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4. 16:05
조건이라는 것은 온전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무엇인가를 대신하면 온전한 상태로 도달한 것으로 간주를 하겠다는 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조건인 셈이다.
‘믿기만 하면 천국을 보내 주겠다’에서의 조건은 ‘믿는’ 것이 조건인 셈이다
천국이 있다면 그 곳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위해서는 그 천국의 기준에 도달했을 때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믿는다는 조건 때문에 천국을 보내준다면 그 조건을 내세운 당사자는 공정하지도 못하고 정당하지도 못하며 도덕적이지도 않다.
힌두교나 불교도 기독교와 이슬람처럼 무엇을 하면 어떤 것을 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조건들이 많이 있다.
염불을 하거나 마니차를 돌리거나 하면 불경을 읽은 것으로 간주를 한다는 것도 어떤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도달한 것으로 간주를 해 준다는 것이 믿기만 하면 천국을 보내주겠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조건은 세우게 한다는 것은 종교가 원하는 어떤 상태로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을 시작하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며 노력하는 그 이상의 보상이 주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내 걸면서 금품이나 다른 어떤 것들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사기(詐欺)에 해당하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못하더라도 대학교 시험이나 입사시험을 통과시켜 주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금품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정말로 믿기만 하면 천국을 갈 수 있고 염불만 하고 마니차만 돌리면 극락을 갈 수 있으며, 돈도 잘 벌고 건강해진다면 그 하나님도 공정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하나님일 것이고 부처님일 것이다.
믿지 않더라도 선하게 살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죽어서 천국도 가고 살아서는 잘 사는 것이 정당한 것이고 공평한 것이다.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한 사람은 가해자고 한 사람은 피해자이지만 이 두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별로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명하지도 않으면서 능력 이상으로 욕심이 있어서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기꾼에게 부탁을 하고 사기꾼은 그 욕심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것이 그들의 관계이다.
만약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사기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돈을 빌려주었는데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사사기와는 본질이 다른 것이다.)
종교에서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종교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교가 천국을 보내주는 곳이나 돈을 벌게 해 주는 곳으로 알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면서 천국도 가고 싶고 돈도 벌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교가 요구하는 조건을 열심히 따르게 될 것이다.
위의 내용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전에 내가 교회에서 재직회장을 할 때였었는데 헌금의 성격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의견 대립을 많이 하였었다.
어떤 조직이고 조직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게 되어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기 때문에 전년을 기준으로 하여 금년에 교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예산을 추정하게 된다.
그래서 그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전년도 헌금 한 것을 기준으로 하여 헌금할 것을 약정하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견대립이 일어났었다.
헌금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하는 것이지 왜 헌금을 책정을 하고 강요를 하는가의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재직회장으로서 교회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추산이 되면 그 예산을 능력에 맞게 배분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대립이었다.
그 사람들은 헌금을 기존의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헌금이었었고 나는 섭리기관인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 교회에 소속된 섭리인들에게 교회의 운영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복을 받고 싶으면 감사헌금이나 특별헌금을 별도로 하면 되는 것이며 십일조는 교회의 운영비차원에서 능력에 맞도록 내달라고 강조를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생각들이 다르겠지만 일반 기성교인들이라면 몰라도 섭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헌금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십일조 헌금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섭리기관을 운영하는데 동참하는 비용이라고...
헌금을 운영비라고 생각한다면 내고 싶으면 내고말고 싶으면 말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잠깐 옆길로 샛던 것은 교회와 헌금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헌금을 낸다고 해서 완전해야 할 것에 대한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 부족한 부분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채워지는 것이며 헌금이나 다른 어떠한 조건을 세운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에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열심히 씻어내야 몸이 깨끔해지는 것이며 돈을 낸다고 깨끗해지지 않는다.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오르지 못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오르는 것이지 돈만 열심히 낸다고 하여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청평에서 조상해원에 대한 것도 그렇다.
지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이 결정되어질 것이며 지상에서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영적수준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상에서 개차반(조폭)으로 살았던 사람이 자손이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어준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다면 공부 못하는 자식을 돈으로 학교에 입학시켜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만약 영계가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천국이 있어서 천국을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지상에서 무슨 조건을 얼마나 많이 세웠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느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합격하기 위해서는 어느 학교에서 어느 참고서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보다는 어떤 수준이 되었는가와 같은 것이 맞는 것이다.
수준미달인 학생에게 좋은 대학교 입학시켜 줄테니 말 열심히 듣고 돈 열심히 가져오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그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금방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말을 하는 그 사람도 자신이 종교생활에서는 그런 학생과 그런 사람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다.
따라서 자신이 그렇게 속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종교는 어떤 조건을 세우게 하여 천국을 보내주고 돈을 벌게 해 주는 곳이 아니라 어떤 상태의 사람을 만들어주는 곳이 종교인 것이다.
가장 간단하고 근본적인 것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헛된 짓을 하면서 사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죽는 것이 대부분의 종교인들인 것이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