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3. 21:19
가미야마 회장님은 성화하시기 직전까지 참가정과 통일가가 다시 화합하기를 염원하며 기도정성을 드리셨다고 한다.
또한, 극심한 고통과 싸우며 지상에서의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지난 수일간에도
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성화식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며 성화식 자체의 규모나 격식보다
자신의 성화식이 어느 쪽 식구이던 다같이 찾아와 서로 대화하고 화해와 화합을 도모하는 장이 되면 참 좋겠다는 바램을 피력하셨다고 한다.
어느 원로분께서 가미야마 회장님의 성화 소식을 듣고 "이런 분이 오래 사셔서 일본 식구들을 지켜주고 참가정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셔야 하는데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요"라고 하시면서, "그렇지만 댄버리 옥고를 같이 치른 가미야마 회장이 가니 영계의 아버님은 덜 외로우시겠지요."라고 했다.
그렇다 가미야마 회장이 누구인가? 아버님께서 가미야마 만큼은 믿었고, 성화를 얼마 앞두고 일본 식구들을 부탁한다는 말씀을 여수에서 그분께 남기신 것이 아닌가?
가미야마 회장은 이 아버님의 마지막 말씀을 하루도 잊지 않고 부단한 실천으로 아버님의 기대에 부응하려 하신 것 같다. 한 번 암으로 쓰러졌지만 건강을 조금 회복하자 다시 최일선 현장으로 달려갔다.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기 직전까지 그는 일본 나고야에 거점을 두고 하루 몇 백킬로의 장거리 자동차 이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 명의 식구를 만나기 위해 그는 기꺼이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버님 앞에 심정의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는 미치도록 아버님을 사랑한 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그 날까지 아버님의 말씀을 놓지 않았다.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와 그 지옥같은 말기암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하루라도 더 오래살기 위해 버티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하루에 두 세 차례 가장 강도 높은 진통제 주사를 맞아가며 찾아 오는 손님들을 맞았고, 그들을 위해 아버님 말씀을 전하고 심지어 거실에 하얀 칠판을 설치하고 직접 강의까지 하셨다. 고통스런 표정을 짓거나 초췌한 행색을 보이면 식구들이 더 가슴아파 하고 미안해 할 것 같아 언제나 말끔한 차림으로 손님을 맞있고 정상인처럼 농담을 주고 받곤 했다.
일본 의사가 당신은 말기 췌장암이니 길어야 3개월 정도라고 했는데, 이런 가미야마 회장의 마지막 투혼에 암세포도 잠시 활동을 멈추고 두 배나 더 되는 시간을 기다려준 것 같다. 우리는 그 기간 아버님의 위대한 제자 한 분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가미야마 간바레!"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그분께 주신 말씀이라고 한다.
그분은 이제 영계로 가셔서 이 구호를 갖고 지상과 변함없는 뜨거운 삶을 살아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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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 대신자 2 대왕 형진님을 증거하고 상속자 대신자 휘호라도 받고 가셨으면 참 좋았을것 이었는데 영계에서 메세지를 보내주시실수 있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지금 통일교에는 하나님과 참아버님에대한 믿음을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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