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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3일 수요일

다시 네팔의 가슴 아픈 이야기....그들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었나?

2015.05.10. 06:28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6051       

다시 네팔의 가슴 아픈 이야기....그들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었나?
 
 
네팔에 지진이 일어 난지 보름이 다 되어가는데 현재까지 희생자가 8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구조인력과 구조장비가 와서 그들을 구조하였지만 네팔이라는 나라가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나라라서 구조 환경이 열악하여 구조작업도 쉽지 않았고 지금은 복구 작업도 쉽지 않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세계적 축구선수 호날두가 500만 파운드를 구호자금으로 쾌척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참으로 대단한 선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500만 파운드라는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을 하면 85억원이라고 하니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나도 매달 몇 만원씩 가난한 나라의 학생들을 위해서 기부를 하고 있지만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만 인류를 사랑하고 말로만 섭리를 외치면서 인류의 참부모요 메시아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축구선수 호날두 개인보다도 못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계를 구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아닌가.....
 
네팔이라는 나라는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에 위치한 나라로 지진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대륙판과 유라시아대륙판이 맞부딪쳐서 두 판의 경계선이 밀려올라가서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밀려올라가고 있어서 히말라야 산맥은 지금도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두 판이 만나서 서로 밀어내기를 하고 있는 곳에는 지진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정기간이 지나면 그 응력을 해소하기 위한 지진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며, 이번 지진도 프랑스의 지진 학자가 지진이 일어날 것을 정확하게 예측하였다고 한다.
네팔의 지진 주기는 89년에서 92년 사이라고 하며 지금부터 그 만큼의 세월이 흐르게 되면 지금과 같은 지진이 또 일어나게 된다.
그들이 히말라야 산맥에서 사는 한 지진은 숙명으로 감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지역에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되기도 한다.
2008년 중국의 쓰찬성 지진 때는 50여만 명의 사상자가 났지만 세계 두 번째의 국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금방 복구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 네팔의 경우는 중국과 달라서 복구를 할 능력이 없다.
네팔은 산악지대로 히말라야 때문에 오는 관광객이나 등산객의 관광수입이 국가 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당분간은 관광객도 받을 수가 없으니 더 막막한 상태이다.
 
지난 번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지진으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한국의 유명한 목사가 예배시간에 말하기를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벌을 주신 것이라고 말해서 비난을 받았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이고 쓰나미의 피해를 많이 당했던 인도나 스리랑카 등은 힌두교와 불교 국가들로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참으로 망할 놈의 목사가 아닐 수가 없다.
그 목사가 누군지 궁금하면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네팔의 종교는 힌두교가 81% 불교(티벳불교)가 11% 이슬람이 4% 라고 하며 기독교는 없는 셈이다.
이번 네팔의 지진을 보면서 또 어떤 정신 나간 목사가 기독교를 믿지 않아서 지진이 났다고 망언을 했을지도 모른다.
 
네팔의 지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불쌍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음은 아프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으니 그냥 모른 척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자신의 가족의 일처럼 도우려 달려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보통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생각들이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9장 1절에서 41절의 내용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성문을 지나가는데 소경이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었다.
저 소경은 누구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된 것인가를 묻자 예수님은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해서 라고 하면서 침을 뱉어서 진흙을 개어 눈에 발라주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때 사람들은 자손이 병신으로 태어나면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예수님은 소경을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왜 그런가를 따지는 제자들을 책망한 내용이다.
기성교회의 목사들이나 기독교인들 중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누구의 잘못으로 그런 열악한 곳에서 태어나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며 그 고통은 당대로 끝나지 않고 그 나라를 떠나지 않는 한 자손대대로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거기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조상의 잘못 때문에 그런 곳에 태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런 곳에 사람을 태어나게 하고 그런 곳에서 살게 하는가?
우리는 사람이 태어나면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다고 하고 사람이 죽었을 때는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다고 한다.
정말 하나님이 태어남과 죽음을 관장한다면 그런 곳에 태어나게 하고 그런 곳에서 살게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만약 하나님이 그런 관여 곧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에 관여를 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종교는 거짓말을 하여 온 것이 된다.
그 반대로 하나님이 태어남과 죽음에 직접 관여를 한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잔인한 하나님이 되는 것이니 종교는 또한 거짓말을 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하면 인간이 태어남과 죽음에 하나님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로
말만 하면 입에서 섭리가 줄줄 나오는 사람들은 불쌍한 네팔의 국민들을 어떤 눈으로 보는가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궁금하다.
 
섭리의 목표와 목적은 분명하다.
인류는 모두 행복해야 하고 섭리를 책임진 자들은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섭리를 책임지는 사람은 부모의 입장에 서기 때문에 부모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식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현재 고통 받는 네팔의 사람들의 고통을 끝내게 하기 위해서는 지진이 발생하고 농토도 없는 산악지대에서 지진도 없고 농토도 넒은 땅으로 이주를 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비단 네팔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을 고통 속에서 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기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를 시키는 방법이다.
 
원리를 입에 달고 섭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섭리를 위한 헌금을 강요하는 사람들....
이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참부모 참자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지....
 
여기 이 카페에서 후계자가 어떻고 상속자가 어떠하며 순혈이니 누가 더 정통인가를 따지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그런 것 따져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값어치도 다 떨어져서 개도 안 물어갈 명분에 왜 자신의 목숨이라고 걸 것처럼 하는가?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정말 섭리를 생각한다면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 섭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댓글 1개:

  1. 당신부터 지금당장 당신집을 팔아서 기부하시오
    그래야 이글 쓴 의도에 앞서지 않것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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