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3년 9월 30일 월요일

믿음이 좋은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믿음이 좋은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2013.09.30. 01:30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2375

믿는 사람보다는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믿기 시작하면 비상식이고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서 판단력이 흐려지게 되어 선악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불가능과 가능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교리적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해를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자들은 지적으로 게으른 자들이거나 무식으로 인하여 무책임해진 자들이다.
자신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영혼의 문제를 위탁하면서 끝까지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무책임한 것이다.
 
이해가 될 때까지 이해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며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것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교회나 교리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해를 하지 못하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믿음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며 그 때부터 줏대 없는 신앙을 하게 되며 줏대 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기도보다는 명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기도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에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다. 비현실적인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기도보다는 이치와 순리로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늘 왜 그럴까를 끊임없이 생각하여 왔기 때문에 원인을 이해하고 있다면 과정도 알 수 있는 것이고 결과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일은 원칙적으로 기도로서 해결되도록 되어있지 않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들의 이성과 지성으로 해결이 되어야 하는 일들이다.
설령 그 것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재발되게 되어 있다.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은 순리대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의미와도 같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댓가를 치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요행으로 서울 대학교에 붙었다고 하더라도 실력이 없으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퇴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도에 의지하는 것은 암에 걸린 사람이 치료할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민간요법 같은 것이다.
기도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성과 지성에 의지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이성과 지성의 개발은 세상의 지식도 많이 알아야 하겠지만 명상을 하다가 보면 저절로 깨우쳐지는 것이 많게 된다.
곧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복합적, 통전적(統全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 원인과 과정 결과를 동시에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면 선악(善惡)이나 의(義)와 불의(不義)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다단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권유하는 사람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사람들로 복합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다단계가 무엇을 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익이 창출되는지를 안다면 그들이 말하는 것이 사기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게 된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는 곳은 무대의 지극히 일부분이다.
스포트라이트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지 않는 곳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무대에 누가 그리고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의 역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스포트라이트안에 있는 것만 보게 되는 것이다.
 
다단계에 빠지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로 다단계에서 창출하는 이익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다단계의 생명이 길어야 3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이익보다 과다한 배당을 약속하는 다단계는 가입자가 줄어드는 순간 문을 닫고 줄행랑을 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선심을 베풀거나 죽어야만 지켜질 수 있는 약속 등을 약속 등을 핑계로 다른 어떤 희생을 강요하거나 댓가를 요구하였을 때 그 것이 진실이 아닌 거짓이라는 것을 판단하지 못하면 다단계에 기꺼이 다단계에 빠지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회개하면 죄가 없어진다든가 헌금을 하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든가 하는 것들은 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욕심에 눈이 어두워 그 말을 그대로 믿어 버리는 것이다.
다단계를 권유하는 사람의 작은 돈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그 말에 선뜻 빠져 드는 것은 어리석은 욕심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죄가 탕감되는 것이나 천국을 가는 것이 헌금이나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헌금으로 때우고자 하는 것은 정도의 길을 가지 않고 천국 간다는 그 말에 욕심을 내기 때문인 것이다.
 

종교의 순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의 역기능 중에 가장 큰 역기능은 종교인들을 협박에 가까울 정도로 겁박(劫迫)을 하여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는 행위이다.
만약 정말 현명한 사람이라면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고 종교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종교가 제시하는 엉터리 약속에 절대로 어리석은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영계에 연연하거나 집착하는 사람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이미 당신은 누군가의 좋은 물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지난번에 언급하였으므로 생략....
 
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믿는 사람보다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