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5. 13:51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1999
종교는 늘 하나님과 그 종교의 지도자들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교육을 한다.
그러나 찬양을 하는 사람들은 그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신도들은 지도자들이 설명한 내용에 대해서 사실 여부나 맞고 틀림을 생각해보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믿음이 부족한 증거이고 불경이라는 공갈협박 때문이다.
왜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 등에 대해서 찬양과 영광을 강조했을까?
하나님과 예수님이 나타나서 찬양과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찬양과 영광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인간과 하나님(예수님도 하나님의 입장)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정립을 하기 때문이다.
종은 주인의 환심을 사지 못하면 죽음을 당하거나 쫓겨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끝없는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인간이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의 관계라기보다는 종과 주인의 관계라는 개념이 더 큰 상태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종의 입장에서 주인에게 영광을 돌리기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자들에게 군림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과 신자들 사이에는 상징적으로 구세주인 예수님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신들이 메시아의 대신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권능과 권한을 부여 받은 자로서 주인의 입장에서 종의 입장에 있는 신자들에게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부자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군림하는 법이 없겠지만 주인과 종의 입장에서는 군림과 통치의 관계가 성립이 되는 것이다.
부자의 관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보다 주종의 관계로 설정하기 때문에 종교지도자와 신도들의 관계도 그렇게 설정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대신자인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을 대하는 것처럼 하도록 교육과 학습을 시키고 하나님에게 돌려드리는 영광과 찬양이 자신을 통과해서 가도록 하는 것이다.
곧 자신도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같이 그 영광과 찬양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신도들에게 찬양과 영광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데 어떤 희생이 따르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이 크면 클수록 주인인 하나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으며 가장 귀한 목숨을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 희생되어지는 것은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이 풍비박산이 되어 이혼을 하고 자녀들이 고아원에 가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부모와 자식과 같은 관계라면 자녀의 어떤 희생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녀에 대해서 부모는 물질적인 것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잘 살아 주는 것만도 고마운 것이다.
자신을 만나러 오는데 빈손으로 오는 것에 대해서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모는 오히려 마음이 아플 것이다.
지금 교회들이 세계최대 또는 세계최고의 건물을 짓는다거나 그런 교회를 만드는 것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사실 불쌍한 신도들을 착취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신도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에게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았고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지금은 그 부모가 늙어서 죽
을 때까지 은혜를 받는다.
그 은혜를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으며 목숨으로 갚아도 다 갚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부모가 목숨을 걸고 키워준 은혜를 목숨을 걸어가면서 고마워 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불효자라서 그런가?
그것은 그럴만한 가장 확실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 법칙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 또는 식물이나 계대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부모는 희생을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 자식은 그의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도 자녀를 낳아서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고마운 것과 감사한 것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자신과 자신의 자녀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 곧 하나님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으로 천리법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것처럼 말들을 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행태는 하나님의 법도를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축복가정들이 교회에 효도와 충성을 하느라고 자녀들을 돌보지 못하고 심지어는 가정이 파탄 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이런 곳에서 무슨 하나님을 말하고 참부모를 말하고 참사랑을 말하는가?
무지의 소치라면 무식하기가 발바닥에 이를 것이고 알면서도 그렇지 않다면 악랄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충성과 효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잘 살기를 바랄 뿐....
누가 형제를 윽박질러서 효도와 충성을 강요하는가..
부모가 아니면서 부모의 자리에 대신해 있는 형제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부모는 효도를 강조한 적이 없지만 형제를 통제하고 군림하기 위한 핑계인 것이다.
사람이 물에 빠져서 죽거나 열차에 치여 죽을 사람을 살리게 되면 그로부터 목숨을 얻은 사람은 그에게 목숨을 바쳐서 죽을 때가지 충성을 해야 하는가?
그 사람 때문에 다시 얻은 인생이니 그 사람을 위해서 평생을 바쳐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 이미 죽었을 것이니....
그러나 그런 법은 없다.
죽어가는 생명이 있어서 자신이 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당연히 살려야 하는 것이며 그 댓가를 바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댓가를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또한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우리는 참부모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바쳐서 효도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 부모의 예와 부모가 아니지만 목숨을 구해 받은 예를 들어서 이야기 하였다.
메시아는 당연히 새 생명을 부여하는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고 그 사명을 수행한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낳은 것과 같다.
메사아로부터 새 생명을 여 받은 인간이라면 부모에게서 또는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을 낳아 주고 길러 주었다고 하여 장가도 가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효도만 하는 자녀를 효자라고 할 수 없으며 그 자녀를 부모는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아버님도 밤낮으로 영광과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과 아버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서 충성과 효도를 하겠다고 기도를 하면서 맹세를 하는 식구들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가 저들을 잘못 가르쳤구나 하면서 오히려 애통해 하실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고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목숨을 바쳐서 효도를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원리적이다.
식구들에게 충성과 효도를 강조하는 것은 식구들을 통제하고 군림하기 위해서 인 것이다.
식구들은 이런 내용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목숨을 바쳐야 할 만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히 있으며 그럴 때와 장소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 생명을 얻었다는 이유는 아니다.
그 것이 어떤 것인지는 다음 글에서...
|
14:47
누구를 상대로 글을 쓰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기독교인을 상대로 쓰고 계신가요?
아니면 그 정도 이상의 신앙을 성숙시키지 못한 안타까운 통일가 식구들을 위해서 글을 쓰고 계신가요?
효도가 뭔지 충신이 뭔지 성인, 성자가 된다는게 뭔지 아시나 모르시나 하면서 글을 봤더니
제일 밑에 다음편에 계속을 쓰셨네요.
아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쓰시려나 봅니다.
근데 왠지 저는 답답하네요.
논술대회 웅변대회도 아니고 결론을 말하시지 왜 공감도 안되는 과정을 이렇게 장황하게 쓰시는지.
쓸 필요도 있을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근데 여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을 상대로 쓰고 계신가요?
아니면 그 정도 이상의 신앙을 성숙시키지 못한 안타까운 통일가 식구들을 위해서 글을 쓰고 계신가요?
효도가 뭔지 충신이 뭔지 성인, 성자가 된다는게 뭔지 아시나 모르시나 하면서 글을 봤더니
제일 밑에 다음편에 계속을 쓰셨네요.
아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쓰시려나 봅니다.
근데 왠지 저는 답답하네요.
논술대회 웅변대회도 아니고 결론을 말하시지 왜 공감도 안되는 과정을 이렇게 장황하게 쓰시는지.
쓸 필요도 있을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근데 여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 16:34
나는 처음부터 뜻 곧 섭리가 좋았기 때문에 교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있었지요
신앙생활을 한 것도 뜻 때문이며 누구를 모시고 충성하고 하는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섭리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통일교회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는 곳이며
이곳도 섭리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떠날 것입니다.
평생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그 길을 걸어 왔기 때문에 내가 생각해 왔던 섭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며
내가 생각하는 섭리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여기에도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한 사람이라도 저 자람은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진다면 내가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 것도 뜻 때문이며 누구를 모시고 충성하고 하는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섭리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통일교회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는 곳이며
이곳도 섭리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떠날 것입니다.
평생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그 길을 걸어 왔기 때문에 내가 생각해 왔던 섭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며
내가 생각하는 섭리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여기에도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한 사람이라도 저 자람은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진다면 내가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할 것입니다.
┗ 19:41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입니다. 통일교가 책임 못하면 다른 종교를 세워서라도 뜻은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되어야 하고 정신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되어야 하고 정신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18:18
통일교의 고질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지적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자녀가 죽던살던 개의치 않고 뜯어내려는데 혈안이 되지는 않죠. 섭리사에 중심자가 중요하지만, 그 섭리사에 부름받은 섭리인들 역시도 하늘이 사랑하는 귀한 존재들 입니다. 진정한 섭리인이기에 그 섭리사를 사랑하고 그 섭리사의 중심자의 명령을 하늘같이 받드는 건데, 마구 대하고 괴롭게 한다면, 잘못된 행위고 비원리적이니 하늘도 협조할수 없는거죠. 수십년에 걸친 비원리적 행위에 대한, 지금의 험한 모습들이 그 모든 결과입니다. 하늘이 보낸 사람들 함부로 대한 중심자..그 자녀들은 하늘이 귀하게 여기고 보살필까요? 모든게 인과응보고, 안타까운 스토리죠.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