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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5일 목요일

혁명은 독재와 타락의 과정을 거쳐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가?

혁명은 독재와 타락의 과정을 거쳐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가?

2013.09.04. 23:22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2142          


혁명(革命)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기존의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 교체의 형식, 변혁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다
라고 되어 있다.
 
세계사에서 유명한 혁명은 전제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꾼 1688년에 영국에서 일어난 명예혁명과, 부르봉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제를 시작한 1789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프랑스혁명, 그리고 러시아의 로마노프왕조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1917년에 일어났던 러시아 혁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혁명하면 5.16 군사혁명(일부에서는 쿠테타라고 하지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 이전의 역사를 거슬러 조선시대까지 올라가면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이 있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낸 사건은 흔히 말하는 쿠데타로서 혁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혁명은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여 기존의 정권을 바꾸는 것이라면 지금은 민주적인 방법으로 혁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선거를 통한 정권의 교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은 특정한 세력이나 특정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국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다를 뿐 목적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쿠데타가 아닌 혁명은 그 목적이 무능한 정권이나 억압적인 정권의 주체로부터 정권을 박탈하여 자신들이 정권의 주체가 되어 폭정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해방시키고 정권이 무능하여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혁명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이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이상세계의 건설이라고 하지만 그 대부분의 결과는 그 기치의 색깔이 바래지기도 전에 그 목적은 사라져 버리고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자나 잡은 자들은 독재자로 남아지게 된다.
그리하여 혁명을 하기 전이나 마찬가지가 되거나 오히려 혁명을 하기 전보다 더 못한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권력을 잡아서 국민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라면 모르지만 혁명을 하는 사람들이 혁명을 할 때의 마음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이 꿈꾸던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하였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 결국 혁명할 당시의 마음은 어디로 가 버리고 독재자의 모습으로만 남아지게 되었던 것이 역사의 보여주는 결과이다.
 
지금도 독재자로 남아 있는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나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필리핀의 마르코스, 그리고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소련의 공산당 독재정권, 중국 공산당의 독재정권 등을 보더라도 마지막은 독재로서 끝나게 되거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 독재는 결국 국민들에 의해서 끝나게 되거나 또 다른 혁명가에 의해서 독재는 끝나게 된다.
 
왜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나 잡은 사람은 왜 독재자가 되는가?
혁명을 하는 사람들은 전의 권력자들의 독재나 부정부패 등으로 국민이 고통을 받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혁명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은 그러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대부분이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독재라는 단어의 의미는 권력을 잡은 사람이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뜻대로 처리하고 국민을 지배하는 것으로 그들이 처음부터 독재자가 되기로 맘을 먹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왜 하나같이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는가?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게 된 사람은 필연적으로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은 국민의 질의 문제이다.
혁명이 필요한 곳이라면 국민의 민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민도가 높다면 독재를 할 수가 없다. 국민의 민도가 낮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며 그 가난은 국민의 민도가 높아지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게 된다.
국민의 민도는 단기간에 높아지는 것이 아니며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민성이나 종교 등 또 다른 요소의 방해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그 혁명가들이 당초에 자신과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그런 나라는 자신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국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민도가 낮은 국민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 국민들이 그렇게 된 것 곧 민도가 낮게 된 것의 가장 큰 원인은 일단 가난으로 가난하게 되면 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민도가 낮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 가난의 이유는 원천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필리핀처럼 부의 편중 때문이거나 아니면 인도처럼 종교적인 계급 때문이거나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민을 교육을 통하여 민도를 높이지 않으면 의식의 변화를 이끌 수 없고 의식의 변화를 이끌지 못하면 결국 가난을 벗어 날 수 없다.
결국 그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독재가 동원될 수밖에 없고 목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 누적되면서 결국 당초의 목적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처음의 목적을 포기하게 되면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이 좌절한 것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나 또는 권력의 정상에 오래 있었던 것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타락하거나 변질되게 되고 만다.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상이겠으나 이미 변질되어 버린 사람이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할 리가 없으며 결국 그 또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혁명가에 의해서 독재자의 오명을 쓰고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숱한 혁명들이 실패를 하게 되는 근본원인은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에 치우친 것도 있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국민들이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투표를 통하여 정권을 교체하는 목적은 국민들이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이나 그리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전의 정권이나 바뀌고 난 뒤의 정권에서나 잘 살 수 있는 요소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던 20세기에서 가장 거대한 공산주의 혁명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현실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이상세계를 건설하려고 했던 것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 곧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타적인 사람들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공산주의 세계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목적을 세웠으니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이나 쿠바가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 국가를 이상적으로 건설해서가 아니라 독재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혁명에 대해서 지루하게 이야기 한 목적은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우리는 왜 변질되고 있는가?
통일교회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종교관 등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혁명적인 가치관과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류가 꿈꾸어 왔던 이상세계를 섭리라는 이름으로 이루기 위해서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결과는 어떤가?
북한의 공산주의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으로 남고 말았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생공영공의 주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 세상은 공산주의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세계로 모든 사람이 이타주의에서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세계가 뜻이 이루어지는 세계인 것이다.
 
이런 생각은 통일교인만이 가지고 있다고 하여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사람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 안에서도 한 명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아닌가?
그 세계 곧 우리가 바라는 세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살 수 있는 정도로까지 인간들을 교육하여 그런 단계로까지 상승을  시켜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가?
세상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목표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점점 멀어지면서 그 부작용으로 독재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그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절대복종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2020의 목표는 시간만 흘러간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목표는 세상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섭리의 목표를 다시 세상 사람들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것으로 재설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혁명가들이 독재의 길을 걸어가다가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그런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통진당 사태를 보면서 세상사람들이 볼 때 우리도 그와 같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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