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3. 01:04
말씀이 난무한다.
여기나 저기나 참아버님의 말씀을 가져다 쓰는고로,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같은 말씀이어도
정작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하나의 말씀을 놓고도 옳다, 그르다 싸우느라
말씀은 분열의 씨앗이 되고, 싸움의 무기가 되었다.
말씀 속에선 참사랑을 말하며,
그 말씀으로 싸우고만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그들의 행동을 보아야 하는가?
말씀은 있으되,
말씀의 현현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을 어찌 살아있는 말씀이라 하리.
예전 수련회비 마련을 위해,
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향토학교를 팔았던 것과 같이
부끄런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한 빛좋은 허울일 뿐.
말씀을 죽이는 자는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그저 말씀으로
말씀을 그저 수단으로
입으로만 말씀을 떠드는 자가 아닐런지.
옳바른 말씀은
입으로 전해지는 지식이 아니라,
행함으로 전해지는 체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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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03. 01:24
지당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을 그저 수단으로 심각한 눈가림용으로 사용하는 어용 반성합시다
전혀 생명력이 없는 입으로만 하는 말씀은 영혼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말씀을 그저 수단으로 심각한 눈가림용으로 사용하는 어용 반성합시다
전혀 생명력이 없는 입으로만 하는 말씀은 영혼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17.11.03. 02:46
더나가 말씀을 근본부터 부정 변경 훼손하여 괴물로 반들고 이상한 집단의 이상한 사람의 말씀으로 대치하는 상황 앞으로가 걱정이다. 완전 재림주님의 말씀을 폐기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17.11.03. 09:29
말씀 속에선 참사랑을 말하며,
그 말씀으로 싸우고만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그들의 행동을 보아야 하는가?
겉과 속이 다름을 보아야지요.
그 말씀으로 싸우고만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그들의 행동을 보아야 하는가?
겉과 속이 다름을 보아야지요.
┗ 17.11.03. 11:54
무지한 소인이 넘치는 말씀에 심신이 어지럽고 혼미해져 머리가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한번 행함을 보는 것이 깨우침에 이르는 빠른 길이겠기에 행함으로 가르침을 주실 스승님을 찾고자 함이옵니다.
대왕님께선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나이까?
한번 행함을 보는 것이 깨우침에 이르는 빠른 길이겠기에 행함으로 가르침을 주실 스승님을 찾고자 함이옵니다.
대왕님께선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나이까?
00:47
맞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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