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6. 12:02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0466
이단자 폭파자 선포문 사건의 진실
(이곳에 공개하는 정보들은 사실이며, 대내 의로운 분들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사안이 민감하여 보관만 해두었으나, 최근 참부모님을 우롱하고 섭리를 그르치는 정도가 너무 심하여 부득이 공개하기로 결심하였다. 정보 제공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은 일부 내용만 공개하지만, 언젠가는 원문 그대로를 공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가정에 치욕스런 오점을
남긴 이단자 폭파자 선포문이 만들어진 지 오늘로 만 1년이 되었다. 2010년 6월 5일은 통일가의 가장 부끄러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배후의 음모 세력들은 당시
‘문현진’ 이름을 선포문에 넣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했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그들은 또 하나의 참부모님 선포문이라는 문건에 참부모님의 서명을 새기고, 호칭도
생략한 채 기어코 ‘문현진’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들은 아버님의 눈과
귀만 가리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참으로 가소로운 짓이다.
어찌 두 손으로 하늘과 영계를 가릴 수 있겠는가! 이제 그들이 어떻게 참아버님을
움직여 1년 전에 선포문을 받아냈는지 공개한다. 살아 있는 양심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고, 모든 증거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후일 역사는 진실을 접하며 이 사건을 획책한 자들의 무덤에 침을 뱉을 것이다.
사건의 발단
2010년 5월 30일. 브라질 교회에 문현진 회장(이하 문회장)이
방문하였다. 최근 발간된 문현진회장 강연문집 ‘하나님 꿈의
실현’ 서문에 그의 방문 동기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서, 여기에
인용한다.
문회장의 교회방문은 그의
예상대로 큰 소동을 몰고 왔다. 본부의 지시를 받은
신동모는 단상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성전에 드러누운 채 끌려 나와야 했다. 신동모가
K선교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곳곳에 함정을 파놓았다고 스스로 시인한 것처럼,
그의 행동은 의도된 것이었다. 다음날 5월 31일 새벽 훈독회에서 그는 또 한 번의 연출을 위해 훈독회 장소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곽진만 씨의 제지에 부딪혔다. 그런데 정작 문회장이 신동모를 들어오게 한 뒤에 페라볼리 협회장과 함께
머리를 쥐어 박는 등 심하게 나무랐다. 이 장면은 그들이 심어 놓은 사람에 의해 비디오로 촬영이
되었다. 그들은 나중에 이것을 6분짜리 비디오로 편집하여 참부모님께
보여드렸고, 인터넷 유투브에 올렸다. 그리고 전세계 교회조직을 통해
문회장을 폭력적인 인물로 악선전 해왔다.
선포문 발표까지의 과정
6월 1일
김효율은 참부모님 발표문
초안을 작성하였다. 그는 초안을 조성일 편에
문국진/문형진 회장에게 보고하고, 참부모님의 서명을 직접 받으려
양창식을 여수로 내려 보냈으나, 그는 빈손으로 올라왔다. 김효율이 작성한 영어공문 초안을 여기 공개한다. 이것은 선교본부에서 두 형제를 위해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파일명에 WMD(세계선교본부)라고 분명하게 적혀있다.
김효율은 6월 1일 모 간부에게 아래와 같이 소식을 보냈다. 이것을 보면 확실히 그는 모든 정보와 사람을
통제하며 참부모님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며칠 내로 명령서를
확보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결국 “이단자
폭파자 선포문”으로 관철되었다.
6월 2일
그들은 참부모님의 서명을
얻지 못하자, 문형진 회장의 서명이 들어간 대체
공문을 만들어 세계에 6월 2일 발송하였다. 공문번호 ‘세가선 2010-18’의 마지막 결론을
아래에 소개한다.
6월 2일자 공문이 양에 차지 않은 신동모는 대범하게도 참부모님을 수신자로 하여
“최고 강력한 무기 긴급
지원”이라는 제목으로 김효율, 석준호, 양창식, 조성일, 두승연 등에게 공문을 보냈다. 그는 “참부모님의 사인이나 첨부로 비디오로
‘모든 선교국가는 세계본부의 지시와 공문을 따르라!’라는 단순한
지시만 확실히 있으면 이것이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된다”라고 하면서 “총알같이” 아래와 같은 공문을 긴급히 발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요청한 공문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김효율의 의지와
신동모의 요청대로 위 내용이 들어간 ‘이단자 폭파자 선포문’은 불과 3일만에
만들어졌고, 동영상까지 제작되었다.
6월 3일
문형진 회장의 보좌관
두승연은 이날 오전 조성일 등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 신동모가 요청한 내용을 참부모님으로부터 어떻게 받아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알려왔다. 김효율과 양창식을 통해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문형진 회장이 직접 나섰음을 알 수
있다.
이날
문국진/문형진 회장은 밤 시각까지 그간의
모든 자료들과 브라질 사건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라고 지시하였고, 박진용은 그 지시를 김효율과
두승연, 조성일 등 본부 스탭들에게 전달하였다.
6월 4일
문형진 회장이 여수로
내려갈 계획은 취소가 되었다. 오후에 참아버님께서
서울로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누군가 하루만 올라왔다 내려가시도록 긴급한 부탁을 드렸을
것으로 본다. 참아버님의 서울행이 결정되자, 협회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형진회장은 협회가 제작해 놓은 16분짜리 브라질
사건 비디오를 6분짜리 동영상으로 다시 편집할 것을 특별 지시하였다. 6월 5일 새벽 훈독회 때 아버님께 보여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특별히 구타장면과 아버님을 따를 것이냐, 나를 따를 것이냐라는 뉘앙스가 부각되도록 편집
지시가 내려갔다. 제작은 남인석이 책임졌다. 오후
3시에는 천복궁과 협회직원의 전체 회의 및 교육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그들은
세계회장의 지시를 전달하였다. 그들은 6월
5일, 구리 수택리 중앙수련원에 대기상태로 있는 전국 목회자들에게 아버님 서명을
받은 문건과 동영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문현진 회장을 비판하는 영상을
촬영하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현진님은 사탄의 길을 가고
있다.’라는 내용의 비디오촬영으로, 국장부터 시작, 직원 전체가 찍고 현장 공직자들도 촬영하기로 결정하였다.
끝으로 그 다음주부터 협회장이 직접 나서 전국 교구순회를 하며 UCI와 문현진
회장 비판강연을 할 것을 결정하였다.
6월 5일
문형진 회장은 훈독회
전에 참부모님 침소에서 아버님 이름으로 된 선포문과 서명을 받기 위해 청평에서 대기하였다. 이연아씨는 대담하게 아이폰으로 촬영할 준비까지 마쳤다.
모든 세팅은 참어머님께서 내실에서 협조하고, 밖에서는 김효율이 준비해
주었다. 그들이 제작한 6분짜리 비디오는 이미 전날 보여드렸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드디어 참아버님께서 기침하시자, 문형진 회장 부부는
내실로 들어가 아버님의 서명이 들어간 선포문 작성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의 인도로
첫 번째 선포문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작성하셨고, 거듭되는 요구에 두 번째 선포문까지 작성해
주었다. 모든 과정은 이연아씨가 비디오로 촬영을 하였다. 이후
이 비디오는 두승연이 넘겨 받아 첫 번째 선포문 작성과정을 제외하고 두 번째 부분만 미국 가정연합 홈페이지에 공개하였다.
그들이 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부분을 누락시켰는지는 추측할 수 밖에 없지만, 분명히 이 영상을 사람들이 볼 때 작성과정이나 내용에 대한 아버님의 해석 등에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 영상을 완전히 삭제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참아버님은 예정보다 늦게
훈독회 장소로 나오셔서 별다른 말씀 없이 짧게 훈독회를 하고 다시 여수로 내려가 버리셨다. 그러자 문형진 회장과 그 참모들은 아버님의 선포문을 들고 전국 목회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수택리로 향하였다. 오택용 교수가 1차 강의를
하고, 김종관 천복궁 실장이 나와 동영상을 급하게 보여준 뒤, 선포문을 소개하면서 “드디어 참부모님께서 통일교를 인정하셨다”는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석준호 협회장에 이어 등단한 문형진 회장 역시 전혀
분위기에 맞지 않는 설교만 하고 돌아갔다. 마치 자신은 이러한 일에 전혀 관여되지 않은 것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협회는 6월 7일부터 석준호 협회장을 중심으로 전국 교구순회집회를 한다는 공문을 일정과 함께 이날 전국 교회에
발송하였다.
6월 6일
천복궁 일요일 예배
시간에 조성일은 미리 준비한 파워포인트 강의자료를 갖고 예고도 없이 단위에 올라섰다. 그는 문현진회장과 UCI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강의를 하여 물의를 빚었다. 일부 원로 식구들은 석준호 협회장에게 직접 항의를
하였다. 다음날 김종관은 경기 수원교구를 방문하여 동일한 강의안을 갖고 비판강연을 실시하였고,
이후 협회는 유경석, 정진화 등을 내세워 전국, 전세계로 비판강연을 확대해 나갔다. 그들이 받은 선포문은 7월 12일자 주간조선 기사를 통해 “문총재 자필 서명
상속자 선포문”으로 탈색되어 언론으로 흘러나갔다. 문현진도
죽이고, 문형진을 후계자로 확고히 각인시키기 위한 일거양득 작전으로 보였지만, 세상은 문총재를 비난했다.
결론
김효율은 참아버님의
선포문이 식구들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궁금했다. 동시에 그 선포문에 “문현진”을 새겨 넣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요, 참가정과 섭리가 현재 어떤 자의 수중에 휘둘리고 있는지를 역력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위 내용은 그가 어느
지도자에게 보낸 글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참아버님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시고, 막다른 길에 몰려
휘호를 써 주시면서도, 아들을 보호하고 싶으셨건만, 40년간을
참부모님과 참가정을 모셨다는 자의 머리에서 저런 생각이 나오다니…이 세상에 누가 천사장이고 누가 사탄이란
말인가.
최근 발표된 또 하나의
선포문과 이를 둘러싼 그들의 행동에서 1년 전
느껴졌던 역한 냄새가 또 다시 풍기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언제까지 이것을 지켜봐야만
하는가? 그들이 스스로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끌어내려야 하는가? 섭리가 축복가정들에게 요구하는 마지막 질문이다.
2011년 6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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