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3. 10:34
아버지 이후’ 지도자 상을 생각한다.
영웅이나 멋진 지도자상은 안방이나 온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통사람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그 무엇 인가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분명한 철학과 이념 그리고 신념에 대한 영적감각과 결단력과 야망을 가지고 반드시 해낸다는 성취욕으로 야전의 실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모셨던 위대한 지도자 文자 鮮자 明자 참아버님이 그런 분이다. 태산같이 밀려오는 정도의 엄청난 핍박을 극복하신 생애는 고금의 그 어떤 영웅들과 비교할 수 없는 악전고투의 현장에서 한 생애를 사시다 萬勝의 길을 뒤로하고 가셨다.
1954년 협회창립이후
‘문선명은 이단 괴수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났다’ ‘벌거벗고 춤추는 교회다’ ‘음란의 교주다’ 하는 등등의 기사가 신문방송과 당시 유명잡지 ‘實話’ 등에 연일 방송보도 되는 상황에 梨大사건에 연루 1955년 7월4일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구금 재판을 받는 수모를 당하신 끝에, 결국 10월4일 서울지방법원의 무죄 판결로 자유의 몸이 되셨다. 하지만 핍박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지고 세계적인 핍박으로 계속되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후 마지막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이 기쁘다’라고 감탄하시며 기쁨이 Climax에 이를 때에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 창조한 것을 후회한다"고 痛恨의 심정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 한분으로써 어떤 고통고난도 인내하시며 뜻을 이루어 드리고 恨을 해원해 드리겠다는 효자의 結義 心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世評으로 아버님은 분명 성공 하신 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아버님의 생애는 고난사의 연속으로 일제하에서, 공산 치하에서, 자유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민주주의 본궁 미국 등지에서 영어 사리를 하셨고,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인들로부터는 무차별적인 사이비, 이단 시비와 시기질투 등으로 융단 폭격적 거센 수난의 생애를 사신분인데, 이를 안다면 어찌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오늘 이 섭리적 위기에 하나님과 아버님을 배신할 수 있으며 모른척하고 불의에 동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사탄의 하수인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내는 제자들의 배신과 한번의 이혼과 의외의 또 한 번의 몹쓸 한 할매의 배신, 몇몇 자녀들의 비극적 聖和와 아버지 고난 사를 전혀 도외시하고 배신하는 자녀들의 횡포로 인한 억누를 수없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밀려오는 통한의 심정 등등, 生의 마지막 운명직전까지 지칠 대로 지친 고단한 비운의 삶을 살다가 弑害까지 당하시고 가신 분으로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없는 평생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초인의 삶을 살다 가신 분으로 가슴이 아프다. 이를 도외시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생을 사신 분으로써 당신 말씀대로 “누가 당신은 이러 이러한 사연이 있지요?”하고 언질만 줘도 통곡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이셨다.
또 이제까지 그래 왔지만 장자로서 현진님의 앞날은 얼마나 험난할까? 를 생각해본다.
참아버님의 복귀섭리의 유업을 반듯이 성취해 드려야한다는 중압감은 불문가지다. 하여 앞으로 섭리를 이끌 지도자는 어쩌면 심정적으로 아버지의 생애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보다 통일 교인이 더 암적 요인일수 이기 때문이다.
大統을 이어 받은 지도자는, 참아버지의 영성과 정신과 사상, 철학, 의지의 험난한 고난 길마저도 마다않고 상속할 수 있는 결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나가 개인적으로 건강은 물론이고, 도덕적 윤리적 덕목을 갖추고 원리적 인격적 결함이 없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더 욕심을 낸다면 세상의 저명한 인사들과 인격적 소양 등이 월등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이러한 험로에 개인적인 안락과 행복을 초월하는 정신적인 지도자라야 할 것이고 생각한다.
아버지 이후 제2의 개척시대를 열어가는 지도자는 역시 아버지 재림주님의 혈통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영성으로 DNA를 100%유전 받은 아들은 현진님 밖에 없다는 것이 내외의 중론이다. 이는 편견이 아니라 자타가 인정하는 상황이다. 그의 인내하는 정신력과 지구력, 협상력, 매너 등등은 누구도 따를 수없는 카리스마가 있는 참부모님의 아들이다.
그 외 인사들은 섭리관 無, 책임의식 無, 의리 無, 공분심 無로 사실상 평가 대상에 들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모든 인격적인 소양을 볼 때 정의감이나 의리 인내심 없어 노블레스 오블레스가 완전 결여 된 자들로서 위기에 봉착하면 줄행랑을 치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무책임한 존재들로서,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 왔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어떤 경우도 인격적 심정적 지도자적인 포지션을 지키고 책임 져야하는 것으로 죽을 자리까지도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참아버님은 극한의 죽을 자리에서도 하늘과의 신의를 지켜낸 분으로 차세대 지도자도 이런 모든 것을 유전받은 분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폐르샤의 대왕 키루스((BC559~530, 중동에서부터 그리스, 인도까지 정복))는 아들에게 나라를 주면서 ‘이 왕위를 神의 선물로 받아 드려라 하지만 너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①힘든 일에 집중해야하고, ②여러 가지 걱정거리에 괴로워해야 하고, ③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④내가 했던 경쟁에 시달리고, ⑤작전을 하고, 또 ⑥상대의 작전을 알아 내야하는 것이 왕의 일이다, 결국 인간적인 행복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절대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참 아버님도 일생동안 인간적인 행복을 누려 보지도, 누리려고 하시지도 않은 분이셨다.
이제 이와 같은 아버지의 뜻을 상속받아 섭리를 성취해야할 차세대 지도자, ‘그’도 역시 인간적인 행복을 누리려고도, 누릴 수도 없는 지도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섭리상의 참 지도자는 예외 없이 고난 길을 갔고 순교의 길도 마다하지 아니했다. 그것 없으면 하나님 앞에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노아가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다. 그들은 하늘대한 충성심과 뜨거운 血族愛가 있었다.
노아는 ‘땅이 패악하여 멸할 것이니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수년간 배를 짓는 대역사를 해낸 믿음의 인간조상이 되었다. 그는 청천하늘에 무슨 홍수냐고 일가친족과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비난을 무릎 쓰고, 하나님의 명을 따라 방주를 지어 하늘 섭리프로그램을 맞춰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요셉은 형들이 시기질투로 죽이려했고, 상인들에 의해 먼 나라에 종으로 팔려가, 총리로 출세하여, 고향의 부모를 그리워하고, 원수 같은 형들과 동생들을 만나서는 용서하고 사랑으로 끌어안고, 흉년들어 굶어 죽게 된 상황에 곡물과 많은 재물을 주어 그들을 살려 보내고, 진정 형제애를 못 이겨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며 후일 아버지 야곱을 상봉하고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가족애를 보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족속이면서 애급의 왕족으로 영화를 누리며 장차는 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일시적인 영화에 연연하지 않고 종살이하는 동족애에 대한 불타는 열망으로 분개심을 가지고 왕궁을 탈출하여 피폐한 광야생활을 견디며, 하나님의 명을 따라 때를 기다리며 동족을 구원해야한다는 애족의 일념을 가지고 결국 이스라엘을 구출했다.
노아의 하늘대한 충성심과 믿음, 요셉의 뜨거운 형제애와 가족애, 모세의 민족(=인류애)애 등, 이들의 하늘대한 믿음 사랑의 愛家 愛族의 모든 신념과 영적 가치관을 현진님에게서 찾기 어렵지 않다. 현진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 그리고 연민의 정을 한 없이 느끼면서 아버지의 아픈 恨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효자다.
더나가 당신을 쳐낸 모친과 당신을 원수시하는 동생들과 모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품으려는 가족애가 눈물겹도록 뜨겁다. 섭리적 차원으로 참가정과 참부모님을 어떤 일이 있어도 원상회복 하여 사대심정권을 복원, 인류 앞에 로열패밀리의 위상을 찾아 세워 하나님의 뜻과 참부모님의 꿈을 실현해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요셉의 가족애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나가 참아버님의 꿈인, 온 인류를 구원해 내야한다는 One Family Under God의 사명적 실현욕은 모세의 민족애(인류애)를 넘는다. 이런 것은 그의 지금까지의 생애를 뒤돌아보아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현진님은 이런 분으로 결코 지엄한 섭리적인 뜻 앞에 일시적 인간적인 안위나 명예, 행복을 꿈꾸는 지도자가 아니다.
오늘의 일부 참가정의 형제들을 보면 형님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과분한 사욕과 이유 없는 시기질투 그리고 권력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참아버님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더나가 그들 자신을 위해서라도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이 크게는 하나님의 뜻과 작게는 그들 스스로의 불행을 막는 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축복중심 가정들이 지금까지 객관적으로 참가정 형제들의 언행과 사상 등을 면밀히 보아온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家庭平和協會 창립을 앞두고 지도자는 ‘그’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를 생각하고 ‘그’를 귀하게 여기고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맡겨진 공무를 실행함에 있어 sabotage 하지도 않았으며, 권력과 재산을 탐하지도 않고, 부모님과 형제들의 심정을 유린하지도 않았으며, 축복중심 가정들의 심정도 배반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참아버님의 희생적인 눈물겨운 삶을 보면서 인간적인 행복은 상상도, 꿈도 꾸려 하지 아니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오직 일생을 섭리적으로 아버지가 성공하시기를 최일선에서 최선을 다한 정성을 보였으며, 야전에서의 實戰으로 정신과 영성과 육체를 훈련하고 경험한 참지도자로써 사탄세계 정복을 위한 자질과 능력을 체득한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아버지이후를 예비 한 지도자로 하나님 앞에 다윗과 같은 지도자다.
우리는 역사적인 섭리의 한 세대를 살아가면서 적당히 선과 악이 희석되어진 의식을 가지고 타협하는 삶은, 내 혼의 운명을 비참하게 하고, 하나님과 많은 사람(축복가정)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준다는 것을 생각할 때, 냉정하게 판단하며 흑백으로, 좌우로, 하나님 아니면 사탄 것으로써 아닌 것은 아니라하고, 옳은 것은 옳다 하는 분별성별 하는 생활의 지혜를 가져야한고 생각한다. 일시적으로 어떤 쇼에 매료 되거나, 감언이설에 현혹되거나, 허황되고 위선 된 코미디 같은 쇼에 감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키루스 대왕의 여섯 가지 이유를 들어 아들의 앞길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참아버님과 함께 자도자로서 ‘그’의 앞날을 염려하고 성원하고 기원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그를 위하기도 함이 지만 하나님과 인류와 우리를 위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섭리적 위기다. 이때 우리에게 바른 지도자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또 다시 위기를 부르거나 사보타주의 섭리가 돼서는 안 되는 것으로 섭리적 위기는 한번으로 끝나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섭리와 우리를 위해 편견 없는 공의로운 지도자를 맞이해야한다.
바른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도자로서의 그를 생각할 때 ‘그’는 각고에 인내를 극복하며 공분심을 가지고 이전과 같이 하늘과 부모님 앞에 지극한 충효를 다하면서, 인류구원을 위한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참아버님의 사람이요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래 지도자들에게 지시함에 있어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빼먹으면 안 된다”라고 주문할 정도로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과거에 안호상 박사는 ‘문선명 선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님으로 꽉 찬분’이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이 또한 현진님도 아버님의 DNA를 가진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부분이다.
현진님은’ 스스로 말하기를 “내 인생은 롤러코스트 같은 인생이다”라고 지난 날을 자평하고, 지도자로서 앞으로 어려운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아들 신원님도 말하기를“아버지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 짓는 분입니다.”라고 평할 정도로 아버지의 지도자적인 강한 면모를 발견한 것으로 어떤 危難도 극복할 수 있는 분이라고, 아버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뜻 길을 가매, 창조주 하나님의 恨 맺힌 심정을 생각하거나 참아버님의 파란만장한 생애노정을 생각한다면 편견이나 사리사욕과 불의에 동조하거나 부하뇌동 하는 등, 섭리 파괴적 행동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타락한 인간사회에서도 질시 받는 일이거늘 하물며 지엄한 하나님의 善한 뜻 天地公事를 방해하고 가로막는 자는 사탄 이외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류구원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공분심을 가진 참된, 선한 하나님의 사람(축복가정)들이라면 아버지 이후 지도자상을 심각하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이후의 지도자는 현대적 감각으로 업그레이드 된 지도자라야 한다. 아버지가 큰 잔치에 “소 잡아라”하는 時代에서, 차세대 지도자는 현대적 감각의 만찬을 화려하게 할 수 있는 국제적 수준의 지도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리더십과 능력과 자신감 그리고 하면 된다는 신념의 아버님이셨다면,
현진님은 이런 아버님의 장점을 상속한 지도자적 자질위에 현실적 국제적 감각의 스타일과 史學者로서 洋의 東西 攝理史觀에 밝은 분으로써 준비된 지도자다. 나가서 그는 역시 비분강계 하면서도 인내를 보이는 지도자요로 때의 완급을 다룰 줄 알고 풍부한 감정표현과 유머감각 또한 베스트로 차세대 지도자로서는 그에 견줄만한 지도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진님은,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를 소진시키며 섭리적 원리적으로, 하나님과 참아버지가 원하시고 그리고 축복가정들이 소망하는 지도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한편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할 것은, 막연하게 섭리적 개념 없이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12월 2일, ‘가정평화협회 창설’선언 일에 혹 ‘그’의 그런 지도자상을 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런지도 모르겠는 생각을 해본다. -牡率-
|
10:42
“현진님은 이런 아버님의 장점을 상속한 지도자적 자질위에 현실적 국제적 감각의 스타일과 史學者로서 洋의 東西 攝理史觀에 밝은 분으로써 준비된 지도자다. 나가서 그는 역시 비분강계 하면서도 인내를 보이는 지도자요 때의 완급을 다룰 줄 알고 풍부한 감정표현과 유머감각 또한 베스트로 차세대 지도자로서는 그에 견줄만한 지도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와, 이 정도면 광신이죠?
한번 광신은 영원한 광신!
주인은 바뀌어도 맹목과 추종은 영원하다.
그런 맹목과 광신이 아니라면,
무슨 맛으로 종교를 믿는단 말인가?
다른 종교들은 너무 밋밋해
와, 이 정도면 광신이죠?
한번 광신은 영원한 광신!
주인은 바뀌어도 맹목과 추종은 영원하다.
그런 맹목과 광신이 아니라면,
무슨 맛으로 종교를 믿는단 말인가?
다른 종교들은 너무 밋밋해
12:20
현진님의 행보가 유일한 대안이기는 하지만,
유전을 운운하거나, 모든 것에 완벽하다는 식의 신격화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 봅니다.
그리고 꼭 제왕적 왕권체제 밖에는 대안이 없는 것인가요?
현진님 체제가 과도기가 될 수 있을 지언정,
통일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민주적 시스템을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원리에서는 종교가 세상을 앞서서 견인한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 교회는 세상에 비해 한참을 뒤쳐져 있는 듯 합니다.
유전을 운운하거나, 모든 것에 완벽하다는 식의 신격화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 봅니다.
그리고 꼭 제왕적 왕권체제 밖에는 대안이 없는 것인가요?
현진님 체제가 과도기가 될 수 있을 지언정,
통일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민주적 시스템을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원리에서는 종교가 세상을 앞서서 견인한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 교회는 세상에 비해 한참을 뒤쳐져 있는 듯 합니다.
┗ 16:40
섭리는 타락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원죄 없는 참 아담의
후손(메시아의 자녀)으로 철저한 원리적 신정체제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문제는 재림메시아의 후손들이 얼마나 원초적인
하나님의 뜻과 메시아의 영적 가치의 원형을 중심하고 뜻앞에
절대적이냐만 문제 되는 것이지 혈통중심한 일사부란한 체제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후손(메시아의 자녀)으로 철저한 원리적 신정체제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문제는 재림메시아의 후손들이 얼마나 원초적인
하나님의 뜻과 메시아의 영적 가치의 원형을 중심하고 뜻앞에
절대적이냐만 문제 되는 것이지 혈통중심한 일사부란한 체제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 16:07
백두혈통처럼 혈통이 중요한 거군요?
피가 달라지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요?
말씀대로 문제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앞에 절대적인가 아닌가요?
과도기로서 상징적인 중심이 필요하긴 하나,
장기적으로는 진보된 체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회는 영원히 왕국으로 남아야 합니까?
피가 달라지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요?
말씀대로 문제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앞에 절대적인가 아닌가요?
과도기로서 상징적인 중심이 필요하긴 하나,
장기적으로는 진보된 체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회는 영원히 왕국으로 남아야 합니까?
16:57
국가복귀가 되어 천일국이 된다면 국법과 도덕 윤리가 원리적으로
교육 되어 하나님을 절대 신봉하면 천왕제가 될 것이고 시간이 좀더
흐르면서 완전 축복가정 사회국가가 되면 그때는 누가 왕이 되 더라도
문제 없을 것이나 하늘은 절대 혈통으로 지속 되기를 원하실 것으로
사료됨 그것이 원리적으로 원칙이라고 생각됨.
교육 되어 하나님을 절대 신봉하면 천왕제가 될 것이고 시간이 좀더
흐르면서 완전 축복가정 사회국가가 되면 그때는 누가 왕이 되 더라도
문제 없을 것이나 하늘은 절대 혈통으로 지속 되기를 원하실 것으로
사료됨 그것이 원리적으로 원칙이라고 생각됨.
┗ 20:08
조선시대같은 봉건국가로 회귀하는거군요?
별로 끌리진 않네요. 역사의 방향이 아닌듯.
별로 끌리진 않네요. 역사의 방향이 아닌듯.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