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죽은 아이 고추 만지기’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다시 회복이 불가능한 일에 미련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미련을 가져 봤자 마음만 상하니 그만 미련을 끊으라는 이야기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설령 마음이 떠나더라도 회복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오해나 부득이한 경우로 헤어지지 않고 본인들의 의지로 상처를 남기면서 헤어졌었다면 다시 합쳐진다고 하더라도 옛날 같지는 않을 것이다.
거울이 깨어졌던 것을 다시 붙인다고 하더라도 자욱이 남아 있는 것처럼 그 상처의 자국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서 그 자욱이 희미해질 수도 있지만 그 자국이 더욱 선명해지면서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처럼 다시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헤어질 가능성도 있게 된다.
이곳 사람들은 가닥가닥 갈라진 교회가 다시 합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겠지만 보다 진취적이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망(無望)한 일일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이미 생각이 달라진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것이 오해나 부득이 하게 그렇데 되었다면 오해가 풀리고 부득이했던 그 사정이 사라지면 문제가 없지만 생각들이 달라져서 갈라졌다면 합쳐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설령 합쳐졌다고 하더라도 언제라도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카리스마와 권위가 대단했던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에도 다른 길을 갔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카리스마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그런 지도자가 있지 않다.
설령 그런 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시대와는 달라진 환경 때문에 카리스마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합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또는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대방들에 대해서 아무리 안타까워하고 원망과 저주를 퍼붓는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짝사랑일 뿐이고 일방적인 원망과 저주일 뿐이다.
죽은 아이 고추를 아무리 만져도 죽은 아이는 살아나지 않는다.
남은 아이를 잘 키우던가 아니면 아이를 다시 낳아서 기르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따라서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시간에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현명한 것이다.
|
2016년 7월 19일 화요일
죽은 아이 고추는 그만 만질 때가 되지 않았나?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