게 하나님의 정치적 통치권이 우선 이뤄질 수 있는가이다. 국진님은 무기사업을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성격에 대한 그의 생각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하며,
국진님은 그의 개인적 아이디어로 세상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이해한다.
[국진님이] 무기산업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은 통일운동에 불이익을 수반한다. 지금까지 나는 무기로부터 엄청난
수익이 만들어진다는 것 외에 우리에게 어떤 이득을 발견하지 못했다
(누군가 아니라고 한다면 나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이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이다. 올해 초 한국에서 열린 UPF
회의에서,
러시아로부터 고위급 군 장교와 경찰 관리들이 초대되었으며, 국진님은 연설을 하고 그의
군용차량을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군사장비 카탈로그를 받았다. 러시아 대표가 국진님에게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할 계획인지 물었을 때, 국진님은 “아니다, 당신은 나의 적이다”라고 답했다. 국가를 적으로 부르는 것은
우정을 쌓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중국은 쉽게 적으로 간주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중국에 대해서도 참아버님은
1990년대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 중국과 미래 세계질서를 놓고 중국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많은 긍정적인 언급을 하신 바 있다. 아버님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부여받아야 하지만 중국의 엄청난 크기 때문에 자유는 하룻밤에 주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였다. 그 후 아버님은 이 나라에서
많은 교육 경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곳에 우리 기반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참아버님은 반복해서 당신은 적이 없다고 말씀해오셨다. 하나님에게 “적”이란 개념이
없다. 하나님의 주된 특징은 쌍으로 된 시스템과 협동이다. 참아버님이 명쾌히 말씀하시기를
그의 주된 목표는 항상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누군가 당신의 친구라면,
당신은 그들에게 그들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고 그들이 변화하도록
돕는다. 그분은 김일성을 포용하고 북한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업을 일으키고, 휴전선 문을 열고 더 많은
교류를 위해 [남북간] 관광산업을 일으키는 선례를 남겼다.
우리는 국가 체제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얼마나 가까운가
먼가, 민주주의와 종교적 자유가 어느 정도인가는 알고 있어야 한다 (EDP, p. 371). 하지만
대화(교류협력을 의미;
번역자 주)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야 할
하늘 방식이다.
1970년대나
1980년대 초반처럼, 요즘은 일방적 무장해제를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은 별로 없다. 독일에서 성숙해진 사회민주당과 녹색당도 그 생각을 포기했다. 그러나 다자적
무장해제 (모든 편에서 무기의 감축)은 분명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표이며, 분명히 참아버님의 목표이다.
이것은 우리 운동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면, 오로지 상대 공격 국가들이 갖는 무기의 양과 비례하는 정도로 해야 하며, 여전히 일방적 무장해제를
중심목표로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당연하게 들리지만, 지금 우리 운동의 지도부에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독일에서 우리는 사탄적인 가인의 성격과 그의 이데올로기를 매우 잘 안다. 통일교인으로서,
우리는 종종 좌파 공격자들로부터 우리를 물리적으로 보호해야
했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가 사람들의 존경을 얻은 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불굴의 정신
때문이었다. 우리가 반대데모를 하려고
30만 명의 데모 군중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단지 정신과
목소리뿐이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었다.
우리는 영계를 움직였으며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그들의 데모만큼 큰
뉴스를 만들었고 그들의 입지를 완전히 약화시켰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도 강한 억제책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독일 CARP는 로날드 레이건의
전략방위계획(SDI: Strategic Defence
Initiative)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으며, 이것은 독일에서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무술도 열심히 훈련하였다.
나조차 노란띠를 가졌다.
영계의 힘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베를린에서 여러분은 때때로 영인
군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여러분이
“칼로 공기를 자르듯이.” 여러분이 하나님과 영계를
제외시키면, 여러분은 항상 물리적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개념, 가인으로부터의 영원한 위협,
하나님의 나라에 무기는 영원한 존재라는 주장은, 나에게 하나님과 영계에 대한
약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들릴 뿐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공포와 불신과 편집증으로 둘러싸인 사탄의 나라가 될
것이다.
결국, 무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부분의 무기가 인간 동료에게 상해를 입히고 살해할 목적으로
제조되므로, 하나님의 세계가족,
타락 이전으로 복귀된 본연의 에덴에서 무기가 설 자리는 전혀
없다. 천일국의 궁극적 목표는 무기의 필요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며, 무기를 지구로부터 추방하는
것이다. 참아버님은 평화메시지
1장에서 이 점을 잘 표현하였다.
“오늘날, 전쟁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원시적이며 매우 파괴적인 방법으로 간주될 뿐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세계평화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성경 이사야서
2장
4절의 가르침처럼 이제는 총칼을 녹여 쟁기와 보습을 만들
때입니다. 더 이상 인류는 이제 전쟁을 위한 전쟁에 자식들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천문학적인 돈을 탕진하는 패악을
거듭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세계 모든 국가들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대우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이상세계왕국 창건에
총매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사야의 구절을 마저 인용하자면,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가인의 마음이 녹을 때,
절대적인 사랑의 존재 앞에 무기가 필요 없다. 절대적인 사랑은
가인-아벨의
전체 구조를 제자리로 잡아주는 기둥이다. 절대적인 사랑 안에서는 자리마저 녹아 없어진다. 이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방어를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적을 사랑하라는 탕감조건을 통해 가인을
완전굴복시킬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필요한 악이다. 이 원리는 완벽한 법이다.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증오도 성적인 유혹도 없을 것이다, 사탄의 영향은 지구로부터 뿌리
뽑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한 분명히 그날이 올 것이다. 요셉은 압박을 받았음에도 바로
부인의 성적유혹을 거부할 만큼 충분한 인격을 가졌다. 에서와 야곱의 원시시대에서도 단 하나의 무기 없이 야곱은 에서의 군대를 이겼고, 자신을 죽이려는 에서의 욕망을
이겼다. 하물며 지금 우리는 석기시대로 돌아가서 모든 가정을 무장시키려 하는가? 이것이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얼마나 비참한 비전인지 아는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의 소중한 자녀들처럼, 깊이 생각할
능력, 양심의 소리를 듣는 능력,
자신에 대해 숙고하는 능력, 참사랑을 연습하는 능력을
주셨다. 우리는 물리적 힘을 기꺼이 그만두어야 하며, 동물의 수준 위로 올라서야
한다. 그것이 참아버님께서 일생 동안 가르쳐온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다.
누가 “가인”이고 “아벨”인가?
무엇이 아벨과 가인을 결정 짓는가?
가인은 정말 아벨에게 영원한 위험인가? 참아버님 말씀에
따르면, 가인 아벨은 타자중심 대 자기중심의 레벨, 또는 전체목적 대 개체목적의
레벨에서 결정된다. 전체목적을 중심에 두고 원리에 가장 가깝게 사는 사람이 아벨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과 이기적인
목표를 중심으로 갈등과 반목을 야기하는 사람이 가인이다.
가인-아벨 관계에서,
아벨은 가인이 자신을 사랑하고, 섬기고, 자연스럽게 아벨 자신을 중재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가인이 응답하지 않으면,
아벨 자신은 형제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아벨이 가인을 사랑으로 주관해 주기를 가인 자신이 소망할 정도의 섬김이 되어야
한다. “강한 아벨”은 따라서 먼저 하늘의 사랑을 실천하고 하늘의 법을 지키는 것에 강해야 한다.
복귀의 길에서 가인-아벨의 자리는
일시적이다. 더구나, 가인-아벨의 자리는,
그것이 필요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원리를 실천하는
한, 지속되는 것이다.
가인의 협조가 없으면 아벨은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아벨은 하나님의 섭리에 장애가
되면 대체되어야 한다. 복귀된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이란 이름은
사라진다. 복귀된 가정에서,
형제 중에 영원한 주체의 자리는 장남, 또는 가장 많이 섬기는
자녀이다. 장자는 본래 하나님의 전통과 가정의 전통을 보호하는 책임을 가지며, 그의 부모를
대표하며, 그 전통을 형제들에게 가르친다.
가인-아벨 구분은 인간 타락의 두 번째 부분이며, 하나님의 심정을 찌르는 두 개의
큰 못 중에서 두 번째이다. 현재 참자녀의 분리는 가인-아벨 원리의 잘못된 이해의
결과인가? 어떤 한국인 선배들은
“역사상 형제간 갈등은 언제나 있었다"며 우리에게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고 설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통일운동에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세우게 되어 있으며, 너무나 많은 고통과 파괴를
일으켜온 지난 실수를 확실히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이 타락된 역사의 지옥 속에서 증오와 갈등을 극복하는 것은, 타락된 성적 사랑을 없애는 것과
함께 선결 과제 중의 맨 위에 있다.
나는 항상 참부모님의 자녀들을 협조하는 마음을 가졌다. 나는 효진님과
현진님을, 그들이 월드카프 회장일 때 모셨다.
유럽 카프 회장으로 나는 현진님과 일했다. 참자녀님들과 대륙지도자 사이를
중재하는 자리에 있기는 쉽지 않았다. 나의 관찰에 따르면,
참자녀들 각각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서 담당할 독특한 역할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들이 하는 실수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 그들도 잘못이 있다. 그러나 우리 축복가정들은 그들을 도울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내 마음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참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참자녀님들이 그 결과 얼마나
많이 관심을 받지 못했는지 생각하면서 우리는 참부모님의 육신의 가정을 협조함으로써 받은 것을 갚도록 애써야 할 도덕적인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참부모님의 자녀들이 단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협조하며 동시에 그들이 타협하지 않고 참사랑과 원리의 길을 가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자녀로서 그들은 사랑과 사랑의 많은 면에 대해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참자녀들이 무기로 훈련을 받을 때
“수호천사들” (축복가정)은 그들에게 폭력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에 대해 가르쳤는가?
형진님과 국진님이 책임을 맡았을 때, 우리 가정은 마음을 다해 그들을
지원했다. 우리는 실질적인 헌금을 드렸고 그분들에게서 오는 섭리적 방향이 참부모님과 의논한 결과라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것들과 하나가 되도록 애썼다. 우리는 그분들이 선교와 경제영역에서 하는 좋은 일들에 감동을 받았다. 형진님(그리고
참어머님)처럼 나는 우리가 효과적인 전도 없이 (사람들에게 영적인 삶을 주지
않고)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통일원리세미나를 우리 지역교회에서 새로
디자인하였고, 원리를 각색하고 그것을 참아버님의 말씀과 천성경, 다른 텍스트들과
결합하고, 또 실제 삶에서의 많은 예들을 더해보았다. 이것은 효과가
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1일 세미나에 참석한 후 7일 수련에
참석한다.
우리가 전도할 때,
우리의 인성, 믿음, 참사랑, 정성은 영계를 움직이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무엇보다 유니피케이셔니즘의 힘, 진리이다. 우리가 본연의 상태로 복귀될 수
있다는 이상은, 본연의 사람들이 지향하는 하나님적 마음들, 상처를 치유하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종종 내 경험으로 볼 때,
단지
7일간의 강의와 희망에 찬 유니피케이셔니스트와 함께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사람들에게 원리는 삶의 궁극적인 진리이며, 참아버님은 그리스도이며 세계는
완전히 치유되고 복귀되리라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죄를 하나님 나라의 일부가 되게 한다면, 타협에는 끝이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가인-아벨 문제를 해결하는데 희망을 잃는다면, 어떻게 지도부는 미래에
아담-해와의
문제를 다룰 것인가?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타협할 수 없다.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가인-아벨, 아담-해와 문제의 모든 자취는 지구로부터 씻겨 내려갈 운명이다. 이것은 우리가 수정할 수 없는
목표이다.
반면, 형진님의 날카로운 죄의식은,
그가 참아버님 이후 자신이 다음 구세주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지 않게 해
주었다. 그는 쉽게 그의 대관식을 통해 합리화하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 점에서 형진님을
칭찬해야 한다.
“참자녀”라는 용어는 분명 그들이 완전히 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희망의
자리, 되어가는 자리이지 존재의 자리가 아니다. 형진님은 그가 죄가 있음을 깊이
인식한다. 그것은 좋다.
그러나 그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할 것이다. 비록 여러 세대가 걸린다 하더라도.
참아버님은 당신의 마음과 몸이 하나 되었다는 것 외에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인류의 참된 씨앗이다. 메시아의
아이디어란, 우리가 모두 그처럼 되는 것이다
(“제2의 레버런
문들”). 이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절대적인 믿음, 사랑, 복종을 훈련해야
한다. 물론
우리 자신의 개념을 중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하고”이다. 복종은 적어도 하늘의
법, 참아버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특히 통일세계 리더십에도
기대되는 것이다. 참아버님이 임명한 사람들이 통일의 하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참부모님이 승화하신
이후라도 다른 사람을 임명하실 것이다.
참자녀들은, 그들이 참아버님과 함께 살았기에 참아버님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의심한다. 식구들은 참자녀보다 더 오랫동안
참아버님과 함께 살아왔다. [참아버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님의 말씀을 체화함으로써 영계를 통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유다는 예수와 물리적으로 함께
살았으며 예수 제자들 중 중요한 책임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유다는 예수의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섭리 계획을 파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전혀 만난 적이 없던 바울은 예수의 정신을 이어받은 중심이 된
인물이었다.
우리 공동체의 형제들에 대해 나쁜 의도의 행위는 우리의 마음을 타락시킨다. 나는 참아버님이 형제들간에 어느
정도로 배척하고 있었는지 정말 알고 계셨나 궁금하다. 진짜 전쟁의 수준에 도달했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는가? 나는 현진님을 매우 잘
안다. 그는
악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항상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섭리를 협조할까에 대해 생각한다. 식구들은 성화식 날 한국의 신문
첫판에 발표된 장례 유족 공식명단에서 현진님 가정이 제외된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탕자”나 “죄인”이나 “범죄인”일지라도, 어떻게 가족이 이렇게 행동할
것인가? 참아버님이 이것을 봤을 때 성화식에서 어떻게 느꼈겠는가?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하늘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기껏해야 죄악의 심연 위에서 줄타기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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