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5. 16:18 http://cafe.daum.net/W-CARPKorea/cSkJ/22005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우리 곧 통일교인인 축복가정이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해야 하는 대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나 아버님을 그 충성의 대상으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먼저 목숨을 희생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또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또는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서, 또는 더 나아가서 인류를 위해서 그 대상은 다 다르지만 그 동기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가장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고귀하기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랑도 그 크기와 방향을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크기를 말한다면 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 국가보다는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가치가 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큰 사랑의 가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희생을 해야 한다면 보다 큰 사랑을 찾아서 희생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사랑의 방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방향을 선택할 때 그 방향은 언제나 앞쪽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이 맞고 자식도 부모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목숨을 거는 희생이라면 당연히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방향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청전에서 심청이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희생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사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승과 제자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스승이 제자를 위해서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사랑의 방향에 대해서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향이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로 생각하기 때문에 또는 아버님을 자녀의 입장에서 참부모로 생각하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서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방향성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과 아버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경우라면 어떤 경우가 있는 것인가?
그것을 설명하기 이전에 먼저 왕과 왕자의 관계를 예를 들어본다면 부자의 입장이 아닌 왕과 신하의 관계라면 그 때는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 나라가 전쟁 중이어서 그의 아버지 곧 왕은 전쟁을 책임지는 사령관이고 그 왕자는 전쟁을 수행하는 지휘관의 입장에 있다면 왕과 자신 중에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신이 희생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부자의 관계에서 왕과 신하의 관계로 설정되기 때문에 국가를 대신하는 큰 책임을 맡은 왕에게 자신의 목숨을 양보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아버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라를 대표하는 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아버님이 섭리를 책임지는 섭리의 중심인물의 자리에서 서 계시는 입장이라면 섭리를 따라가는 우리는 아버님과 우리들 중에서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우리가 아버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맞다.
그 때 나와 아버님과의 관계는 참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라 섭리의 중심인물과 그 중심인물을 보좌하는 관계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 우리가 목숨을 바치는 그 대상은 섭리가 되는 것이지 아버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군인이 사령관을 대신해서 목숨을 바친다면 그것은 사령관 때문이 아니라 그 사령관이 책임지고 있는 나라 때문인 것이다.
만약 그런 의미가 아니고 단순한 사령관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면 그 군인은 사령관과 조국과 자신의 관계를 잘못 설정한 것이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으로 대통령이 어디를 가든 경호원이 항상 경호를 하게 된다.
그 사람은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대통령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쳐야 한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박근헤 개인을 사랑하고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때문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아버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아버님이 아닌 섭리의 중심인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나와 아버님과 이중의 관계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식구들은 이런 관계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참부모로서의 부자의 관계라면 우리는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해야 하는 관계는 있어서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섭리의 중심인물과 그 중심인물에 협조하는 관계로 설정이 되면 그 때문 목숨도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님 때문이 아닌 섭리 때문이라는 것도......
지금은 아버님이 영계에 가신 상태이다.
그러면 지금은 영계에 가신 아버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하여야 하는가?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를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 것이다.
영계에 가신 아버님을 위해서 충성과 효도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충성을 바치고 목숨을 바쳐야 한다면 섭리를 책임진 섭리의 중심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가 되든지
그리고 섭리와 정렬되어 있는 중심인물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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