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인들에게 하는 신의 당부
사랑하는 통일교인들이여
나는 너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신이다
나는 오늘 너희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려한다.
먼저 나는 통일교하고 별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통일교인이라는 사람들하고는 크나큰 관계를 갖고 있지만, 통일교라는 종교하고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너희의 종교는 너희가 만든 것일 뿐 나의 작품이 아니다.
나는 종교를 만드는 자가 아니다. 종교라는 틀은 이 지구상에서 지구인들로 하여금 나를 표현하게 하고 나에게 다가 오게 하는 것으로서 적합하지 않다.
너희가 재림주라고 부르는 통일교 창시자 또한 내가 임명한 바가 없다. 나는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서 어느 한 사람을 ‘주’라고 삼은 적이 없고. ‘만왕의 왕’또한 임명한 적이 없다.
또한 나의 축복을 통일교의 일부 지도자들에게 통째로 위임한 적이 없다. 구원의 권한 또한 통일교에게 일임한 적이 없다. 너희가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해 온 너희 종교 창시자의 어록들 역시 구원을 약속하는 길이 아니다.
그러나 통일교인은 나의 사랑하는 자식들이며 또한 분화된 나이다. 너희들은 일시적으로 통일교인이라는 굴레를 썼지만 머지않아 그 굴레를 벗게 될 것이다.
통일교의 지도자 그룹이 일하는 방식은 내가 일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거의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들은 통일교를 위해서 일한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통일교를 내세워서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들은 나를 찾지 않으며 나의 생각과 계획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뜻과 계획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일한다.
그들은 공산주의자처럼 행동한다. 인민들이 배가 고파서 굶어죽든 말든 오직 ‘사상’만을 내세우면서 인민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하는 공산주의 지도자들처럼 통일교의 지도자들 또한 종교의 이념만을 내세우면서 신도들의 끊임없는 희생을 요구한다.
너희가 나에게 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종교 이념이 아니다. 종교의식도 아니며, 헌금도 아니다. 너희가 따르는 지도자도 아니다. 너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확대된 통일교회가 아니다.
너희가 나에게 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너희가 나에게 오는’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나에게 쉽게 올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그동안 붙들고 있었던 통일교의 모든 개념과 의식을 쉽게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본 선교사들의 경우, 창시자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종교 안에 없다. 나는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너무나 협소하고 오류가 가득한 곳에서 나는 살 수 없다.
나는 거대한 교회나 기도원에도 가고 싶지 않다. 돈으로 밀어붙이는 번듯한 행사에도 가고 싶지 않다.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기도나 구호는 나와 상관이 없다. 교회나 기도원의 크기만큼만 자신의 기도의 성사를 기대한다. 행사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더 크게 안도한다. 나는 그런 곳에 제대로 초대받은 적이 없다. 그런 곳에 초대된 것은 내가 아니고 큰 건물이며 세상의 명성을 가진 사람이다.
통일교는 지금껏 통일교의 창시자나 교리의 우월성을 강조만 해왔지, 우월한 행위를 한 것은 별로 없다. 종교의 우월성은 말에 있지 않다. 종교의 우월성은 이 세상을 정화시키고 따듯하게 하며, 밝고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스스로가 먼저 정화되어야 하며, 따듯해야 하며 밝고 투명해야 한다.
그것은 ‘의식의 변화’이며 ‘존재의 진화’이다. 빠른 시간에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나를 만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를 찾으며 나와 함께 있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의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의식에 직접 접속되는 게 빠를 것이다.
나의 의식에 접속된 자는 치유의 은사부터 받는다. 나의 사랑에 통째로 취하는 사이에 모든 상처나 걱정은 금새 사라지게 된다.
중국의 등소평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한 그 순간에 중국의 개혁은 시작되었다. 그는 명석했다. 국민들이 잘 사는 길 속에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을 그는 분명하게 간파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살 수 있는 실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평화스런 사회를 원하는가? 그러면 자신부터 갈등 요소를 없애고 평화스런 상태를 가져라.
사랑 받고 싶은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라. 사랑하고 싶은가? 사랑해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은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라. 종교의 이념을 봉독했다고해서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잠재 갈등 요소가 없어지지 않는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저절로 사랑스런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의 주변이 온통 고통스럽고 혼란한 상태에 있는데 그런 상황을 외면하면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하나로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너희에게 말을 걸고, 더 나은 삶을 알려준다. 더 평화스럽고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을 알려 준다. 자신의 오류를 극복하고 더 분명하고 정돈된 상태를 암시해 준다. 나는 언제나 너희의 기쁨이었으며, 기쁨을 만들어내는 도우미였으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책을 준 선생이었다. 늘 더 좋은 전망을 보여주었다.
내게 오라. 너희의 내면으로 오라. 그 곳에 내가 있으리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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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15.05.31. 09:52
4대성인의 말씀이 나빠서
세상이 이모양인가.
원리가 나빠서 통일세계가
이모양인가. 모두 변덕스럽고
야비하고.욕심꾸러기 심뽀로
잘못하기 때문인데
거기다가 핵심마저 모르고
분별력이 없으니
아수라장이 되어 헤매는
불상한 존재들이지만
하늘은 분명 정리를 합니다
과정에서 대를 위해 대회도
하고 돈도 필요했지만
이제 부자협조 시대는
영광의 시대라 하셨는데
모든것이 빨리 정리되어
두루 보살피고 돌아보는
참사랑의 실천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과도기에 했던 것처럼
사랑얘기만 했지 보이는
사랑 실천이 없으면
희망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이모양인가.
원리가 나빠서 통일세계가
이모양인가. 모두 변덕스럽고
야비하고.욕심꾸러기 심뽀로
잘못하기 때문인데
거기다가 핵심마저 모르고
분별력이 없으니
아수라장이 되어 헤매는
불상한 존재들이지만
하늘은 분명 정리를 합니다
과정에서 대를 위해 대회도
하고 돈도 필요했지만
이제 부자협조 시대는
영광의 시대라 하셨는데
모든것이 빨리 정리되어
두루 보살피고 돌아보는
참사랑의 실천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과도기에 했던 것처럼
사랑얘기만 했지 보이는
사랑 실천이 없으면
희망 없다고 생각합니다
15.06.01. 11:41
말씀이 없어서 세상이 이렇게 된건 아니죠.
모든 개인이 스스로 깨달아야만 가능한 것인데 생각하면 깜깜합니다.
빨리 마음속의 하나님을 스스로 찾아 생활할수 있는 식구님들의 수준이 높아지길 바래봅니다.
모든 개인이 스스로 깨달아야만 가능한 것인데 생각하면 깜깜합니다.
빨리 마음속의 하나님을 스스로 찾아 생활할수 있는 식구님들의 수준이 높아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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