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3년 3월 5일 화요일

타이거 박 아들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 R. B의 문제점 분석 I

타이거 박 아들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 R. B의 문제점 분석 I
 


타이거 박 아들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 R. B의 문제점 분석 I -
 
그는 한 때 술에 절어 통일교회를 박살내겠다고 떠들고 다녔던 자이다. 몰래 담배를 피다 2세에게 들킨 적도 있다. 요즘 자기가 무슨 최고의 변호사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그는 미국에서 변변찮은 로펌에 근무한 경력도 없고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낸 적도 없는 것 같다. 들리는 말로는, 그는 미국의 한국 상업은행 지점에서 채권이나 추심하러 다니던 그저 그런 변호사였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 변호사들이 모두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니다. 그가 상업은행에서 어떤 직책에 있었는지 모르나, 그의 벌이가 변변치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에서 미국 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표를 조사해 보면 당시 그의 수입은 연봉 4만 달러 전후 수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얼마 전에 교회에서 이 사람에 대해 엄청나게 부풀려진 말이 돌고 있어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신대위에 있는 자들이 이렇게 떠벌리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의 줄거리를 대충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미국에서 하루 2만불 매출의 큰 그로서리(채소) 가게를 운영했었다. 벤츠나 BMW 등 차를 여러 대 굴리면서, 바이어를 만날 때 그 사람이 어떤 차를 쓰느냐를 보면서 그에 맞춰 차를 갖고 나갔었다. 이렇게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모든 사업을 접고 교회 일을 도우라고 했다. 말을 듣지 않자 가족이 타던 차가 굴렀다. 그리고 다시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또 말을 듣지 않으면 다음은 네 차례다 해서 결국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미국 물정을 잘 모르는 순진한 식구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대개 깜박 죽는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사기꾼과 변호사는 다 말을 잘한다. 이 사람의 성격으로 볼 때 이런 소문은 전혀 근거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과장되게 포장해왔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을 띄우는데 톡톡히 한 몫을 한 사람이 또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모든 제도 위에 있는 분, 참어머님의 최 측근 간부로서 영어 식 이니셜을 갖고 있는 PK이다. 이 두 사람은 인척관계이다. 미국에서 대충 살아가던 사람을 한국에 데려온 뒤에 PK가 후견인이 되어 얼마나 포장을 하고 붕붕 띄웠을 지 가히 상상이 간다. 그 덕에 이제 이 사람은 참어머님과도 독대를 할 정도가 되었다. 세상 눈이 어두우신 참어머님은 이 사람이 아마도 미국의 최고 로펌에서 일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착각하고 계실 것이다. 자랑스런 36가정 타이거 박의 아들이니 신앙심이 깊고 충성심이 대단할 것으로도 생각하실 것이다. UCI 소송은 머지 않아 이기게 되고 현진님은 백기투항하고 참어머님께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될 것이라는 말을 의심할 여지 없이 믿어오셨을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그가 어떤 수준의 변호사인가를 참어머님께서 알게 된다면 아마도 까무러치게 놀라 자빠지실 것이다. 사실 약간의 상식만 있고, 이 사람이 과거 유천궁에서 발표한 내용만 들어보아도 금방 눈치챌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참어머님 곁에는 모든 제도 위에 있는 PK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입도 벙긋 못하는 세상이다.
 

현실은 참 잔인하다. 지금 이런 사람에 의해 UCI 소송이 휘둘리고 통일가 전체가 파탄지경으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그를 두고 미국 최고의 로펌에 근무하는 어느 베테랑 변호사는 화약이 가득한 방안에서 성냥불을 갖고 노는 철없는 아이에 비유했다. 안타깝게도 참어머님께서 소송을 중단하고 싶어도 이제는 이런 사람의 눈치까지 봐야 하니 이것을 식구들이 안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그가 한 때 회심하고 돌아와 참부모님 운운 하면서 설치고 다닐 때는 그의 회심이 진짜이기를 바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와 그의 가족은 뉴저지에 살면서도 한번도 한인 교회에 다닌 적이 없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에는 교회에서 야외예배나 체육대회 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 일년에 한 두 번씩 오기도 했지만, 5, 6년 동안은 단 한번도 보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한인식구들에게 그와 그의 가정은 잊혀진 존재나 다름 없다.
 
한번은 한국에서의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가 미국에서 하루 2만불 매출의 큰 청과물 채소가게를 운영했다는 말이 있다고 미국에서 수 십 년 살고 있는 어느 한국 식구에게 말했더니 그것은 터무니 없는 과장된 소문이라고 했다.
 
그가 선교회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있으니 지금은 살림이 좀 폈는지 모르나 한국에 오기 전에 그는 뉴욕 시에서 고속도로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시골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출근 시간 때는 2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불평하는 소리도 들렸었다. 그의 부인이 운영하던 채소가게는 이전의 한국 주인이 상업은행에서 융자를 받았다가 갚지 못한 것을 그가 인수한 것이라고 했다. 이 가게는 뉴욕 인근의 뉴저지에 있고, 한인 교회에서 몇 사람이 이 가게를 방문했는데, 규모도 작고 하루 종일 가게에 있으려면 그 부인이 너무 답답하겠다는 소리도 했었다. 그리고 새벽같이 남편이 부인을 가게에 내려놓고 출근을 했다가, 일이 끝나면 다시 가게에 들러서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부인을 데리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1, 2년 정도 했다고 했다. 이런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억대 연봉을 받고 최고 변호사 대접에, PK의 든든한 지원까지 보장되니, 한마디로 그는 팔자가 핀 것이다.
(2편으로 계속)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